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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Nov 11. 2023

텐팅을 사이에 두고

- 정세랑, <피프티 피플>

이번 목금은 마취과 학회 기간이었다. 외과 학회 기간에 우리가 수술을 하지 않고 쉬는 것처럼 마취과 학회 기간에는 마취과 선생님들이 마취를 하지 않고 쉰다. 마취과 의사가 없으면 당연히 수술을 못하니 어쩔 수 없이 마취과 학회 기간에는 수술방 전체가 임시 휴업에 들어간다. (물론 당직 의사는 남아 있으니 응급수술은 한다.) 대개는 외과 학회와 마취과 학회를 같은 시기에 하지만 가끔씩 시기가 어긋나는 해가 있는데 올해가 그랬다. 지난주에 외과 학회, 이번 주에 마취과 학회로 2주 연속 목금 수술을 쉬었더니 병동 입원 환자가 평소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 A병원 교수님이자 내 대학동기인 친구가 "맨날 마취과 학회였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어찌 그리 내 마음과 꼭 같은지 모르겠다.


수술이라는 것이 외과 의사 혼자서는 절대 할 수가 없어서 어시스트도 필요하고 스크럽 간호사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취과 의사가 없으면 수술을 시작하는 자체가 불가능하니 성공적인 수술을 위해서는 마취과 의사의 안정적인 마취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환자를 마취하고 깨우는 과정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 하루 수술이 마지막까지 밀리지 않고 빨리 끝난다. 봉합이 끝날 때까지 마취 상태가 유지되다가 끝나자마자 환자가 바로 깨어나서 회복실로 나가면 이상적이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수술이 끝난 이후에도 환자가 깨어나지를 않아서 30분씩 기다리게 되기도 하는데, 모 스승님께서는 그 약간의 딜레이가 싫어서 아직 배를 닫고 있는 중임에도 수술 끝났으니 환자 빨리 깨우라고 마취과 선생님을 닦달하기도 하셨다.


외과 의사와 마취과 의사의 관계는 묘한 구석이 있다. 적절한 마취와 정확한 수술로 환자를 낫게 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마음을 모으면 참 좋겠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항상 그렇게 이상적이지만은 않아서 때로는 긴장 관계에 놓이기도 한다. 나도 교수 임용이 되고 초반에는 마취과와 이런저런 이유로 몇 번 다툼이 있은 뒤 껄끄러운 관계를 한동안 유지하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은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스스로는 생각한다). 사이가 나빠지면 결국 손해를 보는 사람은 나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가 S대병원에 근무하던 시절 외과계 모 과의 C 교수님은 친절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흥분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그랬다. C교수님은 수술을 끝내고 수술방을 나서기 전 항상 마취과를 향해 한 번, 수술팀을 향해 또 한 번 90도로 인사를 하셨었다. 전공의 시절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내가 집도의가 되고 나서 돌이켜보니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겸손의 표시였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비록 수술은 내가 했지만 이번 수술이 잘 끝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애써 준 여러분들 덕분이라는 마음 깊이에서 우러난 감사의 표현이었다. 나는 차마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수술방을 나갈 때 수고하셨습니다 한 마디 하고 얼른 도망치는 것으로 대신한다.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함-이라고 쓰고 시크함이라고 읽는다-을 디폴트로 장착한 탓이다.




소설 <피프티 피플>은 병원을 배경으로 의사, 간호사, 환자, 보호자, MRI 기사, 임상시험 참가자 등 51명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목이 <피프티 피플>인데 이야기를 쓰다 보니 넘치게 써서 51명의 이야기를 담게 되었단다. 예전에 내가 어떤 글을 통해 그런 한 적이 있는데 병원은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 같은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공간이다. 그것이 다양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정세랑 작가가 병원을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일 것이다. 참으로 영리하다. 어찌 보면 뻔해질 수 있는 이야기들 대신 '의료진''환자'가 아닌 이들의  이야기까지 다양하게 담아낸 것이 이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다채롭지만 집중도는 다소 떨어진다.


몇몇 인상적인 이야기 꼭지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마취과 의사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천재소녀가 자르면 수술 부위에 피가 나지 않는다는 소문은 과장이지만, 그런 소문이 날 만도 했다. 확연한 뛰어남에 찬사를 보내고 싶은 게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마음인데다가, 환자가 깨어나기 전에 수습되기 때문에 환자가 몰라서 그렇지, 엉망이 되고 통제불능이 되고 욕설이 난무하고 난도질에 가까워지는 그런 수술들은 또 얼마나 흔한가. 솜씨가 별로인데 다른 걸 잘해 대학병원에 남은 외과의들도 분명히 있다. 거기에 비해 천재소녀의 수술은 몇 시간짜리든 마음 편히 지켜볼 수 있었다."

- <피프티 피플> 중에서


마취과 영역과 수술 필드는 대개 수술포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데 이를 '텐팅'이라고 한다. 비록 텐팅으로 분리되어 있을지언정 마취과 의사는 수술 중인 환자의 상태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 출혈이 심해지거나 혹은 수술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아 예기치 않게 길어지거나 하면 마취과 의사도 같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취과 의사는 '예측이 가능한' 수술을 하는 외과의를 선호한다. 그래서 혹자는 '실력 있는 외과의를 감별하려면 그 병원 마취과 선생님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수술이라는 행위 자체가 수술실이라는 극도의 폐쇄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다른 병원의 의사 혹은 설령 같은 병원에서 근무한다고 해도 다른 과 의사의 수술 실력을 알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수술 과정을 늘 함께하는 마취과 의사는 어느 외과의가 수술을 안정적으로 하는지 정확하게 감별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몇 년 전 골반 깊은 곳에 위치한 후복막강 지방육종 (retroperitoneal liposarcoma)을 수술할 때였다. 30cm에 달하는 종괴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마취과 교수님께서 조용히 한마디 하셨다.

"이교수, 잠시만 쉬었다가 하지."

수술에 집중하느라 주변을 살피지 못하고 있다가 고개를 들고 정신을 차려 보니 마취과 교수님과 펠로우 선생님, 액팅 치프까지 세 명이 달라붙어 환자와 씨름하고 있었다. 종괴 주변으로 스멀스멀 배어 나온 출혈이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사이 5L짜리 석션 통을 가득 채울 만큼 많아져 있었고, 마취 기계는 쉴 새 없이 알람을 울려대고 있었다.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출혈 부위를 손으로 누르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한 3분이나 지났을까. 마취과 교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이제 다시 시작해 봅시다."

내가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는 사이 환자의 혈압과 심박수가 거짓말처럼 정상 범위로 돌아와 있었다. 아니, 심박수가 안정된 건 환자만이 아니었다. 내 심박수도 같이 안정되어 있었다. 그날 10L에 달하는 출혈이 있었음에도 수술이 무사히 마무리될 수 있었던 건 분명 마취과 선생님들의 공이 컸다. 수술을 마무리하며 마취과 선생님들께 깊이 고개 숙여 인사를 드렸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록 텐팅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외과와 마취과는 분명 한 팀이다. 수술이라는 것이 나 혼자 잘나서 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님을 외과 의사로 지내온 세월이 길어질수록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다.



* 마취과의 정식 명칭은 '마취통증의학과'이다.


* 그나저나 우리 내년에도 학회는 같은 주에 하지 말고 따로 하기로 해요. 모처럼 쉬고 얼마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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