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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할미 Jan 09. 2023

기억은 잃었지만 추억은 간직하고 있습니다.

귀신 할머니의 추억

 이 이야기는 8년 동안 치매 요양원에서 근무하신 엄마의 이야기를 재 구성했습니다. 꽤 오래전 일한 기억이라 조금 잊혔을 수도 있고 딸에게 전하며 조금 왜곡되었을 수 있습니다. 글을 읽다 내 이야기인가? 하고 불편하신 분은 아마... 아니실 거예요. 아주 작은 시골에 있는 더 작은 요양원에서 있었던 일들이랍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 그냥 잊히는 게 아쉬워 글로 남겨보려 합니다. 엄마가 겪은 일들이라 엄마의 시점에서 글을 써보려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엄마 이야기도 해야 할 것 같다. 엄마는 센스가 뛰어나다. 작은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상대를 만족시키는 일에 뛰어나다. 엄마는 오지랖이 넓다. 아는 사람은 물론이고 길 가다 지나치는 사람도 다 안타깝고, 예쁘고 그렇다. 엄마는 정말 열심히 일한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은 더욱 그렇다. 마치 자신이 사장인 것처럼, 적어도 지분이 있는 사람처럼 열심히 일한다. (때로는 그 열심 때문에 동료들이 불만을 토로한다.) 뭐... 이런 엄마의 성격이 굉장히 불만이지만 그대로 닮은 사람이 나다. 어쩌면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도 그런 성격 덕분에 그 힘들다는 치매 요양원에서 오랜 기간 일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치매가 심해 집에서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 모여 있는 시설에서 일을 했다. 보통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많았지만 때로는 나보다 어린 환자도 있었다. 나이도 다양, 과거 직업도 다양, 치매 증상도 다양했다. 그중 오늘은 귀신할머니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치매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들은 보통 짧은 커트머리를 하고 계신다. 단순한 이유다. 관리가 쉽다. 물론 본인의 의사나 가족의 의사를 확인한 후 헤어스타일을 정비해 드린다. 치매라고 해서 24시간 계속 인지가 없는 게 아니다. 하루에 몇 시간, 몇 분이라도 인지가 있는 시간이 있기도 한다. 그래서 치매가 있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일은 거의 없다. 덕분에 긴 머리를 고집하고 계신 할머니도 계셨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하얀 생머리의 소유자. 피부도 뽀얀대다가 예쁘게도 생기셨다. 다들 이 할머니를 귀신 할머니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할머니는 주로 밤에 활동하셨기 때문이다. 하얗고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상태로 밤에 복도를 걸어 다니시는 거였다. 이러다 보니 밤에 야간 당직을 하시는 직원이 할머니를 마주치게 되면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작은 체구에 발소리도 하나 내지 않고 조용히 다니시니 신입 직원들은 할머니 덕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신고식을 치르곤 했다. 

 할머니의 머리를 묶어 드리려 해도 거부하시고, 본인을 보고 누가 놀라기라도 하면 아기처럼 서럽게 우시기도 하고, 그 밤에 큰 소리로 우시면 주무시던 다른 분들까지 깨니 다들 조심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야간 당직을 하다 쉬는 시간이 되어서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뒤돌아 보았더니 귀신 할머니였다. 순간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입을 틀어막고 "엄마, 왜 안 자고 돌아다니셔. 우리 가서 자자." (나는 할머니들을 다 엄마라고 불렀다.)하면서 팔짱을 끼는데 할머니가 빗을 들고 계신 게 아닌가? "엄마, 빗은 왜 들고 돌아다녀? 나 머리 빗겨주게?" 하며 말을 거니 할머니가 "언니, 나 머리 빗겨줘."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소파에 할머니를 앉히고 머리를 빗기며 질문을 했다. "누가 이렇게 이쁘게 머리 빗겨 줬었어? 무슨 생각이 나서 그래?" 한참을 말없이 눈을 감고 있던 할머니가 뱉은 말은 꽤나 달콤한 사연이었다. "영감이... 나 머리 긴 거 예쁘다고 밤마다 그렇게 빗겨 줬어. 기름 발라서 빗겨줬어. 꽂으라고 예쁜 비녀도 몇 개나 사다 줬어. 근데 비녀가 없어졌어. 영감도 어디 갔는지 안 보여." 그렇게 대답을 뱉어 놓으신 할머니는 머리를 빗겨주는 손길이 마음에 들었는지 할아버지 꿈이라도 꾸시는지... 금세 잠이 드셨다.  자기 이름도 기억 못 하고, 딸이 와도 알아보는 날보단 못 알아보는 날이 더 많은 할머니였는데...

 딸이 안부를 묻는 전화를 했길래 엄마 이야기를 전했더니 웃으며 아빠가 자기 머리도 그렇게 빗어 줬노라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다음 병문안을 할 때 집에 있는 비녀를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이후로도 할머니가 잠을 못 이루고 돌아다니시면 직원들은 다정하게 머리를 빗겨 드렸다. 할머니는 한밤중에 돌아다니는 일도 줄었고, 비녀만 있으면 머리를 올려 묶는 것도 좋아하셨다. 할머니는 좋겠다. 기억을 잃었어도 사랑받은 그 추억은 남아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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