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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tuti Oct 27. 2021

'대학'이 말하는 수신으로 가는 길

자천자이지어서인일시개이수신위본이니라.

자천자이지어서인일시개이수신위본이니라.

천자에서 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사람이면 누구나 수신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어릴 적부터 동양 철학이나 한자를 배우지 않았더라도 많이 들어 본 말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닦은 후에야, 자기 가정이 안락하고, 그러면 나라를 다스릴 수 있고 모두가 그러면 천하가 태평하리라. 


그렇다면 수신은 어떻게 하는 걸까?

성균관대 철학과 이기동 교수의 대학 중용 강설을 크리스천의 눈으로 읽어보자. 


공자나 맹자의 설명에 따르면 마음의 근원을 이루는 인간 존재의 본질은 (性)인데 이것은 마음 심과 살 생이 결합된 글자로 '살려는 마음', '살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eternal life. 영이 다시 사는 것 , 몸이 다시 사는 것을 추구하는 마음이라 하겠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진시황이 불로초를 원했듯. 영원히 사는 불멸의 삶을 갈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인간이 백 년 남짓한 시간을 살다가 죽음으로 간 것은 아니다. 적어도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태초의 인간은 영혼육이 모두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불멸의 존재였다. 성경은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고 그것으로 인해 영의 죽음을 맛보았고 혼과 육 또한 영원히 살 수 없는 형벌을 받는 것이라 말한다. 그럼 다시 (性)을 되찾는 방법은 영을 살리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영을 다시 살리려면 죄에 대해 죽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 안에서 다시 산 자가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로마서 6:11-14




'대학'에서는 학문의 길, 즉 학문의 과정을 밝았던 덕을 밝히는 것(명명덕), 백성과 하나가 되는 것(친민), 지극히 좋은 상태에 머무는 것(지어지선)의 세 가지 강령과 사물에 이르는 것(격물), 지혜를 이루는 것(치지),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것(성의),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정심), 몸을 닦는 것(수신), 집안을 안락하게 하는 것(제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치국), 천하를 화평하게 하는 것(평천하)의 여덟 가지 조목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p.25) 다시 말해 학문의 길은 잃어버린 본래의 나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대학'은 말한다.


먼저 명명덕을 보면 덕은 원래 밝았는데 그것이 어두워졌으니 어두워진 덕을 다시 밝게 하는 것. 그것이 학문의 첫 번째 목적이라는 것이다. 명명덕에서  '곧게 발휘될 수 있는 마음의 능력'이다. 마음의 근원인 '살려는 의지'가 어떠한 영향에 의하여 변질되지 않고 곧바로 발휘될 수 있는 마음이 능력이다. 


원래 인간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고자 만들어졌는데 어떠한 영향, 즉 죄로 인해 그 살고자 하는 것, 하나님과 친교를 나누는 것에서 멀어지게 했으니 그것을 다시 되돌려 본래의 마음, 영생을 얻고자 하는 길로 다시 들어서게 하고 그 길로 나아가게 하여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의지를 밝히는 것. 그 의지를 변질되지 않게 지키는 것. 그것이 명명덕이라 할 수 있겠다.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믿음. 그것이 명명덕이 아닐까 싶다.


'대학'에서 말하는 천(하늘)은 살려는 의지가 나에게 만 국한되지 않고(개별성) 모두에게 해당(전체성)하는 것이라 말한다. 나만 잘되고 남은 죽는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다. 모두를 살리길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천(하나님)은 주체이고 명은 주체의 작용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우리의 목숨을 주관하신다. 


친민을 하려면 '진실로 새롭고 날로 날로 새롭고 또 날로 새롭게 한다'라고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이 되어(신민) 생명이 솟구쳐 오르는 것이다.  로마서 6장에서 말하는 매일 죄에 죽고 예수 속에서 다시 사는 삶을 말한다. '대학'은 나와 너의 경계나 구분이 없이 참다운 나는 곧 너이며 곧 만물이라 말한다. 예수님은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에 친히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본인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우리 모두를 살게 해 주셨으니 예수님의 마음이야 말로 친민, 백성과 하나 되는 마음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주님 안에 살고 주님이 내 안에 사시면 나는 참다운 나인 예수님의 모습으로 거듭나게 되어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니 남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또한 나의 생명이 살아나는 것과 같아지는 것이다. 전도란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 되어 남의 새명을 내 생명처럼 살리는 일이다.  성경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아껴라고 명령하신다.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로마서 12:10-11


지극히 좋은 상태에 머문다는 지어지선은 바로 천국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잠시 머물렀다 나왔다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에 쭉 영원히 머문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하나님과 하나 된 마음으로 늘 죄에는 죽고 예수 안에서 다시 사는 생명의 삶을 살며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갈구하며 천국에 머무는 것. 남과 내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공존하는 인간사회를 건설하여 그곳에 머무는 것이 인생의 최종 목표이자 학문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구체적인 과정, 오늘 말하고 싶었던 나를 닦는 수신으로 가는 단계를 다시 살펴보자.

사물에 이르는 것(격물)이란 사물을 접하여 사물을 연구하는 것이라 말한다. 여기서 '사'란 실천론적, 시간적 개념으로 시작과 끝이 있다. 알파와 오메가. 예수님을 연상케 한다. '물'이란 존재론적, 공간적 개념으로 물체, 사실, 사건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칭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으니 물은 곧 하나님을 연상케 한다. 이것은 구조적으로 근본이 되는 것과 말단이 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치지, 지혜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야(격물) 이루어진다. 먼저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나 그에 대해서 아는 것. 그것이  지혜를 이루는 방법이다. 

사물을 접하고 연구하는 것,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나고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성경은 말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 9:10


세상의 모든 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시작과 끝이 있다고 '대학'은 말한다. 명명덕과 친민은 따로 분리될 수 없으나 근본이 되는 명명덕을 먼저 힘쓰고 말단이 되고 끝나는 부분인 친민을 나중에 힘써야 한다. 친민을 하려고 노력한다고 명명덕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명명덕에 주력하다 보면 친민은 저절로 이루어지므로 크게 힘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명명덕을 먼저 하지 않고 친민부터 하려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p.30) 


성경에서도 이와 같이 하나님 사랑이 먼저고 이웃사랑이 이다음이라고 말한다. 하나님 사랑이 없이는 진정한 이웃사랑을 이룰 수 없음을 강조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것, 성의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나의 삶을 그의 뜻에 맞추어 그 표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가는 것 그것의 성의라 할 수 있다. 그의 길을 따라가려면 그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야 한다. 크리스천의 두 가지 날개 중 하나, 성경 읽기를 통해 뜻을 알고 따라갈 수 있겠다.

도(道)란 타락하기 이전의 수수한 인간과 그를 둘러싼 천지만물이 나아가는 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욕심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여 이 길을 잃고 고통을 받는다.(p.30)

그리스도로 나아가는 길이야 말로 그 고통에서 벋어나 진정한 도(道)를 찾아가는 길이다.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 정심이란 내가 알고 있는 그 뜻이 때때로 내 마음에 일어나는 욕심으로 인해 무너지지 않게 바로 잡는 걸 의미한다. 크리스천의 나머지 한쪽 날개 기도로 내 마음에 바람이 소용돌이칠 때마다, 외부의 자극에 내가 흔들릴 때마다 내 마음을 다시 주님 앞에 온전히 보여드리며 그와 개인적인 교제를 통해 마음의 평정심을 되찾고 의를 실천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크리스천의 정심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격물(하나님, 예수님을 만나고), 치지(그에 대해 알고), 성의(그의 뜻을 따르고), 정심(내 마음을 그의 마음에 포개어 하나가 되게 하면, 수신, 내 몸을 잘 닦는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다. 


다음은 바울의 친민의 모습을 절절히 보여주는 구절이다.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로새서 2:1-7


그의 서신 안에서 수신으로 가는 크리스천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베드로 서신에서 생명으로 가는 길 또한 사랑으로 치민하여 서로의 죄를 이기는 것이라 말한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베드로 전서 1:22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 전서 4:8



본인 수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치국도 평천하도 이루어질 수 없다. 격물하지 않으면 치지도 성의도 정심도 수신도 이루어질 수 없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서 시작되며 그를 알고 그의 뜻을 따르고 믿음을 굳건히 하여 수신이 되어야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의 죄를 덮어 온 세상이 평천하를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세울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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