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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라 Jul 24. 2023

살려면 먹어야지, 별수 있겠니

또다시, 정신의학과


우산에 가득 묻은 물기를 털어내고 들어간 그곳은 빈자리 하나 없이 빽빽하게 앉은 이들로 가득 차있다

통화를 하는 이도, 함께 온 이와 담소를 나누는 이도 없다

그저 멍하니 자리에 앉아 기계음으로 불려질 자신의 이름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불려지는 내 이름에 한숨을 쉬며 오늘은 절대 울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며 진료실 문고리를 잡는다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 자리에 앉아 마주 앉은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 오랜만에 오셨네요. 요즘 어때요? 무슨 일 있어요?"

결코 다정스럽지 않은 목소리와 눈빛의 60대 아저씨선생님을 바라보며 심호흡과 함께 입을 여는 순간

역시나 수도꼭지가 먼저 터져버렸다


멈출 생각 없이 줄줄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티슈로 닦아내며 막혀버린 목구멍을 억지로 열어서 그간의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구구절절 쏟아내었다. 나의 서럽고 억울하고 원망 가득한 하소연을 그는 철저히 내편이 되어 들어주고 기다려준다. 그리고 거기까지


"우선 나가서 검사하고 다시 이야기해보도록 해요"


한참을 공감 속에 있던 공기의 기류는 확 바뀌어버린다

주섬주섬 눈물을 닦고 진료실문을 열고 나가니 대기실에 앉은 모두가 퉁퉁부은 내 눈을 힐끔거리며 보는 것만 같아서 화끈거리지만 뭐 어때, 여기 이렇게 안 힘든 사람 있어?라는 생각에 아무렇지 않은 척 빈자리에 앉아 다시 한번 내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진료실에서 울면서 나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정말 나만 힘든 건가? 아니면 이미 전에 다 울었기 때문에 이제 울지 않는 건 아닐까? 나도 이다음 약 받으러 올때는 진짜 울지 않을 자신이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다짐하지만 인간 수도꼭지는 장담할 수 없다 )



머리에 이상한 띠를 두르고, 전극이 통하는 발판에 두발을 올리고 양손에 손잡이스틱을 잡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는다. 그동안 모니터에서는 빨간 선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림을 그리고 있다

5분가량 진행되는 이 검사는 뇌파로 현재 나의 상태를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과연 이 허접해 보이는 (한자가 가득 적혀있는) 기계가 내 머릿속을, 내 상태를 제대로 잘 읽어낼 수 있는 걸까?

사실 중요한 건 이 기계에서 나오는 결과가 아니다




그저 이 지옥 같은 마음을 진정시켜 줄 약을 원했다

5년 전 처음 공황발작을 겪고 1년도 채 약을 먹지 않고 임의로 약을 중단했었고

3년 전 다시 병원을 찾아 약을 먹다가 또다시 스스로 약을 중단하고 이겨내 보리라 다짐했었다

그 후 소소한 공황증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이겨내던 나였는데


출퇴근길 왕복 1시간 30분 동안을 매일 혼자 눈물 흘리며 운전하는 내 모습이 결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밤 악몽에 시달리고 그 좋아하던 술을 먹는데, 대성통곡을 하며 기억을 잃고, 자꾸만 베란다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죽고 싶은 마음만큼 미친 듯이 살고 싶은 욕망에 나는 또다시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한번 약 먹기 시작하면 그거 죽을 때까지 먹어야 된다던데 조금 더 생각해 보지 그래?"

"그거 내성 생겨서 나중에 점점 센 약 먹다가 진짜 나중에 큰일 난다더라"

"보험기록에 남아서 나중에 불이익 생기면 어떡해"

"나도 우울한 적 많은데 그냥 좋은 생각하고 밖에 나가서 좀 움직히고 그렇게 하면 좋아져~"



수많은 이들의 걱정과 본인들의 강인한 정신력 자랑들을 뒤로하고 나는 잠들기 전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약기운이 돌아 돌덩이처럼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껌뻑이며 진료실에서 들었던 말을 곱씹고 또 새긴다


감정은 물과 같아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게 당연한 거예요.
결국 그 감정은 흘러서 아이들에게 가게 된다는 거, 그거 잊지 마세요


우리 집 가장 낮은 곳에 존재하는 작은 마음의 샘들이 상처 없이 사랑과 믿음, 행복으로 가득 찰 수 있기를 기도하며 오늘밤 나는 약에 취해 잠든다. 엄마가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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