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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할미 Mar 10. 2021

널 만나려고

여보... 당신도 수고가 많다.

 이번엔 다를 거다. 꼭 그럴 거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마법 주문을 외우듯이 중얼거리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래... 이번엔 병원도 옮겼고, 운동도 하고 있고, 영양제도 바꿔 봤고, 남편도 더 열심히 운동하고, 그 힘든 식단 조절까지 하고 있으니 꼭 될 거다. 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 나갔다. 최종적으로 난포가 3개 정도로 보였고 난자 채취 날이 결정되었다. 

 채취 날은 내 생일이었다. 아... 생일선물 같은 그런 멋진 일이 있어 났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맞아야 하는 주사들을 챙기고 다행히 주말이라 남편이 대동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왕복 2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를 운전해서 다니고 있었는데 채취 날은 수면마취를 해서 운전을 할 수 없기도 했고, 그날은 남편도 채취를 하는 날이어서 꼭 대동이 필요했다. 

 하루하루 수험생의 마음으로 조심히 지내고 있었는데... 아하... 시어머니께서 집에 오신단다. 며느리 생일이니 와서 밥이라도 사주시겠다 하신다. 시댁과 차로 6시간은 족히 걸리는 먼 곳에 있는 터라 오시면 기본 1박인데... 생일에 맞춰서 주말에 오신다는 거다. 실은 1차 때 유산되고 시험관 사실을 양쪽 부모님 모두에게 알리지 않았다. 알고 계시면 너무 기대하셔서 오히려 부담이 되어서였다. 아... 거절을 잘하고 싶은데... 코로나 핑계를 대기에도 거의 6개월 만의 만남이라 거절하기도 어렵고... 거기다 우리 식구 둘에 어머니 오셔도 3명이니... 아마 남편에게 먼저 전화를 하셨더라면 남편이 잘 거절을 했을 텐데 하필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아... 

 어머님은 하루 일찍 금요일에 오셨다. 양손 가득 음식을 싸들고 오랜만에 만나는 아들, 며느리가 반가우셨는지 활짝 웃으시며 다가오셨다. 그래... 이미 거절도 못했고 오셨는데 어찌하랴? 그렇지만 시험관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어머님은 혹시나 며느리의 몸이 상할까 반대를 하셨었기 때문이다. 결국 건강검진을 한다 거짓말을 했다. 금식도 해야 하기 때문에 방법이 없었다. 졸지에 남편도 함께 굶었다. 

 토요일 새벽에 나가 정신없이 시술을 하게 되었다. 병원에 8시까지 오라셔서 넉넉히 갔는데 이미 사람이 많았다. 아이를 기다리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다들 함께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수술실 앞에 여러 쌍의 커플들이 줄지어 낮아 기다린다. 이 모습만 봐도 대충 시술 몇 차쯤 되는지 예상이 된다. 물론... 확인할 바는 없다. 우리 커플만 해도 1,2차 때는 너무 떨리기도 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두 손 꼭 잡고 계속 '잘될 거야. 걱정하지 말자.' 하는 말들을 반복해댔다. 3,4차 때는 문 앞에서 남편이 나에게 "어~ 잘 다녀와."하고 나는 "시간 맞춰서 와있어."하고 끝까지 잔소리를 하는 여유를 부렸다. 이번엔 달라진 병원의 시설을 비교하며, 오늘 채취하면 며칠날 이식을 할지 예상해 가며 스케줄 정리를 했다. 꽤나 경력직 티가 난달까?

 이렇게 기다리다 보면 아내들은 한 명씩 호명되어 불려 간다. 그럼 남편들은 대기석에 남아 호명을 기다린다. 병원마다 다르지만 내가 가고 있는 곳은 아내 채취를 확인하고 남편의 채취를 하기 때문이다. 항상 아내들만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남아있는 남편들을 보면 그 모습도 꽤나 짠하다. 팔짱을 끼고 잠을 청하거나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사람, 왔다 갔다 불안해 보이는 사람... 그래 남편이라고 왜 긴장이 안 되겠는가? 더더군다나 병원도 아내들 위주라 남자화장실은 두 개층에 하나씩밖에 없고 대기하면서 마땅히 쉴 곳도 없다. 비치된 잡지도 죄다 아내들 위주에다 티비에는 원장님 훈화말씀만 나온다. 아내가 시술을 하고 마취를 깨어 나오려면 2-3시간이 소요되는데 기다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거다. 남편도 수고가 많겠네... 그래 부모가 되는 일이 부부 어느 쪽이든 간절하고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내들은 수술실에서 환복을 하고, 수술대에 오른다. 마취과 선생님이 이름, 나이, 남편 이름 등을 확인하고 담당 선생님이 오셔서 손 한번 꼭 잡아주시며 "잘될 겁니다.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하시면 어느새 회복실에 누워 있다. 남편은 이번 병원은 다소 복도 가까운 곳에 비밀의 방이 있어서 민망했다는 후기를 남겼다. 

 나는 다행히 공난포 없이 3개가 채취되었다고 한다. 간혹 난포는 자랐으나 난자가 없는 공난포도 있었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3개가 다 잘 수정되고 잘 자라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급히 집에 돌아와 시어머니가 차려주시는 점심밥을 먹고 남편은 나에게 쉬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어머님을 모시고 드라이브에 나섰다. 센스가 넘치는구먼! 이렇게 손발이 착착 맞는 날이 오다니... 그렇지 않아도 마취기가 남아 피곤했는데 얼마나 고맙던지... 여보... 저녁도 먹고 들어와도 돼. 내 생일이야 매년 오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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