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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미녀 Oct 14. 2022

무엇이 될까....아무도 모르지

그림책 <검은 무엇>

 <검은 무엇>

살면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알 수 있을까? 그건 몇 살이 되어야 아는 걸까? 학생들과 수업을 하면 아이들은 간혹 자신은 아직 꿈이 없으며,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씁쓸해한다. 때론 진로를 정해서 나아가는 친구들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아직 무엇을 하고 싶은지, 되고 싶은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한다. 그러게, 무엇이 되고 싶은지, 하고 싶은지는 늘 ‘어떻게’나 ‘왜’보다 앞선 질문이다. 먼저 정했고 아직 없다는 건 단지 앞서거니 뒤서거니의 문제인데 말이다.


중학교 때 나의 꿈을 정해 벽에 붙여 놓고, 명절에 오는 친척들이 “넌 저걸 하고 싶구나”라고 말이라도 건네면 뿌듯해하던 내가 있었다. 어쩌면 그런 말을 듣기 위해 붙여 놓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보통 뻥으로 시작해서 성과를 만든다는 성공의 기사를 맹신했다. 이제야 생각해보면 벽에 붙여 놓은 나의 꿈은 직업에 지나지 않았는데, 직업을 가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싶었다. 하지만 삶의 방향은 때론 내가 키를 쥐고 있어도 바람과 파도의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어린 시절의 나는 잘 몰랐고, 서서히 벽에 붙인 누레진 종이를 떼기에 바빴다.


<검은 무엇>은 어느 날 아침 동틀 무렵, 울창한 숲 부드러운 햇살 아래 여느 아침보다 유난히 고운 빛으로 반짝이는 그날 숲 속에 난데없이 발견된 검은 무엇에 관한 이야기이다. “초록색, 붉은색을 찬란하게 뽐내는 나무들 사이, 바람이 지나다니는 작은 공터에 뭔가 검은 것이 있네. 도대체 저 검은 게 뭐람?” 제일 처음 발견한 표범 한 마리는 검은 무엇을 자신이 사냥할 때 떨어뜨린 자신의 무늬라고 생각한다. 친구들한테 조심하라고 말해야겠다며 달려간다. 까마귀는 별조각이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오늘 밤하늘이 무너져 숲이 깔릴지로 모른다고 다른 동물들에게 경고해야겠다고 한다. 여우는 도시에 있는 왕궁 이야기를 떠올리며 동물들에게 “군인들이 오기 전에 모두 피하라고 말해야겠다!” 며 바람처럼 몸을 날려 ‘휙’하고 사라졌다. 이어서 등장하는 사슴, 부엉이, 고양이가 자신이 아는 두려움을 모두에게 말해준다.


상상하는 대로 숲은 시끌벅적 난리가 났다. 저마다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말하느라 야단이 났고, “모두 닥쳐올 위험이 걱정되어서 큰 소리로 떠들었”다. 검은 무엇은 무엇일까? 숲 속 동물들의 이야기를 쫓아가면 궁금해진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거 같다. 검은 무엇은 보며 다시금 아이들과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다. 이제 14,16세, 아니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나의 큰 아들까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의 아이들의 모습은 대부분 아직도 진로를 정하지 못한데, 대해 말을 주저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공부를 못해서 등의 이유를 붙인다. 또한 무엇이 될 거라고 말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한다. 부럽긴 하지. 학부모 모임에서도 아이의 진로는 주로 이야기하는 주제이고, 진로를 정한 아이를 둔 부모의 비법을 듣고 싶어 한다. 한때 나는 큰 아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번뿐인 인생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힘들어만 하는 아이의 모습에 솔직히 화도 났다. 소중한 기회의 시간을 스스로 버리는 모습이라고 느껴졌다.


아마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그렇게 배우고,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두 번쯤 들었을 것이다. “왜 아직 무엇을 할지 알지 못해?”라는 말. 학교에서 진행되는 진로 시간은 직업에 대한 것들로 채워진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생각할 시간도 파악도 되지 않았는데,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자신이 미래에 할 것을 정하라고 한다. 정해서 쭈욱 끈기 있게 밀어붙이라고.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 사람은 안다. 중학교 때 정확하게 내 할 일을 정했던 나조차도 매 순간 고민했고, 좌절했다. 그림책 속 동물들이 검은 무엇은 발견하고 다른 동물들에게 두려움을 전파하는 모습이 나의 예전 모습과 겹쳐졌다. 아이에게 아직도 무엇을 할지 모른다니,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 거냐고 닦달했던 모습 말이다. 검은 무엇을 발견하고 동물들은 다른 말들을 해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장래에 대한 걱정들이다.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모습인 거 같아 씁쓸했다. 혹시 우리는 아이들에게 지금 무언가 하지 않으면 네 삶이 탈락할 거라고, 그리고 그런 태도에서 오는 부수적인 차별은 감내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가.


어떤 책에서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한 구절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 삶의 꿈은 직업이 아니고, ‘어떤’이나 ‘어떻게’ ‘왜’ 일지도 모르는데. 검은 무엇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두려움의 존재가 된다, 바꿔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니기에 무엇이라고 될 수 있다. 작가는 “어쩌면 너는 검은 무엇의 정체를 알지도 몰라”라고 말을 건넨다. 아이들이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또 다른 무엇이 될지 단정 지을 수 없다. “검은 무엇, 사랑스러운 무엇, 전혀 무섭지 않고 해롭지도 않은 무엇.”


아이들의 시간은 우리와는 다른데, 과거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씨앗이 싹이 트는 데는 그 혼자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름진 땅과 적당한 태양, 그리고 물을 주는 정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싹은 움틀 의지를 가지게 된다. 검은 무엇이 어떤 존재일지는 우선은 싹이 터봐야 한다. 책 <검은 무엇>은 그런 궁금증을 끝까지 남긴다. “그러니까 검은 무엇이 무엇이냐 하면......”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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