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시카고에서 알던 친구가 하루 다녀갔다. 코로나 이후로 3년 만에 마주했다. 그와 대화를 하면 여행에서 만난 말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난 기분이었다. 우리는 만나면 서로가 어떻게 서로가 되었는지 하루 종일 얘기했다.
그는 시를 쓰고 게임을 만든다. 어릴 때 그가 글쓰기에 흥미를 보이자, 그의 할아버지는 그에게 "뺏길 수 없는" 분야에 몰두하기를 권유했다. 흑인들이 스포츠와 음악에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그것들은 남들이 훔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인정받는 분야가 된 거야. 할아버지 얘기를 하면서 그가 말해주었다. 어느 날은 핸드폰 화면으로 전에 찍어둔 노예 증서를 보여주었다. 고고학자인 친척에게 의뢰해서 알아본 결과, 그는 그의 조상이 미국으로 처음 왔을 때 만들어진 문서를 찾았다. 꽃 한 다발. 그의 먼 조상의 시장 '거래값'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날 그는 흑백 시야를 가졌다고 말했다. 함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신기해했다. 그가 차분하게 덧붙였다. 색을 본다는 게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엄청 복잡한 일일 것 같아. 나는 흑과 백의 사이로만 보이는 세상이 더 편할 것 같아. 그는 어릴 때 형광색이나 핫핑크 같은 눈에 띄는 색의 옷을 입었다가 놀림을 당했다고 했다. 나였으면 검은색만 입고 다닐 것 같은데, 그는 옷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그를 알 게 된 지 5년이 지난 지금, 그와 있을 때 색에 대한 표현을 쓰지 않고 말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사물을 가리킬 일이 있으면 색 이외의 특징을 말했다. 색을 말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방식은 색약이 색을 다르게 본다거나, 색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을 바꿨다. 예를 들면 그는 신호를 불이 들어오는 위치를 통해 이해했다.
사람들은 왜 제일 좋아하는 색깔, 같은 게 있어? 나는 그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서 물었다. 너에게 색은 무슨 의미야? 색을 본다는 건 '초능력'같은 느낌이야. 나는 푸른 눈을 가진 사람들이 좀 무섭게 보여. 동공과 흰자의 경계가 잘 안보이거든.
나는 더 이상 흑백이 색의 부재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너는 한국인치고 까매. 그 얘기를 듣고 당황하자 그가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왜 까맣다는 말을 모욕적으로 받아들여?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더 당황했다. 까맣다는 게 모욕적이라기보다, (흑인인) 네가 나한테 까맣다고 하는 게 낯선 것 같아. 백인이 나한테 창백하다고 얘기해도 비슷하게 당황할걸?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 1차적 반응이 얼마나 결백한 지는 모를 일이다. 그 이후로 전보다 자외선 차단제를 덜 챙겨 바르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와 알고 지내게 된 이후로 나눈 이런 대화들로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되거나,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대신 그와의 대화로 만들어진 내 부분 부분들이 맘에 들었고, 스스로의 모습을 미워하는 남들을 좀 더 나긋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3년 만에 만난 그가 하루 만에 뉴욕을 떠났다. 지난 3년간 그를 못본 게 슬프지 않았는데, 그가 다녀가고 난 일주일이 슬펐다. 3년 전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이사를 준비하면서 짐 정리를 할 때 버리려고 꺼내 둔 나무 상자가 있었다. 조형물을 만드려고 조각하다가 실패한 재료물이었다. 짐 정리를 도와주던 그가 그것을 가져간다고 했다. 왜? 그건 갖고 있어 봐야 짐이야. 네가 70살쯤 되었을 때, 내가 아직도 이걸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놀리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