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일하시던 치매 요양원은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국가 지원을 받고 계신 어르신이 유독 많았다. 나라에서 요양원 비용을 지원받고 계신 분도 많았고, 나이가 많으신 분들 중에서는 국민연금을 받고 계신 분들도 계셨다. 그런 연금을 수령하시면 요양원에서 요구르트 같은 걸 배달해서 드시기도 하시고, 가끔 직원들에게 부탁하셔서 간식을 사드시기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할머니들 팬티엔 지퍼가 달린 것도 있다. 완벽한 비상금 창고이지 않은가? ㅋㅋ
이 씨 할머니는 요양원도 지원금으로 이용하고 계셨고, 국민연금도 수령하고 계셨다. 식탐도 많으시고 목소리도 엄청 크셨는데 언제나 당당하게 요양원 직원들에게 “내 같은 사람이 있으니 니들도 일하지. 고맙재? 그라믄 요구르트 같은 거 한 개씩 사 오고 그래라. 내 덕에 일도 하믄 고마움을 표시할 줄도 알아야지!”하시며 직원들 간식까지 빼앗아 드시고, 당당히 요구하셨다. 다른 할머니가 넉넉히 간식이라도 사 오시면 나눠달라 하시고, 거부당하면 하루 종일 쫓아다니며 시원하게 욕을 하셨다. 보다 못한 엄마가 “엄마! 엄마도 연금 나오는 걸로 사드시면 되지 왜 남을 괴롭히십니까? 그만하세요.”라고 한마디 하기라도 하면 “그래… 니 똑똑다. 아주 잘났다.”하고는 삐져 계셨다.
이런 할머니도 한 달에 한번 얌전해지시는 날이 있었는데, 본인의 연금이 입금되는 날이었다. 이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목욕을 시켜달라 조르시고 목욕 후에는 얼마 안 남은 로션도 탈탈 털어 곱게 바르고 옷도 제일 이쁜 걸로 골라 입고 거울을 보고 또 보고 계신단다. 그럼 정확히 8시 반에 아들이 방문했다. 엄마 말로는 아들이 오면 이 씨 할머니 얼굴이 꽃보다 예뻐진다고 했다. 대신 멀쩡히 잘 걸으시던 분이 부축해 줘야 간신히 걸을 수 있게 된단다. 그래서 아들이 내민 팔에 지긋이 팔짱을 끼고 요양원 문을 나서시는 할머니는 꼭 새색시 시집가는 뒷모습 같다고 엄마는 그랬다.
그러고 나가시면 아들은 10시 반쯤 항상 요양원으로 전화를 한단다. 어머니 곧 복귀하시니 어머니 몫의 점심을 남겨 두라는 연락이었다. 그러고 나면 정해둔 약속 시간이라도 있는 듯 11시쯤 할머니의 복귀. 할머니의 꽃 같은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주름이 하나쯤 더 늘어 도착하신다. 아들은 엄마의 손을 직원에게 건네고 타고 온 택시를 타고 휑하니 사라져 버린다. 이 씨 할머니는 엄마 잃은 아기마냥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택시가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서 계신다.
아들이 전화까지 해서 사수해 둔 점심도 뒤로하고 이불을 푹 눌러쓴 할머니를 보고 있자면 직원들까지도 우울해진다. 어머니를 모시고 나가 은행 문 열자마자 돈만 홀랑 찾아서 가버린 아들. 할머니만 고생하는 것 같아서 차라리 입출금 카드를 만드는 걸 알려 드리는 건 어떨까 생각도 했지만, 그렇게라도 한 달에 한번 아들을 보고 싶으실지도 모르니 엄마는 말을 삼켰다. 대신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시는 짜장라면을 한 그릇 끓여 다른 분의 식사가 끝난 식당에 할머니를 모시고 간다. “엄마, 엄마덕에 나 이번달도 월급 받았네. 요거 맛있게 드시고 내일 출근할 때 내가 요구르트도 사 올게요. 오늘은 이것만 일단 드셔.”하고 달래면 못 이긴 척 한 그릇을 비우신단다. 그러고는 “월급 많이 받았나? 니도 내 같은 사람 있어서 다행이재?” 하신단다. ‘나쁜 놈의 아들…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사 드리고 들여보내지… 나쁜 놈.’ 엄마는 또 말을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