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이 받은 약과 주사를 잊지 않기 위해 알람부터 설정한다. 주사는 오전 오후 하루 두 번, 약은 하루 세 번. 총 다섯 번의 알람. 거기다 이번엔 운동을 추가하기로 했다. 선생님도 추천하셨고, 난임 카페에서 다들 열심히 하고 있는 걷기! 어떤 문들은 매일 만보를 걷고 인증을 하시기도 했다. 익히 좋은 걸 알아 조금씩 더 걷고 있었지만 이제 챙겨서 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걷기 알람 하나. 건강에는 물 마시기도 중요하다 하니 매시 정각에 물 마시기 알람도 추가! 하루에 대략 15번 정도의 알람이 울린다. 이 정도면 실은 알람이라기 보단 프로그래밍에 가깝지 않나 싶기도 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 쉬면서 생활 패턴이 망가진 것도 사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남편을 챙겨서 배웅하고 나면 다시 잠들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아침은 넘기고 점심 챙겨 먹고 집안일하다 하루가 지나가는 생활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었다. 공복 운동이 좋다는 말을 듣고 출근하는 남편과 함께 아침에 나갔다. 출근하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곧장 집 근처 공원으로 가서 한 바퀴를 걸었다. 나는 분명 지치고 힘든데 겨우 7000보. 쉬운 일은 없다지만 너무 힘든데? 잠시 지쳐 뻗어있다가 주섬주섬 누군가 좋다고 추천해준 덴마크식 식단으로 아침을 준비한다. 실은 덴마크에 가본 적도 없고, 덴마크 식이 뭔지도 모르지만... 좋다고 하니 열심히 검색해서 찾아낸 몇 가지... 통밀 식빵에 샐러드, 과일 몇 조각, 요거트 정도? 덴마크 사람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순댓국이 간절하지만... 인터넷이 알려준 덴마크식으로 아침을 먹고 약 한 줌, 주사 한 대, 따뜻한 물도 마시고, 잠시 집안일 좀 한다 치면 또 물 마시고, 이제 점심 먹고, 또 물 마시고, 물 마시고, 물 마시고, 집안일하려다 물 마시고... 저녁 먹고, 약 먹고 주사 맞고, 집안일 좀 하다 홈트 하고 잠들고...
씩씩하게 잘 해내고 있었다. 그러다 순간 기분이 그랬다. 이건 뭐... 임신하려고 삶을 사는 건가? 내 인생의 목표는 임신밖에 없나? 임신이 안되면 다 나같이 사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면 또 죄 없는 남편을 두들겨 잡는다. 그럼 남편은 바보같이 가만히 안아주고 그런다. "네가 원하면 계속 시도하겠지만 힘들면 그만둬도 돼. 난 아이보단 네가 중요해." 아... 이 교과서 같은 남편. 화도 못 내겠다.
꾹꾹 참아가며 노력을 했으니 특별한 결과가 있을 거라 잔뜩 기대하며 병원에 갔다. 난포가 얼마나 자랐나 보러 가는 것이다. 매번 2-3개가 다였는데... 이번엔 많은 노력을 했으니 더 많이 생겼겠지? 동결하면 비싸다던데... 그래도 동결이 나오면 무지 좋겠다. 아주 부푼 꿈을 가슴에 안고 이 생각 저 생각을 해대며 히죽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번엔 2개. 아... 저 열심히 걸었는데요? 살도 일주일 만에 2킬로나 빠졌는데요? 그런데도 2개요? 2개가 다 정상적인 난포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건데 2개요? 세상에... 저의 노력은 다 어디로 간 건가요? 물론 혼자만의 생각이다. 나보다 더 실망하신 듯하며 잘못한 것도 없이 미안해하는 선생님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좋다는 건 다 해보려고 하고, 회사까지 관둬가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결과는 왜 이런 건지... 물론 사람마다 맞는 방법은 따로 있을 것이며 30년이 넘도록 맘대로 살다가 요 며칠 열심히 해놓고 큰 기대를 하는 나도 어리석다는 걸 알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조금의 변화라도 있을 순 없었던 것인지. 2개라도 잘 키워보자는 선생님 말씀에 그날도 공원을 걸었지만 공원에 있는 아기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났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눈물을 펑펑 쏟으며 발은 걸었다. 속은 상한데... 오늘 안 걸어서 혹시 나쁜 일이 생길까 봐 쉬지도 못하겠는 거다. 한심하다. 언제쯤 나도 고사리 같은 아기 손을 붙잡고 이곳에 나올 수 있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