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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샘 Oct 17. 2023

동료를 잃은 선생님, 선생님을 잃은 아이들

영화 자라르 선생님을 보고 


줄거리 

 바시르 라자르. ‘희소식’과 ‘행운’을 뜻하는 자신의 이름처럼, 그는 얼마 전 담임 선생님을 잃고 마치 작고 연약한 애벌레처럼 마음을 잔뜩 웅크린 초등학교 아이들의 대체교사로 부임한다. 처음에 아이들은 책상 배치를 옛날 방식으로 바꿔버리고 읽기도 어려운 발자크 소설을 받아쓰기로 내거나 지금은 쓰지도 않는 문법용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구식 선생님 라자르를 신기한 듯 바라본다. 하지만 뜨거운 태양과 세찬 비바람을 막아주는 한 그루 나무처럼 늘 온화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라자르와의 수업은 아이들의 마음에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 준다. 그리고 이러한 아이들과의 소통과 교감은 아내와 두 자녀를 잃은 슬픔을 잊고자 아내의 직업이었던 교사를 선택했던 라자르 자신의 마음 역시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상처를 조금씩 아물게 한다. 비록 자신 역시 생채기 난 나무일지라도 여린 애벌레들이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갈 수 있을 때까지 정성을 다해 품어주고 싶은 라자르 선생님. 하지만 바람과 달리 그는 뜻하지 않은 일로 갑작스레 마지막 수업을 준비하게 되는데… (출처: 다음 영화) 


서이초 1학년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지난 7월 18일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했던 서이초 선생님께서 교실에서 돌아가신 것처럼, 이 영화의 시작이 캐나다 몬트리올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젊은 여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유당번이었던, 시몽은 여느 때처럼 친구 빅터의 모자를 떨어뜨리며 우유당번 역할로 교실에 가장 먼저 도착한다. 그러나 교실 문틈으로 시몽이 본 것은 스스로 자신의 파란 스카프로 목을 메어 달려있는 담임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교실에서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캐나다에서도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캐나다 역시 언론에 이 일이 알려지고, 교장은 학부모 회의를 소집하고, 상담선생임의 정기적인 집단상담이 이뤄지고, 대체 교사를 찾기 위해 분주하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와 달리 캐나다 등 외국은 교장이 교사를 채용하고 교사들이 지원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이렇게 큰 사건이 있었던 학교에 아무도 지원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그 교실에 스스로 자원해서 가게 된 사람이 바로 바시르 자라르 선생님이다.  

 지금 서이초 1학년 6반에는 비정기전보로 20년 차 교사가 배정되었다고 한다. 고인이 너무 어둡다고 했던 교실도 신관 2층으로 새로 마련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영화 속 학교는 새로운 교실을 마련하지 못했다. 교실에 페인트칠을 새로 하고, 구조를 바꿨을 뿐이다. 서이초 아이들은 교실이 바뀌고 교사가 바뀌었다고 해서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 

  영화 속 아이들은 한 학기 동안 참 힘든 시간을 보낸다. 한 아이는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선생님 목메단 자리만 계속 바라본다. 또 한 아이는 자신의 글을 통해 선생님을 떠나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또 한 아이는 선생님 사진을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아이들은 돌아가신 담임 선생님(마르틴느)을 너무나 사랑했었고, 마르틴느 선생님도 아이들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를 사랑했고, 그도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이란다." - 라자르 선생님 


 9월 4일 서이초 선생님 49재에 단체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선생님의 본명과 생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너무나 앳된 얼굴, 아이들을 위해서 정성껏 만든 공간, 그분의 일기,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아이들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었는지 절절히 느껴져 절로 눈물이 났다. 

 영화 속에서 돌아가신 담임 선생님(마르틴느)께서 왜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시몽은 마르틴느 선생님께서 살아 계실 때 있었던 사건으로 인해 선생님이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며 점점 삐뚤어져 간다. 선생님에 대한 죄책감과 원망이 뒤섞여 아이는 너무나 힘들어했다. 

  서이초 사건은 수개월이 지났지만 선생님께서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는지 경찰 조사에 많은 의구심이 재기되고 있다. 서이초 1학년 6반 아이들은 어떨까? 연필사건의 당사자 아이들은 또한 어떨까? 영화를 보는 내내 서이초 1학년 6반 아이들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죽음, 이별, 누군가를 떠나보냄. 너무 이른 나이에 이 아이들이 이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했더 흔적들 때문에 아이들 역시 선생님들 얼마나 사랑했을지 느껴지기에 글을 쓰는데 또다시 눈물이 흐른다.   

 


동료교사와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9월 4일 서이초 선생님 49재 자리에는 선생님의 같은 학교 동료 교사와 대학 후배 교사의 추모사가 있었다.  "00 언니, 집회장에서도, 어디에도 언니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었는데, 이제야 이렇게 언니 이름을 불러요~" 라며 이야기하는 후배 선생님의 추모사를 들으며 현장에 계신 분들이 참 많이 울었다. 00이가 내 친구라고, 내가 사랑했던 언니라고 어디가서 말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라자르 선생님은 알제리에서 넘어온 난민이다. 알제리에서 아내와 자녀를 모두 잃었다. 그 사건은 이민국 심사관에게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가슴속에 깊이 깊이 묻어 둔다. 그의 마음을 두드리는 이도 있었지만 쉽게 문을 열지 못했다. 같은 상실의 아픔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올리브 나무 가지에 에메랄드 빛 번데기가 매달려 있다. 나무는 번데기를 지키기 위해 바람을 가리고 개 미를 막아주었다. 하지만 내일이면 떠나보내야 한다. 그날 밤 뜨거운 불꽃이 숲을 집어삼켰고 화염과 슬픔으로 큰 생채기가 남았다. 훗날 나무는 팔에 날아 앉은 새에게 번데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날개를 활짝 펴고 푸른 하늘을 날아간 자신이 사랑했던 아름다운 나비 이야기를..."


  이 이야기는 라자르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 시간에 스스로 지어서 읽어준 이야기이다.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들려준 것이다.

 서이초 선생님의 동료들은 어떨까? 그 고통과 상실이 이제는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을까? 아니면 아직도 선생님을 깊은 침전으로 깊이 깊이 내려앉게 만들고 있을까? 

 


서이초 이후 우리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교권 4 법이 통과되고, 교육부 고시안이 나오고, 종합대책이 발표되었다. 각 시도 교육청은 나름의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노란 버스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선생님들을 사로잡고 있는 상실감과 무력감은 상당하다. "앞으로 아무것도 열심히 하지 않고 가장 최소한 으로만 하겠다. 생활지도도 최대한 간섭하지 않고, 수업도 그냥 교과서랑 아이스크림 영상으로만 하고, 학급 이벤트 이런 거,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샘들도 늘고 있다. 원래 그랬던 분들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정말 열심히 했고 아이들을 너무나 예뻐했고, 늘 아이디어가 빛나던 선생님들이 그렇게 변하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헤르만 헤세는 "교육이 실체 없이 공허하게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어쩌다 지식은 생길 수 있겠지만 사랑과 삶은 생길 수 없다. 사랑 없는 독서, 경외심 없는 지식, 마음 없는 교육은 정신에게 저지르는 가장 심한 죄악 중의 하나이다."라고 말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잃은 라자르 선생님 자신이 '죽음'이라는 상실을 겪어야 했기에 '작별 인사도 없이' 선생님을 잃은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단순히 지식만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닌, 진심으로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라자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사랑과 진실된 삶을 전해준다. 애벌레 같은 아이들에게도 올리브 나무가 되어준다.


  "참 교사가 단명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어쩌면 실체 없이 공허하게 이루어지는 교육을 하는 나는 이미 교사로서 죽은 상태가 아닐까? 

 지난 9월 4일 전국적으로 추모 행사가 있었을 때 제주 추모식에서 발언했던  제주 TCF의 유홍렬 선생님은 수년 전 자신이 심각하게 교권침해를 당했던 이야기를 전도의 교사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러면서 그 당시 "살기 위해 수업을 준비했다."라고 이야기했다. 너무나 역설적이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가 막아야 할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뿐만이 아닐 수 있다. 


좋은 교사운동에서는 10,5,3,2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10명 이상에게 안부를 묻고, 5명 이상의 선생님의 손을 잡아주고, 3명 이상의 선생님을 직접 찾아가고, 2명 이상의 선생님과 식사를 나누면서 주변의 선생님을 돌아보자는 의미다. 

 라자르 선생님과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서로의 상태를 보듬고 나아가는 그런 학교가 되면 좋겠다. 번데기를 지키려는 올리브나무의 노력 위에 주님께서 따스한 햇볕과 단비를 주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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