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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미녀 Oct 06. 2022

고향으로.....그리고 그리움  

그림책 <다시 그곳에>

<다시 그곳에>
      

도시에서 나고 자라도 고향은 있을 것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노랫말 그대로 꽃피는 물론 산골까지는 아니었지만, 부산에서도 행정구역이 ‘리’에 해당되는 곳이었다. 마을에 다니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아주 한참 고개를 올라가야 했고, 논도 밭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름에는 수박을 넣어놓은 개울 밑으로 숨었고 겨울에는 대나무 숲의 소리를 들었다. 이웃에 살던 고등학생 오빠의 퉁당거리는 드럼 비슷한 것을 치는 둥탕거림도 익숙히 듣곤 했다. 집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두 군데였는데, 두 곳 중 어느 곳도 차는 올라올 수 없었다.


 이웃집은 우리 집 뒤에 한 채가 있었고, 그곳에는 ‘현옥’이라는 언니가 있었다. 당시 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던 나보다 한참은 더 나이가 든. 그러고 보니 난 언젠가 언니가 어딘가 (어디였을까?)합격했다는 소식을 현옥이 아줌마와 기다렸던 것 같다. 그날 아침 유달리 컸던 까치 소리에 나는 언니의 합격을 자신만만해했다.      

부뚜막이 생각난다. 우리 집은 아니고 기억 속에 많은 부분은 현옥 언니 집이 떠오른다. 부뚜막에서 관절염에 좋다는 소리에 고양이를 먹었다는 아줌마의 말에 기절할 뻔 한적도 있었다. 그 집 뒤로 대나무 숲이 있었고, 언니네 집을 지나야 엄마를 보러 갈 수 있었다. 엄마는 늘 동네 밭에서 소일거리를 했고, 마을 일을 도왔다. 눈이 내렸던 날에도 난 어김없이 현옥 언니네 집에서 놀고 있었다. 조그만 집. 우리 집은 양옥이고 마당에 넓어서 사과나무와 개도 닭도 키웠지만, 내 기억 속에는 언니의 집이 더 많이 나온다.


애니메이션 감독인 나탈리아 체르니셰바의 애니메이션을 그림책으로 옮긴 <다시 그곳에>는 다시 돌아오는 한 사람의 여정이 그려져 있다. 노란 버스에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작가는 러시아에서 태어났고, 이 작품은 그녀의 두 번째 작품이다.      

책 속 노란 버스는 도시를 달린다. 그녀가 칸 버스는 큰 건물, 공사장, 크렘린 궁전같은 곳도 지나고 있다. 아주 뾰족한 침엽수림을 지나 계속 달리는 버스. 몇 해전 그리움에 못 이겨 온 가족에게 이번 여행에는 꼭 내가 태어난 곳을 가겠다고 말했다. 가족들도 흔쾌히 같이 갔는데, 내 기억과 다른 길들이 혼란스러웠다. 내가 아는 길들은 더 크고, 더 길었는데... 궁시렁 궁시렁....

어릴 적 버스를 타러 갈 때 지나갔던 굴다리에서 우리는 아주 열심히 놀았는데, 그 굴다리는 여전히 있었지만, 아이들이 놀래켜줄 만큼 어둡지도 않았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우리는 금방 지나가려고 달렸는데 말이다.   

   

버스를 내린 여자와 멀리 정말 아주 멀리 집 한 채가 보인다. 누가 기다릴까.

내가 태어난 곳을 가면서 나는 계속 여긴가, 여긴가를 중얼거렸다. 하나도 모르겠고 옛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튼튼해 보였던 집의 흔적, 아니 그것으로 올라가는 흔적조차 사라졌다. 그렇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대나무 숲을 보고 이곳이 그때의 거리려니 추측해볼 수 있었다. 여전히 잘 모르겠고, 기억과 현재가 달라서 아이들이 “엄마 여기가 맞아?”라고 물어도 확실히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것이지? 그때는 마을 어귀에 큰 저수지도 있었고, 그곳에서 한번씩 물고기가 걸렸다고 물고기를 들고 오시던 아버지도 기억나는데 말이다.    

  

다시 책으로 들어가면, 여자의 시선으로 다 기울어져 가는 집 한 채가 보인다. 그림 속 여자는 한 페이지를 다 차지할 정도로 크다. 그녀의 발밑에 집과 모자를 쓴 한 사람이 아주 작게 그려져 있다. 그녀를 올려다보는 모자쓴 여인의 얼굴이 웃고 있다. 그 웃음이 모두 설명해준다. 미소를 띤 모습과 여인의 목에 걸린 컵에 담긴 빨간 열매에서 향긋한 냄새가 나는 듯 하다. 여자 또한 발 아래의 여인을 내려다 본다. 정말 거대해 보인다. 거대한 여자의 발에 꼭 붙다시피 껴안은 여인.

무슨 이야기도 필요하지 않는 거 같다. 그 충만함......     


그렇게 내가 태어난 곳을 기억을 더듬어 찾아갔는데, 다 찾지 못한 기분으로 그곳을 떠났다. 전원주택들이 들어선 그곳에 나는 다시 떠올릴 것도 하나 건지지 못했다. 엄마와 아빠와 함께 왔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럼 내 기억과 부모님의 기억을 맞춰볼 수 있을 건데.....서울에서 그곳까지 350여 킬로를 달려 간 것에 비해 아주 짧은 시간 머물렀다. 그곳에서 “혜령아”하고 불러줄 사람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마을이 이렇게 변한 게 언제였나요? 혹시 저를 기억하세요? 그때 저기 담뱃집이라는 곳에 세들어 살던.....집에 큰 딸이예요. 그 뒤에 저 윗집으로 이사를 갔어요.’ 그림책 속 여자는 여인에게 입을 맞춘다. 어쩌면 엄마나 할머니였을 것이다. 아니면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현옥언니였을 수도.

     

여인이 그녀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여자는 점점 소녀가 아이가 된다. 오히려 여인보다 더 작아진다. 여인의 얼굴에 아까 여자일 때 뽀뽀한 입술 자국이 선명하다. 둘이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이 그리움을 준다. 간혹 고향을 두고 떠나온 나를 타향살이한다고 여긴다. 타향이긴 하지만 정붙이고 사는 곳이 고향이라고 일깨워주는 이도 있다. 그렇겠지. 하지만 늘 돌아가고 싶은 곳을 떠올린다. 그때의 나를, 젊은 엄마를, 아빠를, 늘 싸웠던 동생을,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늘 아빠 엄마가 부부싸움을 한다고 알려주었던 아이도.      

고향은 공간만은 아니다. 마음 붙일 곳, 마음 나눌 누군가가 나에게는 고향이었다. 오롯이 나를 나로 보여줄 수 있는 곳. 그때의 그리움으로 지금은 조금씩 살아낸다. 어린 나를 기억하면서 지금의 나를 다시 세운다. 그래서 고향은 누구에게나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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