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세 번째 고자질
엄마. 나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살았나 봐. 중학교, 고등학교 원서 쓸 때도 아무 고민이 없었는 데. 대학교까지도 말이야. 요즘 아이들은 꿈은 없는 데 또 생각은 많은 듯 해.
중학교 원서를 쓸 때면 항상 아이들이 깊은 고민에 빠져. 학군이 있어서 중학교는 거의 4 학교 사이에서 결정되고 대부분 원하는 1 지망 학교로 가게 되어있어. 물론 운이 안 좋은 아이들도 있지만. 그 1 지망, 2 지망 두 학교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해.
아이들의 우선순위는 대부분이 친구야. 친한 친구와 같은 중학교로 가고 싶어 하지. 아마 여기에는 불안이라는 요소가 가장 많이 차지하는 듯해. 중학교 진학이라는 것은 엄청 무서워하더라고. 우리 입장에서는 별거 아닌 데 말이야. 그다음이 교복의 디자인이나 강당의 유뮤, 급식의 맛 이런 것들이지.
부모님들의 우선순위는 또 다르셔. 가장 중요한 것이 학업이야. 공부를 잘하는 학교를 우선이라고 생각해. 학교폭력도 만만치 않은 조건이고. 학교마다 정책이나 환경이 조금씩 달라서 성적 차이가 조금씩 나지만 그렇게 큰 격차는 아니야. 학교폭력 역시 학교의 특성보다 그 해 아이들의 특성인 거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사실 거리야. 내가 중학교를 멀리 다녀서 그런가 집에서 제일 가까운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려. 물론 특기를 찾은 아이들은 그 분야를 집중적으로 하는 학교에 가는 것이 맞지. 친구, 학업, 학교폭력은 어느 정도 아이들의 힘으로 해낼 수 있지만 3년 동안 등하교 거리는 또 무시 못하거든.
이렇게 큰 영향이 아닐 때는 아이의 의사에 맡겨보는 것도 좋아.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처음 결정해보는 기회니까 스스로 해보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 사실 둘 다 가볼 수 없으니 뭐가 더 잘한 선택인지 아닌지는 판단할 수 없잖아. 그걸 깨닫게 해주는 거지
만약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해준 선택에는 원망이 남지만 본인 한 선택에는 후회가 남게 되니까. 다음에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도움이 되어 줄 거라 생각했어.
물론.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이야기해줬지. 여러분 인생에서 처음 중요한 결정을 하는 순간이라고. 부모님과 상의를 해서 여러분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꼭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거라고. 몇몇 아이들이 눈이 반짝거렸어. 이 시기 부모님과 중학교 선정 문제로 갈등을 겪는 아이들이 많거든.
다음 날 교실은 또 해맑았어.
뭐가 그리 즐겁냐고 물어봤더니 한 아이가 집에 가서 어제 이야기들은 것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데. 자기는 00중에 가고 싶다고. 후회는 하더라도 원망은 안 하고 싶다고. 우리 선생님이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그리고 돌아오는 말이
“미친 소리 하지 마”였데.
아이한테 하신 말씀일까. 나한테 하신 말씀일까.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은근히 여과 없이 학교에서 집에서의 이야기를 꺼내곤 해. 오늘처럼 말이지. 하루 종일 그 아이는 ‘미소’라고 놀림을 받았고 은근 공범이 된 나는 딱히 놀리는 아이들을 나무라지 못했어.
자신감 있는 아이. 자기 주도적인 아이. 스스로 잘 챙기는 아이. 그 첫걸음은 경청인데 말이지. 조금 틀려도 아이 말 들어주고. 조금 엉성해도 아이 일 지켜봐 주고. 조금 서툴러도 아이 이해해주는 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밑거름인데 말이지.
그냥 그런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은 아이에게 멋쩍은 하이파이브 한 번으로 상황을 마무리했어. 그런 상황에서도 집에서 그렇게 말 꺼낸 용기는 내가 알아주마라는 뜻이었어. 사실 괜한 말을 해줬나 하는 미안함도 들기도 했어.
그래도 엄마. 그 아이의 눈빛에서는 "괜히 말했네"라는 후회는 느껴졌어도
나를 원망하는 마음은 느껴지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