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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할미 Feb 25. 2021

헌이랑 나랑-철없는 이모의 간접 육아체험

눈물의 하원

헌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었다. 각 가정마다 사정에 따라 첫 등원 시기는 달라지겠지만 헌이도 엄마의 재취업을 위해 18개월쯤 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쿨한 육아 주위자인 헌이의 부모님이지만 이때는 꽤 많은 고심을 했다. 하지만 부모의 상황에 맞춰 어린이집을 정한다는 건 그때 당시에도 지금만큼 힘들었다. 결국 유치원 운영 경험이 있던 원장님이 운영하시는 아파트안에 있는 가정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다. 몇일은 헌이의 적응을 위해 엄마가 같이 가서 함께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고 그러다가 한 시간 혼자 있어보고... 또 오전은 혼자 있어보고... 점차 시간을 늘려 결국 9시에 등원해서 4시에 하원을 하게 되었다. 적응을 어찌나 잘하는지 일주일 만에 온전히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었다.

 처음 온전히 시간을 보내게 된 날. 헌이 엄마가 급한일이 생겨 내가 하원을 돕기로 했다. 어린이집 입구에서 벨을 누르고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원장님께서 아직 준비가 덜되었다며 현관으로 들어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들어가서 안을 들여다 보이는데 놀이방으로 보이는 거실 한가운데 서서 축 쳐진 기력이 없는 모습으로 헌이가 서 있는 게 아닌가? 다른 아이들은 끼리끼리 모여 잘 놀고 있는것 같은데 왜 혼자 놀고있지? 그러다  봤는지 천천히 걸어서 바닥에 있는 장난감을 하나 집어 드는 것이었다. 왜 내 눈에 그렇게 안쓰러워 보이던지... 저 어린것도 적응을 하느라 힘들구나 하는 생각에 울컥했다. 겨우 참아가며 "헌아~ 이모 왔네!" 하고 불렀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영화 속 여주인공처럼 손에 방금 집어 든 장난감을 툭 떨어뜨리더니 '으앙~'하고 울며 달려와서 안기는 게 아닌가? 세상에... 순건 나도 눈물이 터져 나오려는걸 겨우 참았다. 원장 선생님의 당황하신 표정이 순간 눈에 들어왔다. "아... 잘 놀고 있었는데... 이모가 많이 반가운가 봐요." 하셨다. 네... 선생님 마음 이해합니다. 사실 나랑 잘 놀다가도 엄마가 오면 괜히 울긴 한다. 그렇지만 그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이거라도 가지고 놀며 견뎌봐야지...' 하는 그 표정은 처음이였다. 어린것이 적응하느라 많이 힘들었을까?

 아기띠에 헌이를 안고 어린이집 가방을 들쳐매고 집으로 가는데 이 녀석이 눈물을 그치질 않는 거다. 조그만 머리를 내 가슴에 푹 묻고는 큰소리도 안 내고 우는데... 어찌나 짠하던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간단히 씻기고 "뭐해주까? 이모랑 뭐 할까?" 했더니 두 손을 쫙 벌리며 "안아! 안아!" 하는 거다. 세상에... 이제 더 이상은 못 참는다. 결국 둘이서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한참을 실컷 울고 밥도 먹이고 씻기는데 평소라면 때도 쓰고 말썽도 부릴 텐데 엄마가 없어서 인지, 홀로하는 첫 사회생활에 쓴맛을 본 덕인지 너무 말도 잘 듣는 거였다. 그게 더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나도 더 열심히 놀아두고, 안아주고, 업어도 주고 겨우 재웠는데... 잘 자는 얼굴이 그날은 왜 그리 짠해 보이는지... (주책이지만 지금도 이날을 떠올리면 나는 눈물이 난다.)

 헌이 엄마가 집에 와서는 재우기까지 했다고 하니 너무 고마워했다. 그치만 나는 그날만큼은 언니가 미웠다. 남편도 아니고 시엄마도 아닌데 쫓아다니면서 "아니... 애를 꼭 이렇게 일찍 보내야 해? 오빠가 언니 하라고 하는 것도 아니잖아. 오늘 애 표정이 어땠는지 언니가 봤어야 해. 둘이서 얼마나 울었다고..." 하며 잔소리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미안하네... 언니는 웃으면서 "내 딸이거든? 아무리 네가 예뻐해도 나만하겠냐? 엄청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결정한 거지..." 했다. 그래... 언니가 얼마나 고민하고 생각을 했을까? 하지만... 그날 헌이의 눈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헌이의 눈물 가득한 하원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의외로 친구와 노는 것을 꽤나 즐거워했고, 선생님을 엄청 좋아했다. 선생님도 아파트에 있는 가정어린이집이라고 기대 없이 보낸 것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여러 가지 교육을 해 주셔서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이날의 이야기를 헌이에게 하면 이 녀석은 멋쩍은 듯 웃기만 한다. 엄마에겐 "그러게... 어린애를 왜 그렇게 빨리 보냈어?" 한다. 녀석아... 그날 이후로 너는 집에 오지 않겠다 할 정도로 그곳을 좋아했단다. 근데... 그날은 왜 그렇게 울었던 거니? 그래도... 이모한테 안아달라고 매달리던 네 모습... 훌쩍거리다 잠든 네 모습... 모두 내 마음속엔 깊이 남아 있단다. 이날 이야기할 때마다 또 하냐고 할 테지만... 네가 결혼해서 아이 어린이집 보내는 첫날까지만 이야기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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