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수 많은 말 속에 진짜 나를 찾는 이야기
오늘도 길이 막힌다. 퇴근 시간만 되면 아침에 그랬듯 어디선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도로를 가득 채운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 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한 채 한 평 남짓한 쇳덩어리에 갇혔다. 그렇게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롯한 혼자만의 시간에 남겨진다. 내겐 하루 중 유일하게 대화가 중단된 시간이다.
오늘 하루도 참 많은 말을 했다. 본전 찾기라도 한 듯 참 많은 말을 듣기도 했다. 혼자만의 시간 안에 입은 굳게 다물고 귀는 초점을 잃었지만, 머릿속에는 무수한 대사들이 맴돌고 있다. 온종일 신나게 흔들렸던 흙탕물이 가라앉아 맑아진 윗물에는 몰래 숨어든 나뭇잎 몇 장이 떠다닌다. 쉽게 건져낼 것 같지만 손이 뻗어지지 않는다.
언어를 배운지 언 30년, 일상이 된 대화들은 내 삶의 큰 부분이 되었다. 그 사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뱉어냈던 말, 앞뒤 안 가리고 생각나는 대로 꺼내버린 말, 턱밑까지 차고 올랐지만 속으로 참을 수밖에 없었던 말, 수없이 고민하고 연습해서 힘들게 꺼내었던 말, 그리고 내가 들은 말이 있다.
때로는 이런 말들을 카카오톡의 메시지처럼 상대방이 읽기 전에 지우고 싶을 때도 있고, 내 눈에서 없애기 위해서 삭제해 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말이라는 것이 들을수록 그럴듯하고 지우려 할수록 더 깊게 새겨져 결국 나 자신이 점령당해버리곤 한다. 그렇게 한 번 들은 말은 내 머릿속에 뿌리를 내려버린다.
사람들은 내 페르소나만을 본다. 나는 가족의 구성원이고 때로는 사회구성원의 일원이기에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나의 껍데기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 겉모습에 말을 건네준다. 나도 알고 있다. 내가 듣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나를 위한 말이고, 나를 생각해준 말이고, 많이 고민했을지 모르는 말이다. 그래도 나는 믿고 싶다.
나 혼자 남겨진 공간 속에서 잊으려 지우려 음악 소리를 크게 올려보아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말이 오늘도 나를 괴롭힌다. 그러려니 지나쳐 떨쳐내려고 해도 쉽지 않다. 내가 싫은 건 그 사람이 아니고 그 말이다. 누구라도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흔들리는 내 마음속에서 진정한 나를 잃지 않도록 발버둥을 친다.
당신의 말이 내 삶이 되긴 싫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