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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울 Mar 24. 2023

청춘의 잔상

내가 사랑했던 제주에서의 시간은, 깊은 잔상으로 남아있어요.

@mamadonotworry

Q. 당신의 청춘을 돌아보았을때, 어떤 잔상이 아른거리나요? 


  "우리의 청춘은 항상 그랬어요. 그와 함께 쉬는 날이면, 사람 한 명 없는 집 앞 바다에 나가 캠핑의자를 펼치고 떨어지는 해를 그저 바라보곤 했죠. 웃기게도, 후에 브이로그를 만들고 싶었는지, 삼각대는 꼭 챙겨 다녔어요. 물론 아직까지도 만들지는 않았지만요.


  우리가 자주 다녔던 이름도 예쁜 바다, 월령은 조용한 해변이예요. 제주에 잠시 발을 들여놓은 관광객에게는 그다지 매력없는 바다일수도요. 화려하지 않고, 뽐낼 수 있는 것도 없어요. 그래서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저 조용히 해변가에 의자를 펴고 그들의 품에 기대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나봐요. 우리도 그렇고요.


  춤, 춤을 추는건 조금 부끄럽네요. 제가 어디에서 춤을 췄는지 생각해 보면 어두운 조도 아래에서 808비트에 몸을 조용히 움직인 기억뿐이에요. 밝은 조명 아래에서 춤을 출 수 있나요? (웃으며) 왜 갑자기 춤 이야기를 하냐고요?


  참 신기하게도,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맞으며 바스락거리는 모래사장 위에 서서 온전히 나를 위해 뻗어오는 태양의 뜨거운 조명을 맞고 있을때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저 빛은 나에게 꼭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아요. 내가 주인공이라고, 너를 위한 조명을 비추니 어서 움직이라고 말이예요. 그러면 나는 일어나서, 그저 모래위를 걸어요. 팔을 휘젓고, 다리를 교차하면서 말이예요. 이 해변이 내것인 것처럼이요. 아마 저는 이 행위를 '춤을 춘다'고 생각하나봐요. 웃기죠?


  저는 이 순간 내 눈에 비치는 모든 그림을 사랑해요. 사는게 뭔가 싶다가도, 젊음이 의미가 있나 싶다가도, 이 순간만큼 젊은 날의 무대인 '청춘'을 조금은 알 것 같더라구요.


  사실, 나에게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이 시간은 얼마 허락되지 않아요. 온 종일 이 땅을 비추던 태양은 내가 바라보고 있을때면 지평선 너머로 금새 사라지거든요. 그땐, 조금은 슬펐어요.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순식간에 타오르고 사그라드는 불꽃같이, 청춘은 그런거구나. 새벽녘부터 타오르는 태양이지만, 저물어가는 내 눈 앞에서 바라보기 전까지는 그게 그렇게 소중한지 모르나봐요.


  태양을 눈으로 바라볼 수는 없어요. 그가 뿜는 빛도 마찬가지지요. 그것들을 그대로 바라보면 그 빛에 눈이 멀어버릴거예요. 그 열기가 차가운 바다에 식혀져, 바다의 끝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면 그제서야 우리는 저 태양이 비추는 색깔을 바라봐요. 주황색으로, 몽환적인 자주색으로, 어쩔땐 온 세상을 불태워 버릴 것 같은 붉은 빛으로 말이예요.


  신기한 사실은, 우리 모두는 해가 떨어져다고 바로 일어나서 그 자리를 뜨지는 않아요. 새로운 광경이 우리를 맞아주기에, 그가 남긴 잔상이 새로운 그림을 펼쳐주기에. 어쩌면, 가장 붉게 타오르던 일몰의 태양보다 더욱 황홀한 풍경을 선사한다고 생각해요.


  우습게도, 제가 사랑하는 순간이 끝나더라도, 그 순간이 남겨놓은 풍경은 더욱 황홀하게 빛날 것이라는 걸 일몰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청춘'이 부재하더라도 그가 남긴 다가올 잔상들은 더욱 붉게 타오를 것이예요. 제주의 해변에서 져가는 태양을 바라보던 그 순간이, 마치 태양을 바라보고 눈을 감으면 그 빛이 남긴 상처가 눈을 감아도 보이듯이 나에게 청춘이란 잔상으로 남아있나봐요."


청준의 잔상 / 산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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