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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할미 Feb 11. 2021

헌이랑 나랑_철없는 이모의 간접 육아체험

눈물 연기의 대가 헌이

 헌이 엄마는 결혼 전엔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헌이 엄마와 나는 같은 교회에서 같은 봉사를 하며 만났는데 처음에 난 헌이 엄마의 목소리만 들었지 눈을 본 적이 없었다. 항상 고개를 숙이고 나한테 하는 말이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없게 딴 곳을 보면서 이야기를 했다. 물론 어느 정도 친해지고서는 그러지 않았지만, 아무튼 내가 느꼈던 언니는 소심하기도 하고 낯을 엄청 가리며 순하고 마음이 약한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랬던 언니는 아이를 키우면서 꽤나 단호했다. 다른 것보다 아이의 안전이나 교육문제에 대해선 단호했다. 뭐... 아이를 기르는 엄마라면 다 그럴 수 있다 할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언니의 변화가 당시엔 꽤 놀라운 일이었다.

 어느 날 교회에 갔다 집에 가는 길이었다. 언니는 운전을 했고 나는 보조석에 타고 돌이 막 지난 헌이는 뒷좌석 카시트를 채워 앉혀 두었다. 출발하고 삼분 정도 지났나? 뭐가 불편했는지 헌가 '앵~'하고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눈빛도 하나 변하지 않고 입만 '앵~'하고 소리를 내고 우리 눈치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언니는 "카시트 풀어달라고 저러는 거야. 쳐다보지 말고 내버려두어. 엄마 말고 또 누가 타니까 일부러 저래."라고 이야기를 했다. 엥? 이제 겨우 12개월 세상 살아본 녀석이 그런 계산을 하고 우는 척을 한다고? 설마... 그렇지만 언니 말을 믿지 않기엔 헌이의 그 표정이 눈은 창밖에 있으면서 공부하라는 엄마 말에 '네~'하고 대답만 하는 사춘기 아이 같은 거다. 나도 신기해서 "그러게... 쟤 눈물도 한방  안 흘리고 입으로만 우네? 신기하다." 하고 대답을 했다. 아... 근데 이걸 알아들을 줄이야. 이 녀석이 내 말을 듣더니 인상을 있는 데로 폈다 쥐었다 하는 거다. 어쭈? 이제 표정연기도 한다는 건가? 했는데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차가 떠나가라고 울기 시작했다. 이런... 입이 방정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 당시 교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집까지는 꼬박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는데 출발한 지 십 분도 채 안됐을 때였다. 차는 이미 달리고 있었고, 더더군다나 도시 외곽 순화도로에 진입해 설곳도 없고 딱히 줄 간식 같은 것도 없는 상황인데... 녀석이 소리를 점점 크게 질러가며 마치 '이모, 뭐라고 하셨어요? 입으로만 운다고요? 내가 오늘 우는 게 뭔지 보여드리지요'라고 이야기라도 하는 듯이 울어 재끼는 것이었다. 아... 정말이지 쓸데없는 말을 보탠 내 입을 꼬매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내가 이렇게 당황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마치 이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나더러 "무시해.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네가 관심 가지면 더해." 그러는 것이었다. 언니가 내가 미안해할까 봐 위로 하는 건가? 싶었지만 진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속으로 헛소리를 한 나를 탓하며 괜찮은 척하고 앞만 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녀석은 정말 그칠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울음소리는 계속되고 눈물도 계속 흘리는 것이 내 자식도 아닌데 나 때문에 애가 탈진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나도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쩔쩔 매고 있는 사이 드디어 집 근처에 도달했다. 아파트 입구가 보였다. 근데 갑자기 울던 헌이가 소리를 뚝 그치더니 그 작은 손으로 눈물을 쓱쓱 훔치는 게 아닌가? 어? 그쳤다고? 방금까지 차가 흔들리도록 울었는데? 거기다가, 자기 손으로 눈물을 닦는다고? 이게 말이되? 주차를 하고 벨트를 끌러 내려 줬더니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기를 안으라고 양팔을 벌리는데 무서웠다. '이거... 진짜 갖  돌 지난애가 맞는 거야?' 그렇게 때를 쓰고 탈진할 것 같이 울다가 아파트 입구를 보고 눈물을 그친다고? 지금 생각해도 뭔가 배신감에 울컥한다. 언니는 웃으며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이 "괜찮다고 했잖아."라고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를 해주니 헌이는 처음엔 "제가요?"하고 놀라는 척하더니 실실 웃기만 한다. 자기도 기가 차단다. 참나... 그날 니 눈물만큼 나도 식은땀을 흘렸다고... 엄청 당황도 하고 얼마나 미안했는데... 그렇지만 또 안아달라고 팔 벌리는 너는 참 예쁘긴 했다. "괜찮아요 이모..."하고 용서받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하지만... 이런 일은 이후에도 여러 번 있었다. 언제나 악을 쓰며 울다가 집 앞에 오면 뚝 그치는... 두세 번 더 그러다가 카시트는 싫지만 엄마와 이모는 절대 풀어주지 않는다는 것과 차를 타면 어딘가 재미있는 곳에 간다는 걸 안 것인지 더 이상 악을 쓰지 않는 날이 곧 찾아왔다.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꽤 식은땀을 흘리면 당황했지만 나도 당황하지 않는 날이 되었다. 네가 크며 나도 같이 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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