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쉽게 건네고, 당신이 가장 쉽게 건넬 수 있는 그 말.
'엄마, 전자레인지에 락앤락 넣고 돌려도 되나?'
아마도 제주에 오고 어머니께 가장 많이 물어봤던 질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마트에서 할인하는 냉동 볶음밥을 구매할 때마다 도대체 어떤 용기에 담아 돌려야 하는지 매 번 헷갈리곤 한다. 집에 있는 건 온통 락앤락 그릇뿐인데 담아서 돌려도 될까? 싶다가도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어 검색창에 검색을 하곤 한다.
[전자레인지에 락앤락 돌리기_]
'정품 락앤락에는 돌려도 됩니다.'
'락앤락 외부의 마크를 확인하시고 전자파 마크가 있으면 돌려도 됩니다.'
'돌려도 되지만 추천하지 않습니다. 비닐봉지에 돌리시면 됩니다.'
정말 안타깝게도. 저 냉동 볶음밥을 먹을 시점에는 일회용 비닐봉지도, 정품 락앤락도, 전자파 마크가 그려져 있지도 않았다. '사기로 만든 그릇은 돌려도 된다.' 정도의 전자레인지 지식이 있던 나에게 눈앞의 냉동 볶음밥은 마치 정복할 수 없는 산처럼 느껴졌다.
스물둘에 제주에 내려와 살아간 지 벌써 오 년이 넘었는데 왜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전자레인지에 락앤락을 돌려도 되는 걸까?' 항상 생각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100%의 확률로 전자레인지에 무언가를 돌리기 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에게 응석 맞은 사랑을 건네지 못하는 못난 외동아들인지라,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행위가 필요함을 알면서도 부끄러워 항상 엄마의 연락처를 눌러놓고 전화를 걸지 못했다. 평범한 안부 전화 한번 드리는 게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인데, 별 것 아닌 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전화를 건네는 건 왜 이렇게 쉬운지, 나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아마, 함께 살아갈 적에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 '엄마'를 찾던 내 버릇이 나오는 걸까?
왜 냉동 볶음밥을 먹냐며 한 소리 듣고, 언제나 똑같은 밥 잘 챙겨 먹으라는 안부 인사를 끝으로 [전자레인지에 락앤락] 대화는 끝이 나곤 한다. 참 이상한 것은 엄마의 끝인사도 항상 똑같이 '밥 잘 챙겨 먹어라'는 것인데, 당신에게도 그 말이 나에게 가장 쉽게 전할 수 있는 말일까? 조금 묘하단 말이지.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글을 써내려 가면서 확실하게 전자레인지에 무엇을 돌려야 하는지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생각 없이 건넬 수 있는 대화거리 하나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약간의 상실감이 들지만, 이 이야기는 나만 아는 사실이니까. 여전히 전자레인지 앞에서는 당신에게 전화를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