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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울 Oct 04. 2023

범인에게

혹은, 나에게

@mamadonotworry / 산울 (Nikon Z5, Z 24-70) 

 종종 큰 괴리감에 잡아먹힐 때가 있어. 내가 느끼는 괴리감은 뭐랄까, 천재성의 그림자랄까. 소년 만화의 주인공이 겪어야 하는 고난과 시련 같은 거 말이야. 현실적으론 메타인지가 잘 되지 않는 걸까. 나도 결국 그들과 다르지 않은 '범인'이었나 하는 탄식을 내뱉곤 해. 왕도를 걷기 위해선 겪어야 하는 보편적인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 중간에 멈춘다면 누군가의 길 위에서 만나는 엑스트라 1, 이 이야기의 결말을 본다면 왕이 된 소년만화의 이야기로 남을 거니까.


 사회화가 되지 않겠다고, 내가 가진 자아를 내려놓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선언하고 살아가지만, 모난 돌은 툭툭 치이기 마련이더라. 모두 나를 자르려고 가위를 들고 찾아오곤 해. 사회적 겸손을 배워 허리는 굽히더라도 심지는 잘리지 말아야지. 당신에게 어울리는 내가 아닌 그저 '나'로 남겠다며.


 모두가 가지 않는 길을 걸음에는 여러 가지 것들이 필요해. 자유와 용기는 기본 골조요, 이루게 만드는 것은 끈기와 노력 꾸준함과 인내심. 자유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니까. 나의 심지를 자르고 둥글게 만들겠다며 찾아오는 세상의 많은 빌런들에게서 맞서려면 체력과 힘도 필요하지. 그러니까, 남들이 가지 않는 걸까.


 결국 내 변명은 끈기가 없는 것이지. 세상을 갖겠다는 큰 꿈에 비해 지우개 가루 같은 내 하루는 무척이나 미천하니까. 자유의 높이가 높을수록 뒤로 새겨지는 그림자의 크기는 더욱 크고 짙어서 고작 하루하루의 노력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할 때가 있지. 아무 의미 없는 지우개 가루가 모여 버려지기 않기를 바라.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이룸과 실패의 양면성 속에서 한 자 한 자, 있는 힘껏 꾹 눌러쓰면 이는 곳 한 권의 책이 될 것이니까.


 내 걸음을 기록한 책의 결말에서 세상은 나를 범인으로 기억하지 않을 테니까. 이 괴리는 종착지에 다다라서야 사라질 것이니까. 마지막 장을 덮기 전까지 나는, 어쩔 수 없는 범인일 수밖에.



산울_ 제주의 사진작가, 로컬 브랜드 제주개 생활연구소 운영, 제주살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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