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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샘 Apr 06. 2023

영화 속 교육이야기 6 - 다음 소희

영화 다음 소희를 보고

사진 출처: 나무위키 - 다음 소희


[줄거리. 스포일러 가득함]

'다음 소희'는 한 실업계 고등학교 여학생의 죽음과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노동과 교육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소희는 춤을 좋아하고 발랄하지만 욱하는 성질을 못 참는 여고생이다. 소희가 다니는 실업고 선생님은 졸업반인 소희를 취업시키기 위해 애쓰신다. 어렵게 마련한 곳이라며 콜센터에 현장실습으로 취업하게 된다. 그러나 콜센터라는 현장실습장에서 소희는 비참한 노동현장을 경험하게 된다. 어렵게 취업시켜 주신 담임 선생님 얼굴을 봐서라도 가혹한 노동현실을 참아내며 일하고 있는데, 자신을 가르쳤던 팀장이 부당한 노동착취에 항거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회사는 이를 은폐하며 더 강한 강도의 노동을 시킨다. 소희는 미친 듯이 일하지만, 결국 실습생이라는 한계, 이중계약서의 한계 앞에서 좌절하며 그녀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사건을 수사하던 유진(배두나 분)은 학생들이 현장실습이라는 명목아래서 노동력이 착취되고 기본인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것을 보며 분노한다. 그러나 유진 역시 거대한 현실 앞에서 무기력을 느끼며 눈물을 흘린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영화는 학생 노동력을 착취하는 회사뿐만 아니라 학교 역시 가해자로 지목하고 있었다. 그저 정책에 따라 학생들을 취업시키던 그냥 평범한 실업계 교사 역시 소희를 십자가에 못 박은 여러 '본디오 빌라도' 중 한 명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여러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영화 속 소희가 근무했던 콜센터의 모습은 70년대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여공들 일명 공순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사진출처:BBC뉴스 코리아 https://www.bbc.com/korean/features-51867202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 동일방직사건


시대가 변하여 그녀들 앞에 미싱과 실 대신 컴퓨터와 전화기가 놓여 있을 뿐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극 중 고등학생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데 대해 부당함을 느끼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준호 팀장은 마치 전태일 열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도 콜센터의 노동환경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이 영화가 계속 내 마음에 남는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교사, 학교, 그리고 교육청을 가해자로 지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손을 물에 씻으며 '나는 이 일과 상관없다'라고 외쳐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되었나?]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전문계고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이라는 것을 발표한 적이 있다. 정상화 방안은 △기업 파견형, 직업체험, 교내 실습 등으로 다양화 △기업 파견형의 경우 3학년 2학기 수업의 2/3를 이수한 이후 실시하되 졸업 뒤 해당 기업에 취업이 보장된 경우로만 한정 △경제적 목적의 아르바이트형 현장실습 금지 등의 내용이 핵심이다. 이러한 방안은 완전하진 않았지만, 이전까지의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 할 수 있어 교육계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 불필요한 실습 규제가 양산되어 왔다면서, 이전 정부의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을 포함한 29개 지침을 모두 폐기했다. 현장 실습 형태는 2006년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고졸취업을 강조하면서 취업률 목표를 2011년 25%, 2012년 37%, 2013년 60%로 제시했고, 취업률에 따라 학교지원금을 차등화할 뿐만 아니라, 목표 취업률을 당성하지 못한 학교는 통폐합하겠다고 압박했다. 영화 속 장학사가 말한 제도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되어 박근혜 정부에도 이어진 제도이다. 

 학교와 산업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높은 취업률만 제시하고 압박하자 학생들의 산업 재해는 늘어났다. 

2011년 기아차 현장실습 학생 뇌출혈

2012년 울산 신항만 공사 현장 작업선 전복으로 실습생 3명 사망  

2014년 씨제이 제일제당 현장실습 김동준 군 사망 사고 등등 끊이지 않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러다가 드디어 2017년 1월 음료공장에 현장실습을 나갔던 18세 이민호 학생이 기계에 목이 끼어 사망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참고: 2022-1-10 내일신문 뉴스)


이민호 학생이 현장실습을 시작하면서 맡게 된 역할은 포장된 음료 팔렛트를 지게차로 옮기는 것이었다. 전공과는 관계없었지만 이민호 학생은 현장실습을 위해서 지게차 면허를 땄고, 그에 맞는 역할을 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민호 학생은 상주하는 현장실습생들의 반장 격으로 함께 파견된 실습생들의 끼니를 챙기고 관리자와 소통하는 역할을 했다. 일하는 것에 대해 눈썰미가 좋은 이민호 학생에게 회사는 포장라인 전체에 대한 업무를 알려주었다. 원예과 출신이었던 이민호 학생은 포장 기계와 관련해서 학교에서 배운 것은 없었지만 회사에서 알려주었던 대로 일하면서 포장 라인을 가동했다. 실습 중이었기 때문에 여러 업무를 알려주니 오히려 감사하단 생각으로 열심히 배웠다. 그런데 일주일 정도 배운 상황에서 선임이 퇴사를 했고 인원 충원이 없이 돌연 현장실습생 홀로 포장 라인 전체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민호 학생이 책임을 맡은 포장 기계는 자주 멈췄다. 포장 공정은 음료를 화물차에 싣기 위해 포장하는 작업으로 자동화 기계가 팔렛트에 음료를 차곡차곡 쌓은 후 랩핑을 하는 것이다. 기계는 맨 아래층 팔렛트가 투입되면서 센서를 건드려 설비가 멈추는 일이 많았고, 5층으로 쌓이는 음료 중간중간에 들어가야 하는 간지(골판지) 투입 기계도 멈추는 등 오류가 나는 일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이민호 학생은 기계 밑으로 들어가 오류를 제거했고 관리자에게 보고했지만 기계를 수리한 적은 없었다.

 현재도 전국의 생수 혹은 음료 제조 공장에서 비슷한 유형의 위험이 존재하고 있다. 이민호 학생의 사고 이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삼다수 공장에서 30대 노동자가 거의 같은 이유로 사망한 일도 발생했다. 이러한 현장의 위험을 없앨 수 있는 주체는 그 사업장의 안전 보건을 책임지는 사업주다. 하지만 현행 법 체계 내에서는 그 사업주에게 안전 보건을 책임져야 할 요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출처 : 제주의소리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316766)


이민호 군 사건 이후에 새롭게 들어선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는 2017년 12월 '조기 취업형 현장실습'을 전면 폐지 했다. 또 학생이면서 근로자였던 학생들의 신분을 '학생'으로만 특정하고 운영 형태는 '조기 취업'방식에서 '취업 준비 과정'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학생과 학부모의 반발이 나왔다.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취업인데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없앨 경우 취업이 어려워지고, 노동자의 신분이 사라지면 임금을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후 몇 번의 정책 변경을 거치면서 사실상 지금은 과거로 돌아간 상태다. 


[AI와 주 69시간 사이, 노동계는 바뀔까?]


고 이민호 군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2심 재판의 최종 선고가 작년 (2022년) 11월에 있었다. 사업주는 벌금 500만 원, 징역 2년이나 집행 유예 3년 즉 벌금 500만 원만 내고 형도 살지도 않고, 공장이 멈추지도 않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적으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왔었다. 그리고 작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입법되었다. 그리고 최근(23.4.6.)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첫 판결이 나왔다. 건설현장에서 안전조치를 이행하지 않아 노동자가 5층에서 추락해 숨진 사건과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온유파트너스 대표 정 씨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000만 원이 선고됐다. 사고는 분명 중대재해이지만 처벌은 전혀 중대해 보이지 않았다. 안전설비마련 비용과 벌금 중 뭐가 더 비쌀지 모르겠다. 아니 그걸 계산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가 아닌가 싶다. 

  윤석렬 정부 들어서 노동계는 더욱 경직되고 있다. 화물차 노동자들을 찍어 누르는 정부, 교과서에서 노동을 지우려는 정부를 보면서 노동계가 바뀌어서 아이들의 상황이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정부는 주 69시간을 일하라고 했다가 64시간을 일하라고 했다가 다시 60시간을 일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교육계는 AI교육을 말한다. 이런 역설이 어디에 있나? 이 정반대 되는 이야기 속에 실습 나가는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실업계 고등학교 선생님과 이야기 나눠보았다. 아이들은 현장실습 나가기를 매우 바라고 있다고 한다. 선생님들은 이 아이들을 보낼 수도, 안 보낼 수도 없다. 양을 이리가운데 보내는 마음이 실업계 학교 교사들의 마음이 아닐까?! 착한 이리를 만나던가 아니면 어떻게든 거기서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런 마음 말이다.  


[다음 소희, 다음 민호를 막으려면...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2016년 독일의 한 직업학교를 방문했다. 독일은 유럽 전역에 실력이 출중한 인력을 배출한다. 독일 학생들은 실력만큼이나 높은 보수로 대우받다고 한다. 물론 초등학교 5학년 나이에 직업교육의 길을 갈지, 학문의 길을 갈지 결정하는 독일의 교육 시스템과 우리를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울점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진 속 교사가 사진 속의 장비가 매우 고가의 장비인데 우리는 이걸 아이들에게 직접 가르친다고 자랑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거의 억대를 호가하는 장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마이스터고에서만 이러한 투자를 하고 있다. 물새듯 세어나가는 예산을 특성화고 아이들을 위해 쓸 수는 없을까? 

독일도 물론 현장실습을 나간다. 직업학교 진학 후가 아니라 진학 전에 이미 학생은 해당 직업학교를 통하거나 혹은 상고회의소를 통해 또는 직접 회사와 접촉하여 회사와 직업훈련생계약을 체결한다. 이 계약은 회사에서 직업교육훈련 과정이 시작되기 이전에 체결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직업학교의 개강이 9월이므로, 회사에서는 이 시기에 맞추어서 봄부터 직업훈련생을 구하고, 여름 무렵에는 이미 직업훈련생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직업훈련생은 기업에 채용되어 소정의 보수를 받는다고 했으므로, 독일 직업 교육의 비용은 상당 부분 기업이 부담하는 셈이 된다. 따라서 교과과정에도 기업의 요구가 상당히 많이 반영된다. (발췌: 브런치 - 다시, 독일의 직업교육제도에 대하여 )

 한 주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한 주는 현장에서 실습하는 경우도 있고, 6개월을 현장에서 6개월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경우도 있고 상당히 다양하나고 들었다. 내 생각에 '그러면 교육과정을 어떻게 운영하지?' 좀 난감한데 학교에서는 잘 운영된다고 한다.   

 우리가 독일을 다 따라 할 수는 없다. 독일처럼 지역에 튼튼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많은 것도 아니고, 유럽이라는 열린 시장이 마련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들을 보면서 부러움을 넘어선 배움도 있으리라 본다. 

 

아직 해답은 없다. 조희연 교육감은 지난달 3월 14일 서울의 특성화고를 모두 마이스터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질 높은 직업교육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꼭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늘 이러한 기사는 '자사고 존치' 기사보다 클릭수가 낮다. 왜일까?  무엇보다 대학 입시만큼이나 우리는 이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라도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소희, 다음 민호를 막으려면 2028학년도 대입 방식만큼이나 직업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련기사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316766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028017.html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410847  

https://campaigns.do/surveys/166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3/03/14/2023031400199.html

https://brunch.co.kr/@hasan/14

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10867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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