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이 누군가에겐 죄일 수도 있었다.
긴 연애의 끝은 결국 결혼이었다. 뜨겁게 사랑했고, 충분히 서로를 닮아가게 되었고,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그 누구보다 행복할 거라 자신만만했었다. 그래… 그런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긴 연애의 이유는 결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의 부모님의 처절한 싸움을 보고 자란 덕에 결혼은 행복이 아님을 어쩌면 알고 있었다. 남편도 다른 사람 앞에서만 행복을 연기하는 부모님의 결혼생활에 진절머리가 나 있었다. 제일 큰 두려움의 이유는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엄청난 사랑이었다. 자신의 남편에게서 채움 받지 못한 그 사랑을 아들에게 받고 싶어 하는 그 어머니의 마음을 알았기에 우리의 결혼은 점점 미루어졌고 어쩌면 헤어짐이 옳은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느 날 문득 이 중요한 사실들을 잠시 잊었다. 우리의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그래… 그건 착각이었다.
누구보다 행복하고 싶었다. 아니, 부모님 보다는 행복하고 싶었다. 내 어린 시절의 가정보다는 꼭 행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 마음을 감추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 노력했다. 하기 싫어도 하고, 가기 싫어도 가고, 오는 게 싫어도 내 마음을 바꾸어 반갑게 맞이했다. 500킬로를 운전해 동트는 걸 보며 찾아뵙고, 어떨 땐 비행기를 타고 가서 가족 모임을 하고… 입에도 대기 싫은 술 시중에, 술주정 시중까지… 내가 원하는 결혼생활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결국 매주 이렇게 먼 길을 오가긴 힘들다 통보한 날, 시어머니는 우셨고, 시아버지는 “어디서 저런 걸…”이라고 하셨다. 나는 입을 닫기로 했다.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누워만 있었다. 정신 차리면 울고, 그러다 혼절해서 잠들기를 반복했다. 이게 다 남편 때문인 것 같아서 남편도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미안하다며 조그만 가방을 들고나가는 남편을 뒤로하고 또 계속 울었다. 내가 생각한 결혼 생활은 이게 아닌데…
더 이상 내 인생을 망칠 순 없었다. 물어물어 병원엘 찾아갔다. 가기만 하면, 시댁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선생님, 다들 이런 결혼 생활을 하는 거죠? 제가 너무 못나서 이런 상황을 못 견디는 거겠죠?”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결국 일주일치 약을 받아 들고 집으로 오게 되었다. 남편은 약봉지를 쥐고 한참을 울었다. 나는 침대에 앉아 또 하염없이 울었다. 침대 밖으로 내려올 수가 없었다. 울다 쉬기를 반복하다 침대와 나란한 높이의 창문만 바라보는 나를 불안하게 바라보던 남편은 침대 방향을 바꾸고, 자신의 손목과 내 손목을 묶은 채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밤새 미안하다고 속삭여 주고, 사랑한다고 속삭여 줬다. 그럴수록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만든 것 같아서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내 사랑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울게 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내 사랑 때문에 다른 의미로 울었다. 내 사랑이 누군가에겐 죄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