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에 초등학교에서 아들을 태우고 큰 딸을 중학교에서 3시 반에 픽업해서 집에 오면 4시인데 그동안 자신이 읽는 책을 읽을 수 있게 소설책과 과학책을 챙겨서 오라고 아들이 부탁했는데 책을 완전히 까먹고 간식만 챙겨갔다 아들에게 혼쭐이 났다. 오늘은 학교 끝나고 누나도 너도 다른 스케줄이 없으니 집에 도착해서 책을 읽을 시간이 충분하다고 집에 가는 내내 겨우겨우 달랬다. 자기도 그런 엄마에게 화내는 모습이 부끄러운지 누나가 차에 타자 일체 거기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 오자마자 후다닥 차에서 내려 집에 올라가선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이번 챕터에선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책을 다 읽자마자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졸졸 쫓아다니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첫째가 딸, 둘째가 아들. 이렇게 두 아이를 키워보니 딸 키우다 아들을 키우면 아들 키우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 예민한 성격에 완벽주의자 아들을 키우기란 그 비위를 다 맞춰 주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게 되고 이젠 덩치가 커져 힘으로도 제압할 수 없어진 탓에 감정의 골만 깊어질 따름이다.
오죽 아들 엄마들의 고민이 많았으면 최민준 소장 같은 분이 아들 키우는 법으로 강의를 하실까?
둘째 기쁨 이는 위에 누나에 비해 책 읽기를 썩 좋아하진 않는다. 그런 것을 알기에 읽기 습관을 길러주려고 같이 소리 내서 읽어도 줘 보고 한 페이지씩 돌아가며 읽기도 하고 그러다 이제 5학년이 되었다. 이젠 엄마의 영어실력보다 자신에겐 모국어인 자신의 영어실력이 훨씬 높으니(적어도 속도에 있어서는) 엄마와 같이 책을 읽으면 빨리 읽지 못한다는 답답함을 알아서인지 어느 순간 혼자서 책을 읽는 날들이 많아졌다. 나는 주로 책을 읽으면서 중간에 읽기를 멈추고 비슷했던 다른 상황이나 다른 책의 내용이랑 비교해 보기도 하고 질문도 많이 주고받기에 나와 같이 아이가 책을 읽으면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느리기 마련이다. 그만큼 주변 지식을 넓힌다는 이점도 있겠으나 자신이 이야기에 푹 빠져들지 못하게 하니 단점이 되기도 하겠다.
소리 내서 책을 읽다가 보면 아이가 모르는 단어가 쉽게 보인다. 자신 없게 읽고 넘어가거나 잘못된 발음으로 읽는 다던지, 내가 약간 수준보다 어렵거나 생소한 단어인 것 같아 일부러 그 단어를 써서 질문을 했을 때 딴소리를 하기도 한다. 가끔은 정말 나도 처음 보는 단어라면 아이에게 솔직히 이건 무슨 말이냐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면 만약에 혼자서 책을 읽었더라면 대충 넘어갔을 것을 그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단어를 책을 통해 배우게 된다.
소설책을 읽다가 생소한 나무, 풀, 꽃, 동물 등이 등장하면 챕터를 다 읽고 난 다음에 그것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다. 동식물의 서식지와 그 자라는 모습, 색깔, 크기 등의 특징을 알아보고 나면 글로만 느낄 수 없었던 작품의 깊이가 느껴지고 그 배경 안에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물론 아이는 읽기 시간의 연장이라 생각될 수 있으니 그리 썩 즐기지는 않고 귀찮아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이의 모습을 관찰할 때면 한 가지 주제에서 시작해 다른 주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유튜브 비디오를 검색해서 자신의 관심분야를 넓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 동안 기쁨이는 마술, 통계, 수학, 로직, 과학 등을 알려주는 Vsauce라는 채널을 즐겨보다 요즘은 사회 문제를 다루는 저널리즘 채널인 VOX 채널이나 경제 분야를 다루는 Business Insider를 즐겨본다.
예전엔 매주 도서관에 가서 책을 2-3 가방씩 빌려왔는데 요즘 글밥이 늘면서 도석관 책을 빌리기보단 책을 많이 읽어주는 아이보다 집에 책이 많은 아이가 성공한다는 스티븐 레빗의 '괘짜경제학"에서의 말처럼 도서관 중고책 판매행사 또는 중고서점 McKay에서 책을 사 오거나 주워와서(McKay 밖에는 자신들이 구매하지 않는 책을 놔두는 공간이 있는데 조금만 발품을 팔면 꽤 좋은 책들을 무료로 구할 수 있다.) 거실에도, 아이의 방에도 아이 수준에 맞는 책을 쌓아두고 있다. 차 안에서 이동시간이 많기에 차에서도 무료한 시간을 달래라고 한 두 권씩 차에도 책을 나두곤 한다.
여느 남자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기쁨이도 게임을 참 좋아한다. 하루에 2시간이라는 기준이 있긴 하지만 나도 게임을 좋아하는 그 마음을 알기에 주말이나 할 일을 다 했을 땐 2시간이라는 약속이 넘어가더라도 모르는 척 바 주기도 하고 한창 게임을 즐기고 있을 땐 여기서 죽으면 그만둬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때는 밤새 몰래 나와 게임을 하다 나에게 들키기도 했다. 우리 집엔 컴퓨터가 거실에 있는데 잠귀가 밝은 내가 노트북 하드 디스크 도는 소리나 자판 소리, 아이가 의자에서 움직이는 소리에 깨서 나와보면 깜깜한 거실에 모니터 화면의 불빛만을 열굴에 받은 체 깜짝 놀라 하는 아이를 볼 수도 있었다.
당장 지난 주말만 해도 그 전날 한국의 할아버지와 화상통화를 하는데 자신은 친구와 통화하고 싶다고 컴퓨터를 들고 자기 방에 들어갔는데 미쳐 자기 전에 컴퓨터를 제 자리에 두고 자라는 말을 하지 않았던 탓에 밤새서 게임을 했는지 어젠 오전 내내 맥을 못 추고 병든 닭처럼 소파에 앉아 잠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만큼 아이의 행동이나 습관을 고쳐주려면 아이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걸 다 허락한다는 듯 지척에 핸드폰과 테플렛을 뿌려놓고 하지 마라 백날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나도 내 의지력을 아는데 10살 아이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고등학교 때 밤새서 거실에 나와 천리안을 돌아다니고 채팅 하느라 하루 3-4시간 밖에 잠을 안 자 본 내가 나를 알기에 말로 쉽게 타이를 수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잔소리 안 하고 아이들에게 자기 주도 학습 습관을 키워줄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을 스터디코드의 조남호 코치는 '공부할 때 공부하고 놀 때 노는 법'을 먼저 터득해야 한다고 강의했다. 우리 집은 코로나 때문에 2020년 3월부터 8월까진 가정학습, 다음 1년간은 온라인 수업, 그리고 3개월의 여름방학을 거쳐 학교를 가면서 학교 수업 후 예체능 수업도 없애버리거나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집에서 자유시간은 점점 많아지고 아이는 남는 시간에 컴퓨터 게임이나 유튜브에 빠져 살기 좋은 환경에 빠졌다. 1년간의 온라인 수업은 정말 최악이었다. 하루 7시간씩 컴퓨터로 받는 수업은 피로도가 쌓였고 아이는 수업 중간에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기가 일수였고 과제를 다 완성하지 못해 정규 수업시간이 끝나고도 저녁식사 이후에 나의 감시하에 컴퓨터 앞에 앉아 숙제를 마저 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나 또한 매주 3-4시간에 걸쳐 그 주의 과제물을 과목별로 다 업로드했는지 나중엔 빈 파일을 제출하며 눈속임을 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일일이 파일 하나하나를 점검하며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기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탁 털어버리고 신나게 노는 과정도 없는 1년의 시간을 아이와 나는 함께 보냈어야만 했다.
그랬던 기쁨이가 5학년이 되어서 서서히 바뀌게 되었다.
일단 꼭 해야 할 그날의 학습(Daily work)을 약속했다.
1. 학교 숙제가 있다면 학교 숙제
2. 책 읽기 (20분 또는 2 chapters)
3. 과학 책 한 쳅터 읽기 (누나가 쓰던 6학년 과학책을 읽는다)
4. Khan Academy에서 수학 퀴즈 하나 풀기 또는 수학 문제집 한 페이지 풀기
5. 악기 연습
6. 주말이나 쉬는 날엔 아침에 일어나 줄넘기 (100개에서 시작해 서서히 350개까지 늘렸다)
이것을 다 끝내면 아이는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다. 물론 가족과 다 함께 하는 저녁시간이나 자신의 청결을 챙기는 생활습관인 샤워, 이 닦기, 방청소, 주말에 하는 화장실 청소 등은 꼭 해야 한다.
미국의 중학생 과학책은 한국 과학책보다 꽤 두껍다. 얇은 싸구려 재질이지만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가지고 있어 마치 대학 교제를 연상케 한다.
아이의 학교는 숙제를 거의 안 내준다. 보통은 수업시간에 과제를 제 시간 안에 다 못 마쳤을 경우에만 그것을 숙제로 집에 가지고 온다. 숙제를 내 준 날이라도 학습 속도가 빨라 수업시간 안에 자신의 과제를 다 풀고 시간이 남으면 숙제까지 수업시간 안에 다 풀면 그것을 제출하고 올 수도 있다. GT(Gifted and Telanted) 학생들은 보통 아이들이 Core Extention이라고 불리는 시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GT 수업을 받는다. Core Extention 시간은 정규 수업시간에 강의로 들었던 내용을 적용하는 시간으로 학습문제를 풀거나 책을 읽고 답하거나하며 개인적으로 혼자서 주어진 과제를 푸는 시간이다. GT 수업을 받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5일 동안 해야 될 학습량을 4일 안에 마쳐야 한다. 아마 선생님들은 학습능력이 보통 아이들보다 뛰어나기에 그 정도의 시간으로도 완수해 내리라 믿고 기대하시는 것 같다.
기쁨이는 그동안 수업시간에 과제를 완수하지 못해 집에 가지고 오거나, 가지고 오는 것 마저 잊어버려 가지고 오지도 않아 과제물 점수를 0점을 받거나 감점을 받는 일이 허다했다. 당연히 학습태도 점수도 그런 모습에 반영이 되어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었다. 수업시간엔 딴짓이나 친구와 잡담을 하는 일이 일수였고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실시간으로 앱을 사용해 태도 점수를 감점시켰고 나에겐 알람이 떴다.
그런데 가정에서 실시하게 된 Daily Work 가 아이를 180도로 바꿔놨다.
처음 Daily Work를 하기 시작했을 땐 '할 거 다 하면 놀아도 돼.' 하고 부드럽게 권유를 했다. 가끔은 하기 싫어 질질 끌다가 마음이 불편하고 놀지도 제대로 못하면서 하루를 마감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금세 할 거 다 끝내고 신나게 놀면 더 좋을 걸.' 하고 강요하기보단 권유로 아이를 구슬렸다.
가장 먼저 바뀐 건 학교 과제물을 다 끝내고 집에 빈 손으로 오기 시작한 것이다. 수업시간에 주어진 시간 안에 다 끝내면 집에서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아이가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완벽 주의자 성격이 있는 기쁨이는 첫째 꾸미와 달리 수학을 배울 때 내게 실수 하거나 처음에 이해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싫어서인지 나와 수업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Khan Academy를 통해 수업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다. Khan Academy에서 문제를 풀다가도 한 문제를 틀리면 어차피 젤 마지막에 레벨업이 안되기 때문에 성질을 버럭버럭 내면서 나머지 문제들을 다 넘겨버리며 일부러 틀리고 다시 퀴즈를 다시 본다. 100% 다 맞출 때까지 계속 그러다 보니 7-8문제를 푸는데 30분이 걸리기도 한다. 처음엔 '한 두 문제 틀리는 건 다음에 단원 평가할 때 알면 되지 처음 수업할 때부터 무조건 다 맞출 필요 없어.' 하고 애을 달래다가 그 말에 더 아이가 자존심 상해하고 스트레스를 받아하자 그려려니 하고 가만히 놔둔다. 그렇게 성질을 내며 반복한 적이 많은 부분은 나중에 종이 문제집으로 복습을 하게 한다. 종이 문제집은 바로바로 틀렸다 맞았다 답이 나오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차분하게 문제를 바라보고 풀 수 있게 해 준다.
미국의 중학교 과학책은 한국의 과학 책보다 그 크기에서 압도를 한다. 싸구려 재질로 만들어진 책은 700페이지가 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만큼 수업시간에도 그 모든 내용을 다 다루기보단 중요 부분만 선생님이 요점 정리를 해서 슬라이드로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책이 워낙 크기에 학교에 매일 들고 갈 필요도 없다. 연습문제도 다 포함되 있으나 정작 학교에서 수업이나 숙제는 선생님이 온라인책으로 다운받아 프린트물로 문제를 풀거나 온라인상으로 퀴즈를 보기에 누나 책이라도 책이 아주 깨끗하다. 그래서 학기 초에 책을 받아오면 집에서 그냥 방치되는 집도 많다. 그런데 집에서 한 학년 위의 내용을 다 읽고 간 아이는 당연히 또래 아이들에 비해 과학적 지식의 깊이와 넓이가 클 수밖에 없다. 돈 안 드는 교과서 위주의 공부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를 180도 바꾸게 한 건 맘 편하게 노는 그 해방감이었다.
나이가 들고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에 더 친근 해 졌고 온라인 게임을 통해 통화를 하면서 같은 서버에 들어가 팀을 짜 함께 게임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학교에서 몇 시에 들어와서 같이 게임을 하자고 미리 약속을 정하고 친한 친구들끼리 같이 게임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Daily Work를 빨리 다 끝내 놓지 못한 날은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와도 자신은 게임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학교 마치고 집에 오는 그 한 시간 마저도 기쁨 이는 아까운 것이다.
가끔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친구에게 인터넷전화가 걸려오기도 한다. 그러면 스스로 '지금은 안돼. 내가 할 거 다 하면 몇 시쯤 되는데 그때 내가 다시 전화할게. 지금은 수학하려고 컴퓨터 켠 거야. ' 하고 의젓하게 말을 한다. 때론 자신이 예상한 시간보다 빨리 Daily Work 가 끝나서 서버에 들어가면 친구가 '어! 너 왜 벌써 들어왔어?' 하고 묻기도 한다. 그러면 '오늘 문제가 쉬워서 내가 빨리 다 풀었어.' 하고 자신 있게 대답을 하기도 한다.
집에서의 이런 모습은 학교에서 하는 컴퓨터 수준별 자율학습인 iReady에서도 영향을 주었다. 매주 영어 수학을 3 레슨씩 마치는 것이 반 아이들의 목표인데 매번 기쁨이는 그 목표를 다 채웠다. 2년 전 자신의 누나가 5학년을 마칠 때인 5월 중순까지 끝낸 레슨 숫자보다 이제 2월인데 자신이 마친 레슨 숫자가 더 많다고 자랑을 했다. Khan Academy에서도 꾸준히 매일 수업을 한 결과 5학년 과정을 마치고 다음번엔 6학년 과정을 해야 한다고 자랑을 했다. 미리 예습을 해 가니 학교 수업에서도 반 아이들 중 자신이 제일 수학을 잘한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나는 결과를 칭찬해 주기보단 매일매일 그날의 과제를 마쳐가는 그 모습을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는데 초점을 맞추려 노력했다. 아이는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꼈고 성취감을 느꼈다.
2학기 중간성적표에 All A가 찍혀 있었고 선생님의 칭찬도 적혀 있었다. 맨날 무시만 하던 누나도 인정을 해 주자 기분이 좋은지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