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시선, 66 (저자 코멘터리 버전)
서나루
야경을 그리는 작가들은
지어올리는 방식으로 부서지는 도시를 잘 알고 있다
(도시와 사회가 성장하는 것이 정말 성장일까? 왜 사회는 모두가 노동하는데도 어떤 부분은 퇴보하는가?)
노동자들은(고용주들도) 도시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건설적인 일들이 진정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면서 열심히 생산활동을 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가 국가당에 가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르크스의 진의를 위하여
(양 극단 - 예를 들면 극좌와 극우가 현대에 와서 뒤섞이는 아이러니, 어쩌면 그 둘이 원래부터 닮아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이러니)
픽셀 아트 속에서 야경이 숨쉬고
신디사이저로도 사랑 음악을 만들 수 있다
(가상이 현실을 실제 현실보다 더 멋지게 재현하면서, 실제 현실과의 접촉이 희석되고, 심지어는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
진짜 트러플을 먹어본 적 없이
트러플 맛을 아는 우리처럼
(추구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전혀 겪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값싼 가상을 통해 현실과 실재를 처음 접하고, 돈을 적게 내도 되는 가짜만 누릴 수 있는 삶을 살아감)
숨쉬는 밤의 낭만을 찾아 휴대폰을 내리다가
이 사람들은 얕은 잠이 드는 것이다
(휴대폰의 자극성에 점차 의존하고, 양질의 수면과 같은 삶의 진정한 가치에는 더 멀어짐)
나의 다리는 한 짝이지만
한 번에 천 벌의 바지를 입을 수 있어
(사치재를 뜻함. 사람은 자신의 몸이라는 존재와 소비의 한계 때문에 돈이 많다고 해서 자기 체급 이상의 소비를 할 수 없지만, "1,000배 비싼 바지" 같은 사치재가 나오면서 과시소비라는 어리석은 행위를 할 수 있게 됨)
배블런재와
배블런재의 꿈과
(배블런제 = 사치재.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에서 언급)
과시를 해도 사랑주지 않는 원망들을 보아라
더 나은 사랑을 하기 위해 바깥에서
더 나은 사랑을 찾는 사람들이 우리인데
(공작이 큰 에너지를 들여서 공작꼬리를 만들고 펼치듯이, 우리가 과소비까지 해가면서 찾는 게 사실은 누군가와의 사랑이고 사랑받는 실제 경험이라는 것)
사장님 좀 더 고급 라인이 있나요?
더 비싼 건 있지만 더 고급인 건 아니에요.
위스키 값도 경제학일 뿐입니다
(우리는 비싼 걸 구매함으로써 더 가치있는 것을 얻고자 하지만, 고급이냐 저급이냐 하는 가치는 마음 속에 있는 것이고 시장에서의 값은 그저 사람들의 수요-공급 곡선에 따를 뿐임. 더 좋은 가치를 찾기 위해 더 비싼 걸 바랄 필요가 없다는 것.)
마르크스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사람들이
심야 요금을 내며 집으로 돌아가고
(바로 윗 연 '위스키 바'장면과 이어짐. "마르크스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구절은 강렬한 신념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각자 생각을 바꾸고 갈라지고 뒤섞이고 그렇게 변한 서로를 바라보는 씁쓸함을 압축함. 그리고 결국 정치적 신념이 어찌되었든, 그들 모두 사치재(위스키)를 과시하며 사랑을 찾기 위해 바에 왔고,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 "심야 요금"은 '사랑을 찾는 인간'이라는 같은 지평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이 사랑을 찾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과 슬픔의 상징)
신사들, 신사까지 되어 찾고자 했던 자들과
그 짝들에 수리적으로 대응하는 또 다른 자들이
(자기관리 잘 한 사람들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반대로 그들이 만나고 사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비교적 추상화함으로써, 자신만만하지만 그만큼 외로운 자기관리의 시대를 말함.)
뒷좌석 차창에 비친 눈두덩을 본다
콧잔등이 빛나고
(자기개발 잘 한 '신사들'과 그들이 함께하려는 '누군가' 모두, 택시 뒷좌석에서 창 밖을 바라보면서 창에 희미하게 비친 자기 얼굴의 반사광을 바라보며 집으로 향하고 있음)
영원한 석양,
별빛처럼 숨쉬는 먼 빌딩의 픽셀아트
뚜껑 없는 자동차가 영원히 달리는 모습을 보며
(시티팝에 자주 등장하는, 자줏빛 석양이 지는 도시를 배경으로 1970년대 오픈카가 달리는 무한 반복 픽셀아트를 표현.)
그 젠틀맨들도 그가 찾던 이들도 각자의 도어락 잠기게 내버려두고
(자취방 문이 알아서 잠기게 두는, 그리고 그렇게 두어야만 하는, 도시인의 필연적인 자기유폐와 외로움)
맹물 한 잔에 실리마린을 먹고
(홀로 컵에 따라 마시는 투명한 물 한 컵의 단출함과 공허함, 건강을 위해 꼬박꼬박 건강보조제를 챙겨먹는 잘 교육받고 자기관리하는 도시인의 철두철미함을 동시에 비춤.)
간단히 씻고
얕은 잠에 들 것이다
(김이 올라오는 가족 욕탕에 대비되는, 혼자 사는 사람의 간단한 샤워. 다시 얕은 잠으로 돌아가는 외로운 사람들)
작가해설본을 요청해 준 나의 친구이자 문학도 김소현 선생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