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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tuti Jan 28. 2023

신들림의 종교

새해가 되면 정초부터 사람들은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토정비결을 보고 신년 운수를 점쳐본다.  살다가 입시, 취업, 결혼, 이사 등 큰 일을 앞두고 있거나 삶이 잘 안 풀린다 싶을 땐 신빨이 좋은 무당을 찾아가 점꾀를 보고 굿을 하거나 부적을 쓰기도 한다.  점을 볼 때 무당은 자신이 모시는 신을 불러들여 그 신이 하는 말을 사람에게 전달한다. 굿을 할 때 접신이 되면 시퍼렇게 날이 선 작두 위를 맨발로 올라 타 뛰기도 한다. 사람들은 일반인은 못하지만 신을 만날 수 있는 몇몇 특정인들은 그렇게 신의 말을 우리에게 전달한다고 믿어왔다.

 

우리나라만 이런 게 아니다. 아주 먼 옛날, 오늘날 서구의 시초라 여기는 고대 그리스에서도 사람들은 신의 말을 듣고 싶어 했다.  왕과 장군들은 델피의 언덕에 있는 아폴론신전에 올라 신과 내통하는 파티아의 말을 전해 듣고 전쟁을 일으킬지 말건지 결정했다.  번개, 바람, 하늘, 바다, 삶과 죽음은 그 능력이 너무 강하고 커서 비천하고 작은 내 안에 담을 수 없지만 사람들은 그런 신의 능력을 내 안에도 담고 싶어 했다. 그러던 중 신의 말을 전해 듣는 대신 직접 신을 내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이 벌어졌다. 디오니소스, 또는 로마의 신 바쿠스가 나타난 것이다. 포도주에 취해 있으니 특정한 인간만이 할 수 있었던 광기가 터저나오고 황홀경에 빠졌다. 흥이 생겨 평소 나와 같지 않던 내 안에 숨어있던 내가 나와 춤을 추기도 하고 용기가 생겨 소리를 지르거나 싸우기도 했다.


그리스에만 이런 일이 있는 게 아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 사이에선 환각버섯을 섭취하며 영적인 체험을 한다. 자메이카의 라스타파리는 마리화나를 피우며 신과 만난다.


그런데 기독교야 말로 신들림의 종교다.


술, 환각버섯, 마약으로 내 뇌 안의 화학작용을 교란시켜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환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성령을 초대해 내 안에 살게 한다. 심지어 그 성령님은 술이나 마약에서 깨면 허무하게 깨어버리거나 지극정성으로 기도하고 정진해서 신이 오시길 바라는 그런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한번 내 안에 오시면  영원히 내 안에 사신다.

 

사도행전 2장에선 성령이 임하자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언(외국어)으로 말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도행전 2:13 또 어떤 이들이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이전까지 이렇게 신이 내 안에 임하려면 술이나 마셔야 이상한 말을 지껄일 수 있었으니 기독교인들을 본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 함은 당연한 것일 거다. 그래서 예수님이 포도주를 가리켜 ‘이것은 나의 피’라고 하시며 먹고 마실 때마다 예수님을 기억하라고 하신 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의 보혈로 다시 태어난 자는 이 처럼 성령이 임하여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요상스럽게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되니 말이다.


성령님이 오시면 다만 방언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꾼다고 성경은 말한다.


사도행전 2자 17-18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을 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어린아이들은 예언을 할 수 없다.  

예언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예언을 하는 이가 있다면 보통 경험이 많고 연륜이 있으신 어르신들이다. ‘오늘 뼈가 쑤시는 거 보니 비가 오려나보다.’ ‘두 번의 급락장 이후엔 반등이 온다.’ 등의 예언은 보통 경험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늙은이들은 꿈을 가지기 어렵다.

쉽게 이야기해 초등학생들에겐 네 꿈이 뭔지 어른들이 자주 물어보지만 팔순잔치 자리에서 어르신께 어르신의 꿈이 뭔지 여쭤보진 않는다.

지난해 산후조리를 해 주시러 시부모님이 오셨을 때 어릴 적 꿈이  뭐였는지 여쭤보고 또 앞으로 꿈이 무엇인지 여쭤봤는데 앞으로 꿈이 없다는 말씀에, 그저 우리가 건강히 잘 사는 게 본인의 꿈이라는 답에 안타깝고 슬퍼졌다. 미래가 없는 것처럼.


젊은이는 환상, 영어로는 vision을 본다고 한다. Vision의 사전적 의미는 the ability to think about or plan the future with imagination or wisdom 상상이나 지혜를 통해 미래에 대해 생각하거나 계획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죽으신 구주로 여겨 내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면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오신다. 그러면 어린아이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펼쳐지는 그 세상에 대해 예언할 수 있고 늙은이는 그들이 들어갈 하늘나라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고, 젊은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상상력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갈 계획을 하고 시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마치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내 앞에 그 일이 그려지게 되어 더 이상 크로노스(사람의 시간)를 보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카이로스를 같이 살아가게 된다.  앞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 볼 수 있기에 전도를 하고, 자신의 것을 나누어 사람들을 구제하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유인뿐만 아니라 남종과 여종들도 예언할 것이라 한다. 종들은 그저 주인이 시키는 데로 행동하며 사는 게 그들의 삶일 텐데 그들이 그들의 미래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자체가 자유함을 받는 것이기에 비록 몸은 종의 신분일지라도 그들은 자유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배우지 못해 무식하고 가진 게 없어 가난할지라도 이미 다 가진 하나님의 자녀의 입장에서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안에서 성령님이 일하시면 성령의 능력으로 신바람 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다. 신명 나게 하나님 일을 할 수 있다.  기독교야 말로 진정한 신들림의 종교다.


신명나게 살아보는 한 해가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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