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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미녀 Sep 13. 2022

딴생각을 하며

그림책 <딴생각 중 >

<딴생각 중>(마리 도를레앙,한울림 어린이)


파란 표지에 책상에 앉아 있는 한 사람과 날아가는 하얀 새들 속에 한 마리 노란 새. 표지의 그림 속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노란 새일까? 아니면 날아가는 새들 모두일까? 창공 그 자체일까? 마리 도를레앙의 <딴생각 중>은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응시하는 한 사람으로 시작한다. 책의 면지로 들어가면 새들은 더 많아지고 더 커진다. 그가 하는 딴생각은 무엇일까?

날이 푸르러지는 5월이 되면 학교 뒷산에서 풍겨오는 아카시아 꽃향기는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시간을 나른하게 만드는 향취였다. 고개를 돌리면 보이던 산의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나를 자꾸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라고 손짓하는 듯 보였다.


나의 사춘기는 불안한 시기였다. 상대방은 모르지만, 말에 상처받으며 친구 관계는 뜻대로 되지 않았고, 외모에 관심이 많던 나에게 얼굴은 마음에 들지 않은 것들 투성이었다. 그리고 가정 형편은 또 어떤가.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집 사정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날들이 많아지던 즈음, 어느 날 학교에, 좁은 교실에, 딱딱한 의자에 묶인 몸이 한탄스러워 눈물을 흘린 적 있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그게 사춘기야”라며 친절히 알려주었다. 사춘기... 질풍 도니의 시기라고 배우는 그때 재능도, 능력도 없는 스스로가 무척 한탄스럽기도 했는데 봄날 꽃향기의 유혹은 얼마나 달콤했는지. 그 유혹은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어도 뒷산에 황량함이 감도는 겨울에도 이어졌다. 나는 심각하게 나를 고민했다. 왜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고민하는지,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데, 왜 나만 이렇게 밤마다 낮에 뛰쳐나가지 못하는 것을 서러워하면서 울고 있는지.... 왜 그랬을까.


<딴생각 중>을 넘기면 학창 시절 나와 같은 모습으로 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한 사람이 나온다. “그 일이 처음 일어났을 때, 나는 학교에 있었다. 나는 너무너무 다른 곳에 가고 싶었다”그림에 그려진 것은 구름이 있는 창밖의 같은 풍경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창밖의 모습에 어떤 점이 끌렸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너무너무 다른 곳에 가고 싶다는 열망은 고개를 돌린 그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에서 그대로 전달된다. 낮에 나가지 못해 우는 나와는 달리 그는 ‘... 끝내 나는 참지 못했다.’라며 덩그러니 옷을 벗어둔 채 사라진다. 하지만 우리가 예상하듯 선생님에게 그의 부모는 불려 가고, 그는 병이 아닌지 검사를 받는다. 아마 내가 그때 뛰쳐나가지 못한 이유도 ‘부모 소환, 부적응자’라는 진단 결과가 뻔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사라지지도 못했지만 잠깐 사라졌다고 해도 사실대로 말할 용기는 없었을 것이다. 착한 딸, 착한 학생이고 싶었던 나는 어른들이 원하는 것들에 적당히 맞추는 눈치 정도는 있었다. 책속에서 그가 본 것은 무엇일까?  그가 본 것은 어쩌면 별것 아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값진 것이 아니기에 , 평범한 것은 더 대단해 보인다. 멀리 날아갈 수 있는 힘은 자신에게 나올 것이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을 따라가고자 하는 욕망에 충실했고, 그래서 사라질 수 있다. 부모는 그에게 “바람 같은 아이이구나”라고 말하지만, 그 말조차 그를 설명할 수 없다. 그는 벌써 사라졌으니까.


나는 밤마다 울면서도 사라지는 방법을 잘 몰랐고 나 자신이 가진 여러 면들을 부정했다. 그 시간은 사춘기, 직장에서도 그리고 결혼 후에도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들, ‘강하다, 낙천적이다, 냉소적이다, 공감력이 없다’라는 말이 무척 싫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에 얽매여 그러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신경을 썼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나는 때론 한없이 비겁해짐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결혼하면서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는 것은 더 심해졌다.‘며느리, 딸, 아내, 엄마’의 역할이 얼마나 나랑은 안 맞는지 절감하던 때였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고 나를 지키는 방법도 한 없이 미숙했던 시간들. 그러면서 서서히 나는 우울의 바다에 가라앉고 있었다. 나를 구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나밖에 없는데, 나는 그 힘을 다른 이들에게서 얻고자 했다. 그때는 날아가고 싶다는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조차 버거웠던 때였다.


사라질 수 있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삶에서 너무 멀리 갈 수도 없음을 이제는 이해한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책이었다. 책 속의 그처럼 돌아올 곳이 있기에 사라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를 위안해주는 한 권의 그림책이 있어 다시금 용기를 내었다. 예전에 내가 5월의 꽃 향기에도 울음을 터뜨렸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기쁘게 기억한다. 내 눈물을 부끄러이 생각하지 않으면서 나는 사라질 수 있는 날개를 얻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내가 아닌 내가 나를 마주 대하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요즘도 ‘낙천적이네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에 나의 우울과 슬픔, 아픔을 감히 털어놓을 용기를 낸다. 예전에 나는 낙천적이고 싶어서 가장하는 사람이었을까.


<딴생각 중>은 딴생각을 할 수 있는 나를 사랑하게 해 준다. 다시 돌아올 곳을 기억하게 해 주며, 비로소 나의 멋진 능력을 발견하게 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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