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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울 Jun 15. 2023

제주의 여름은 몸을 태워 잔상을 남겨.

유월, 제주섬 여름의 초입.

산울 @mamadonotworry / 글, 사진

 제주의 유월.


 뇌가 기억할 정도로 뜨겁거나, 마음 깊은 곳을 아리게 만드는 여운이 짙거나, 극도로 차갑거나, 세상이 무너질 정도로 슬프거나. 그것의 온도와 실체의 유무를 망라하여 강렬한 모든 것은 우리에게 잔상을 남긴다.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눈에 비추는 상으로 자리하기도, 눈에 비추지 않는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기도 하며 다양한 형태와 모습으로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긴다.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나 서울의 여름이 주었던 아름다운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 뜨거운 뙤약볕 아래 성수동 신발창고에서 신발을 나르거나, 송파 물류창고에서 택배 상하차를 할 때에면 여름은 증오스러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시작하곤 더욱 심해졌는데, 지하철 1호선에서 느끼는 사람과 여름이 뿜어내는 열기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건 굉장한 고역이었다. 친구들이 다 겪는 청춘의 여름 같은 건 없었다. 매우 더운 값을 디폴트로 매우 건조하거나 습하거나 극단적인 계절 여름을 좋아하지 않았다.


 4년 전, 제주에 오고 나서 여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제주의 여름은 내가 알던 여름과는 달랐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이 매우 넓었다. 사람이 뿜어내는 열기는 이곳에 없었다. 지반이 약하고 항공편이 많은 제주의 특성상 높은 건물이 없었기에 건물이 만들어내는 열기조차 이곳엔 없었다. 서울에서 여름에 눈길 줄 수 있는 곳은 깨끗하고 청량한 하늘 그뿐이었지만 제주는 어디를 둘러봐도 청량한 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넓고 깨끗한 바다를 쳐다보기만 해도 답답하지 않았다. 왜들 그리 청춘의 여름을 기억했는지, 제주에 와서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여름의 제주는 무엇인가요?'


 볕이 뜨거운 한낮에도, 그 뜨거운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밤에도 나는 제주의 바다로 뛰어들었다. 바닷속의 수많은 물고기들과 언제나 함께 있었다. 밤의 해변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통기타를 치고, 노래를 했다. 술기운이 물들 때쯤 작사, 작곡을 번갈아 하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100m가 족히 넘는 거대한 풍차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백 개의 달이 떠있는 바다를 바라보며 칠링 된 화이트 와인을 홀짝였다. 친구들과 집에서 술을 마시고 떠들 때면 그 차가운 병나발을 불며 밤바다를 유영하는 일도 꽤나 비일비재했다.


 이렇게 적고 보니까 결국 '술' 그리고 '바다' 구나. 나에게 있어 여름을 대표하는 두 단어. 술과 바다를 이토록 사랑하니 어떻게 여름을 싫어할 수 있겠냐는 결론에 도달했다. 고로, 나는 여름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던 것이다.


 유월, 초여름의 문턱에서 내가 사랑한 지나온 여름들을 회상한다. 아지랑이같이 아른거리며, 뜨거움과 차가움의 반복으로, 곧 강렬한 잔상으로 내 앞에 피어오른다. 유월의 여름은 그리 뜨겁지도 않은데 말이다. 제주 여름의 열기는 그 강렬함이 너무도 깊어 내 몸을 태워버렸다. 내 몸을 태워 화상 입힌듯한 여름, 그 아꼬운 잔상들.


 사랑해요 여름. 이번에도 세상 차가운 술과 어쿠스틱을 들고 바다를 유영할게요. 뜨겁게, 타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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