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일곱 번째 고자질
엄마. 이 좁은 나라에서 지역마다 말이 다른 건 참 신기해. 그 와중에 난 서울말, 대구 말, 대전 말을 할 줄 아는 3개 국어를 하는 사람이야. 근데 우리 반 아이들은 대구 말을 잘 모르네.
초등학교 4학년 때 대구로 이사를 갔을 때 친구들이 서울말 쓴다고 놀렸어. 자연스럽게 배운 사투리가 입에 남아버린 채 대전으로 들어왔지. 하하 이곳은 또 신세계야. 이 나이가 되도록 들어보지도 못한 단어와 어색한 억양들이 있었어. 나는 다시 사투리를 배우게 되었어. 이제는 뒤섞여서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되었지만.
경상도 사투리가 한창 입에서 떨어지지 않던 시절이었어. 그래도 아이들에게 원하지 않는 영향을 줄까 최대한 표준어를 쓰려고 노력을 했어. 그럼에도 마음이 급하거나 화가 났거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과 이야기를 한 뒤면 나도 모르게 사투리가 툭툭 튀어나왔어.
수업할 때 난감할 때가 종종 생겼어. 과학시간이었는 데 대류현상에 대해서 알려줬어. 바닥이 차가운 곳에서 따뜻 따뜻한 곳 쪽으로 공기가 이동하는 것을 가르쳤어. 대표 실험도 잘 끝내고 아이들도 개별 실험을 잘했어. 마무리를 하려고 질문을 던졌지.
“공기가 이 방향으로 이동하는 데, 그래서 여가 잡나 저가 잡나?” 잡다는 표현이 사투리인 줄 이제 알았네. 아이들이 멍하게 나를 쳐다보고 나는 설명이 부족한 줄 알고 다시 열강을 했어. 그리고는 다시 물었지.
“여가 잡나 저가 찹나?”
아이들 혼낼 때도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져. 회의 때문에 조금 수업에 늦은 틈을 타 아이들이 장난을 심하게 쳤어. 물론 내 잘못이기도 하지만 다른 반에게도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화가 났어. 그래서 문을 쾅하고 열고는 소리를 질렀어
“너희 내 없을 때 그래 떠들면 좋나?”
우리 동내에서는 흔하게 쓰는 좋아 라는 뜻의 좋나 가 아이들 귀에는 어색하게 들렸나 봐. 욕으로 받아들인 친구도 있어서 오히려 내가 해명한다고 애를 쓴 적도 있어
그 밖에 흔히 쓰던 사투리들이 아이들에게는 혼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 은지는 사람 이름이 아니고 아니라는 뜻이었어. 고마는 고맙다는 말이 아니고 그만이라는 뜻이었고. 말라고(뭐하려고), 게 안타(괜찮아), 저거도(저 것 좀 줘), 더 버서(더워서)등 습관적으로 나오는 많은 단어를 고쳐야 했어. 선생님들끼리도 커피 태워달라는 말이 왜 웃긴 건지 이해할 수 없었어.
생각해보니 나도 그랬던 것 같아. 할머니의 “다리들 어디 갔니?(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어?)”라는 말에 멀뚱멀뚱 내 다리만 쳐다봤다는 놀림을 커서도 듣고 있으니 말이야. 아이들이 배워서 나쁠 것은 아니지만 의사소통에 문제가 된다면 고쳐야지 어쩌겠어.
엄마. 근데 중요한 건 여기 아이들도 내가 모르는 사투리를 써. 기야 기라고 (충청도 사투리로 기야는 맞아 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