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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ism Oct 22. 2024

요즘 대학이 원하는 인재

자기주도적인가, 전공적합성을 갖추었는가

입시를 논하지 않고 고등학교 생활을 말하기 어려운 대한민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누구나가 자신이 겪은 입시가 가장 지옥이라 말한다. ‘라떼는 말야~’가 괜히 유행어가 된 게 아니다. 우리 모두가 다 꽤 지옥같은 입시를 겪었고, 치열한 경쟁 아래 고독했으며 잠 잘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입시는 꾸준히 변해왔는데, 한 번의 수능  점수만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잔인함에서 벗어나 학창시절 전체를 다면적으로 평가하겠다는 취지에서 수시전형이 세분화되었다. 학교장 추천 전형을 통해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기도 하고, 다양한 특별 전형을 통해 상대적으로 기회가 적은 학생들에게 혜택이 주어지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 학생의 학창시절 학습 태도와 과정을 반영하여 선발하겠다는 학생부 종합전형도 물론 그 취지에서 있어서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실제로 입학사정관제도가 전면적으로 확대되던 2012년엔 그러한 낭만이 적확하게 작동하기도 했었다. 내 교직 첫 해였던 그 해, 수능 점수로는 택도 없지만 ‘곤충’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었던 학생 한 명이 자신의 곤충 사랑․곤충 관련 활동만으로 인정받아 한양대 관련학과에 진학했다. 학급의 지체장애 친구를 정말 살뜰히 보살폈던, 전교회장을 지낸 학생은 그 따뜻한 인품과 리더십을 인정받아 역시 성적만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신문에도 보도되었을만큼 혁신적 방법에 의한 낭만적인 입시결과였다.

그런 낭만은 지금도 유효할까. 그로부터 10여년이 넘게 지나면서 수시전형은 훨씬 더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선발 인원이 많아지면서 좀 더 보편적이 되었달까. 문제는 예전엔 정말 특출난 몇에게 작동하던 선발 방식이 보편적이 되면서 보통의 아이들에게 경쟁적으로 전형에 적합한 인재가 되기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심사하는 주요한 포인트는 ‘전공적합성’과 ‘자기주도성’이다. 쉽게 풀어 말하자면 학생이 희망하는 진로에 대하여 얼마나 진심인지, 그 길을 스스로 헤쳐나갈 의지가 있는지를 보겠단 것이다. 좋아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파고들게 되고 스스로 지경을 넓혀가지 않느냐는! 이상적인 학습자의 모습을 평가하겠단 뜻이다.

대다수의 학생 일반에게 이 기준이 드리워지면서 경쟁이 더해진 현실은 이렇다.

남보다 더 “자기주도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학생들은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는 것을 스스로 찾아내어 탐구해야 한다. 자기주도성이란 자고로 “학교에서 선생님께 배웠다”보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찾아냈다”일 때 힘이 세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하여 “전공적합성”을 월등하게 갖췄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교 수준의 이상의 지식을 자신이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친구들 다 배우는 교육과정을 잘 소화한 것으로는 내가 좀 더 특별히 그 전공에 적합한 인재라는 것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의 학교 생활이 괴로워진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어떤 기초적 수준의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도 전에, 어려운 것에 기웃거려야한다. 더 어려운 내용을 어찌 어찌 찾아내고, 아는 척을 해야한다. 당연히 제대로 소화할 리 없고 마음에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하나도 모르겠는데 이거 괜찮은걸까’, ‘나 정말 이걸 내 진로로 삼아도 되는 걸까’

이론적으로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충분한 배움을 누리면서 얼마든지 전공적합성과 자기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지만 언제나 이상과 현실 사이엔 괴리가 있다. 선생님 한 명당 40명 정도를 지도하게 되는 공교육에서 학생 개인 맞춤형 진로지도가 쉬울 리 없다. 학생과 수업 이외에 행정 업무가 질식을 유발할 정도인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다보니 진로설계와 수행이 학생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면서, 입시 컨설팅만 판을 친다. 학생들은 그저 입시에 유리한 생활기록부를 만들기 위해 소화되지도 않은 내용들을 보기 좋게 늘어놓으려 노력한다.

이전 세대들보다 기초 문해력이 점점 떨어지고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며 학업성취도가 훨씬 낮은 지금의 아이들에게, 자기주도성과 전공적합성을 요구하는 일이 어불성설은 아닐까? 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전공적합성과 자기주도성을 요구하느라 아이들의 문해력과 학업 성취도가 떨어진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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