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고무줄 뛰기도 잘 못하는다가 툭하면 쓰러지기 일쑤였던 딸을 위해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덜 움직이는 놀거리였다. 집에 있던 미싱으로 만들어주신 인형을 아직도 기억한다. 맨몸이었던 인형에게 나름 옷을 입혀주고 싶어 뒹글던 헝겊을 잘라서 이리저리 묶어주었다. 어느 날 부모님이 나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셨던 것을 우연찮게 들었다.
"혼자서만 노는데 어떡하지?"
"뭐 걱정인가요. 그럴 때도 있지."
"너무 혼자 노는게 병이 아닌가 싶은데"
"그래도 이렇게 노나 저렇게 노나 잘 노니 걱정마세요."
어린 나는 내가 큰 병에 걸린 듯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의 병. 병이 있다는 소리처럼 들려서 무척 고민했다. 학교에서도 잘 적응을 못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학생이었다. 화장실 가고 싶다는 얘기를 못해 실례를 한 경우도 있었다.
오죽하면 선생님이 "없는 아이처럼 여겨진다"고 하셨을까. 친구들을 사귀는 데 어색헤하고 , 모든 것을 배우는데 늦되었다. 또래아이들이 한번에 알아듣는 걸, 알아듣지 못해서, 이해하지 못해서 3학년 때는 선생님에게 야단을 크게 맞기도 했다.
분수를 이해하지 못해서, 늘 시험을 망쳤고, 선생님은 도리어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강낭콩 관찰일기로 전교에서 큰 상을 받았는데 분수를 못한다고 ..... 아직도 나에게는 긴장하면 하루에도 수십번 화장실을 가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남아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믿지 않는 이들이 많지만, 그때의 나는 하루에도 수십번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고 갈망했던 아이였다.
활발한 동생에 비해 특히 몸으로 하는 모든 것에는 서툴러서 아이들이 하는 대부분의 놀이에는 끼이지 못했다. 같이 논다고 해도 나를 한편에 넣어주는 아이들은 찾기 어려웠다. 그런 나를 걱정했던 엄마는 당시 집으로 책을 팔러 방문하던 외판원에게 거금을 들여 전집을 사주었다. 이제는 30여권정도였는데, 그림과 작가에 대한 상세한 설명, 그리고 관련 예술품들까지 처음보는 칼라 책들은 또다른 세계였다. 탐독탐독..... 도리어 책을 사준 것을 후회했다고 하셨다. 하도 워낙 집밖을 안나가는데, 다시 틀어박혀 있어서.
사라 스튜어트의 <도서관>에는 잠잘 때도, 학교 갈때도 책만 생각하는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나온다. 책이 너무 많아서 침대고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그녀는 도서관에 책을 넘겨주고 책을 읽으러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과 책방을 하고자 꿈꿨던 것은 어린시절부터 책과 함께 했기 때문에 나에게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꿈을 꾸고는 선택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그 꿈들을 밀어놨었다.
그래서 책 속의 사라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자신의 세계를 그대로 밀고나가는 힘이 느껴져서 말이다. 그렇게 묵묵히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꾸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제는 책속에 둘러싸여 있다. 돌고돌아 온 길이지만..... 그래서 이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것이 때론 슬프다. 문득 엄마가 사주셨던 전집을 기억했다. 가로 글쓰기 방식에 작가와 작품에 대한 많은 도록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 책으로 세계문학의 재미에 빠졌었다.하지만 그 책을 다 읽었다고 생각하셨던 엄마는 실리적으로 100권이 넘는 다른 세계문학전집으로 바꾸셨는데,그 사실을 알고 나는 불같이 화를 냈다. 눈물콧물 다 흘리면서 다시 찾아오라고...주고간 명함으로 전화를 했더니 벌써 팔았다는 대답을 들었다. 씩씩거리며 그 아저씨가 거짓말을 한다고 다시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딸을 위한 엄마 나름의 계획이었는데, 당시 나는 정말 대책이 없이 엄마를 몰아붙였다. 결국 그 책을 찾지 못했지만, 성질 더러운 딸은 한번씩 불평을 털어놓곤 했다.
시간이 흘러 그 전집을 늘 찾고 싶었다. 단양의 새한서점에 가서도 그 전집을 찾기 위해 몇 시간을 돌아다녔고, 인터넷에 검색도 했다. 그러다 그 책들을 수집한다는 헌책방을 알게 되었다. 그곳에 아직 가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그 책들을 찾고 싶은 건 엄마를 다시 찾고 싶었기 때문은 아닐까. 거금을 들여,(몇달을 돈을 넣기 위해 고생하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책을 사주셨던 그 마음을 다시 기억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