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차쯤 되니 진행도 척척 해나가는 수준이 되었다. 그렇지. 초등학생도 5학년 정도면 고학년 아니던가? 나도 이제 난임 고학년인 것이다. 순서쯤이야 줄줄 읊어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일단 그날이 시작되면 긴장하지 않고 보건소부터 방문한다. 남편과 내 신분증을 준비해서 방문하여 난임 지원 통지서를 받아 온다. 그리고 병원에 예약전화를 한다. 최대한 스트레스받지 않으려 노력하며 하루를 잘 보내고, 저녁은 먹고 싶은걸 사 먹었다. 평소 좋아하지만 꾹 참았던 아이스크림도 사다 먹었다. 굳이 뭘 챙겨 먹나 싶겠지만 병원을 다니며 주사를 맡고, 약을 먹기 시작하면 이미 임신 중인 사람처럼 다들 몸가짐을 조심하니 나도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 나만의 마지막 만찬이랄까?
아침부터 목욕재계를 마치고 경건한 마음으로 병원을 향한다. 아... 오늘도 나의 동지들이 병원 로비에 가득이다. 요즘은 사회적 거리두기 덕에 앉을 곳도 부족하다. 다행히 한자리 차지하게 되면 눈에 들어보지도 않는 책을 붙들고 읽어 나간다. 분명 오늘도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것이다. 처음엔 예약을 했는데 그 시간에 진료를 못 보는 건 왜일까 궁금했는데 이쯤 되니 이해가 된다. 진료 도중에 난자 채취 수술이나 이식 시술도 함께 하시니 진료야 어느 정도 시간 예상이 가능하더라도 시술이나 수술에서 원치 않던 이벤트가 생겨나면 시간이 길어지는 탓이다. 이날도 한 시간 십 분을 조금 넘겨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항상 반겨주신다. 그러면서 연신 "많이 기다렸죠? 미안해서 어쩌나..." 하신다. '미안하시긴요. 인기가 많으셔서 점심시간도 없이 진료하시는 거 아는데요 뭘... 진료만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마음속으로만 늘 이야기한다.
진료는 3분 정도 채 걸리지 않는다. 초음파로 자궁에 물혹이 없는지 확인하고 간혹 혹자는 이때 이미 새로운 난포들이 보인다고 하는데 나는 난저에 속해서 인지 이때 거의 보지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어쩌겠는가? 선생님의 처방에 기대를 걸어보는 수밖에... 진료실을 나와 간호사님께 한 번 더 주사와 약에 대한 설명을 듣고, 스케줄표와 체크리스트를 받아 주사를 받고, 처방전을 챙겨 약국에서 약을 받아 집으로 온다. 병원까지 우리 집에서 1시간 20분, 병원에서 대시 1시간 10분, 진료 3분, 간호사님과 대면 2분, 주사 수령까지 10분, 집에 다시 오는데 1시간 20분. 총 4시간 5분. 정말이지 회사생활하시면서 시험관 하시는 분들 존경합니다.
다시 시작이다. 시작인데 시작이 아닌 느낌... 그래. 재수, 삼수를 지나 다섯 번째 재도전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주사를 바라보면 기분이 저 아래로 갈아 앉는 느낌이다. 안 그래도 주사나 약을 먹으면 기분이 좀 가라앉는 느낌들이 있기도 한데... 그래...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게 어디인가? 건강의 문제나, 경제적인 문제나, 여러 가지 상황으로 재도전을 커녕 포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일 텐데... 감사해야지. 감사하면 좀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에고... 결국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번엔 진짜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