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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린송 Jun 13. 2022

마음이 무뎌져도

루퍼트가 입원한 지 어느덧 며칠이 지났나,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3박 4일을 병원에서 지내고 있는 중이다. 루퍼트와 3박 4일 여행을 떠난 거였다면 차라리 좋겠다.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루퍼트를 내 무릎에 앉혀 하루 종일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 우리 강아지는 내가 노래를 불러주면 좋아한다. 불안해하다가도 노래를 해주면 금방 안정을 취하기도 하고,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모양인지 그때마다 루루에게서 연한 핑크빛이 보인다. 루퍼트가 누군가를 맘에 들어하면 하늘색이, 기분이 그저 그러면 노란색이 보이기도 한다. 어제 루퍼트를 방문했는데 루루는 어제 기력이 너무 없었는지 아무런 색이 보이지 않았다. 단지 축 쳐진 선 하나가 보였다. 기분이 울적한 것 같았다. 그래서 노래를 또 불러줬고, 마침 때가 맘마 시간이라 내가 주사기로 강 급해 주었다. 사식으로 싸간 양배추와 당근 그리고 사과는 냄새를 맡고 혀를 대 보는 게 다였다. 아마 기력이 딸려서 먹을 힘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식욕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었다.


면회시간이 끝나고, 나가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나는 갈 준비를 했다. 인사를 했다. 나 간다고... 내일 다시 보자고. 건강하게 잘 버티고 있으라고. 그렇게 말했지만 어쩐지 루루의 눈빛은 너무 슬펐다. 왜 가냐고... 가지 말라고 가면 나 못 살 거 같다면서 내게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병원 방침상 나는 가야 한다고 말해줬다. 

그 눈빛이 좀 불안했다. 아마 오늘 새벽 이 녀석은 위기를 맞이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의사 선생님한테도 오늘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잘 좀 부탁드린다며 인사하고 나왔다. 

새로 옮긴 병원에서는 면회도 가능하고 선생님들도 친절해서 믿음직했다. 일단 자기 자식처럼, 엄마처럼 돌보겠다는 말을 하니 신뢰가 갈 수밖에 없다. 이곳에 오게 되어 나는 다행이라 생각한다. 루퍼트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폐렴으로 인해 염증 수치가 급격하게 오른 상태이고 폐수종까지 온지라 안심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심장병과, 신부전 그리고 폐렴 세 가지 모두 잡아야 한다. 합병증이 언제든 생길 수 있는 그런 상황. 

4개월가량을 죽음 앞에서 불안에 떨어 지냈던 터라 마음이 무뎌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슬픈 것은 어쩔 수 없다. 루루를 볼 수 없는 것과, 루루가 아픈 것 모두. 


집에 와서도 계속 불안하여 잠을 자지 않았다. 새벽 3시가 넘었고, 4시가 넘었고... 그러다 4시 반 안되어 연락이 왔다. 루퍼트의 호흡이 안 좋다며. 십분 내로 달려간다고 하고 나는 9분 만에 도착했다. 미리 옷을 입고 기다리고 있기도 했으니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루퍼트는 안정제를 먹어야 할 만큼 흥분상태라고 했다. 기침을 하기보다는 호흡이 빨라졌다고. 이미 도착했을 때는 안정제의 효과로 축 쳐져 있었다. 아빠는 혹시 콤마 상태냐고 물어보았는데 그건 아니라고 했다. 

루루의 등을 쓰다듬으며 평소처럼 말을 걸었다. 오늘도 예쁘고 귀엽고 깜찍하고 멋있다고. 아파도 이렇게 이쁜 강아지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지금 좀 아파도 루루는 견딜 수 있을 거야. 언니는 너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 너도 포기하지 마. 오늘 네가 날 너무 보고 싶어 했구나. 언니 옆에 있을 거니까 이제 안심하라고 말해줬다. 의료진들이 듣든지 말든지 노래를 불러주었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계속 불렀다. 루루는 호흡수가 조금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산소포화도도 올라가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은 이제 고비를 넘긴 것 같다며 집에 가셔도 좋다고 말했다. 나는 살짝 선생님이 원망스러웠지만 개인적 감정은 아니고, 그냥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서운한 듯 대답했다. 나도 잘 알고 있다고... 더 있으면 안 되느냐고 물었지만 그건 안된다고 했다. 

어쩌면 폐렴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호흡이 이렇게 힘든 거라고 했다. 이따 오전에 검사를 하면 알겠지만...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면회 시간 맞춰서 오라고 했다. 오후 두 시 반, 이제 두 시간도 안 남았다. 


심장병이 있는 노견은 폐렴이 쉽게 걸린다고 한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심장만 집중하여 시원한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한 게 잘못이었을까? 더워하는 것 같으면 선풍기를 틀어주었는데, 그게 문제였을까? 아까 면회 때 주사기 강 급한 것이 혹시 폐렴으로 번진 건가? 또다시 나를 자책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루루는 그냥 늙고 아픈 아이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생긴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그리고 불특정 다수에게 괜히 건강하라며, 눈에 보이는 아무네 강아지 고양이에게도 건강하라며 어쩐지 그런 말을 하면 나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기도 해서 모두에게 건강하라고 말을 건네고 있다. 

세상 살면서 만나고 이별해도 서로의 안전과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그 누구에게라도 건강하고 잘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길. 나는 말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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