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나는 내 안의 겁쟁이를 만난다. 처음부터 그랬는지,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겁쟁이다.
창밖을 바라보는 입장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그렇지만 겁쟁이라는 스스로의 단정에 화가 날 때도 있다.
나만 그런 건 아닌데 말이다.
어린 시절은 나를 잘 포장하기 위한 분투였다고 돌이켜 본다.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읽히고 기억되기를 신경 쓰는. 때론 좌절해서 눈물을 삼키기도 했지만, 그 모든 시간들 속에는 사람들이 날 어떻게 바라볼지 전전긍긍했다. 성적이나, 외모, 집안, 재력, 기준들을 갖추기 못해서 더 신경을 썼었던 거 같기도 하지만. 공부를 잘해서 주목받던 국민학교를 졸업하자 이제는 공부만으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갔다. 순진한 생각. 그러게 하지만 공부 앞에 정말 잘했다는 수식어가 붙었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고등학교에서 진로 고민을 하던 나는 어느 날 미술실로 선생님을 찾아갔다. 당시 미술사를 책으로 다 읽을 만큼 중학교 때도 미술에 대해 잘한다고 칭찬을 받았던 만큼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바로 며칠 전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칭찬을 해 주신 선생님이 아닌가.
"선생님 미술을 전공하고 하고 싶은데요?"(이 질문은 잘못되었다. 그러게 미술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생각조차 하지 않은)
"음, 아버지는 무슨 일 하시는데? 사업?"
"아..... 뇨."
그리고 긴 침묵. 그날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업을 하지 않는 게 나에게는 미술을 공부할 수 없는 결격 사유로 생각되었다.
사랑하는 마음이 크면 그 배신감에 더 멀리하게 될 수 있다. 그런 관계가 한마디로 '애증의 관계'라고 하겠지.
미술사에서 읽은 수많은 화가들은 배를 곪으며 작품을 남겼는데, 내가 좋아했던 고흐도 평생 팔리지도 않는 작품을 그렸다고 하는데. 물음은 많았지만, 세상을 너무 모르는 거라고 단념. 쉬운 단념.
오랜 시간 (뭐 고등학생이 뭐 그리 오랜 시간을 방황할 시간도 없었겠지만) 방황이고 뭐고 나는 깔끔하게 정리했다.
너무 가난해서 한참 뒤에 다시 대학을 가고 미술을 전공했다는 중학교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다시 이야기를 해서 똑같은 말을 듣는다면 아주 케이오패를 당할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그냥 이어지는 고등학생의 이야기. 마음속에 내가 무엇을 품고 있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중학교 때의 반항심은 꺾이고, 나 자신도 세상에서 말하는 많은 것들을 쫓기로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뱁새가 황새를 쫓는 격.
비슷한 상황은 다시 이어졌는데, 나의 사랑과 증오의 깊이를 확인하는 순간들은 다시 한번 찾아왔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읽었던 <전태일 평전>과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는 나에게 이런 인생을 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순진한 생각. 젊을 때나 가능한 생각. 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타협과 물러남. 사랑하지만 멀어지는 유행가는 왜 그렇게 많은지. 갈피는 못 잡은 나는 그냥 휩쓸려 살아왔다. 무엇이, 왜, 어떻게라는 질문을 숨긴 채. 그렇게 사는 게 편하니까.
"가면 뭐가 달라지냐고. 그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네 일이나 하라고"
끊임없이 되뇌어지는 말들. 세상이 그렇게 쉽게 변화냐고.
차재혁이 글을 쓰고, 최은영이 그림을 그린 <내 마음속에는>는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아직도 기억나는 고등학교의 일과 대학을 졸업한 후 나의 모습은 내가 이런 일을 겪었으니, 어차피 비슷해라는 생각으로 살았던 거 같다. 암흑기라고 할 까. 정형외과냐라는 질문을 농으로 받았던 나는 정치외교를 전공했다. 법대를 갈려다 성적이 요만큼 모자란다는 선생님 말씀에 지원. 합격은 했지만 배우는 시간들은 고등학교와 별다를 바 없는. 그리고 교수 중 한 분은 자신이 이야기했던 내용과는 다른 행보를 걸었다. '그럼 그렇지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아' 재확인.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자꾸 쓰러질려하고 쉽게 포기하려 했다. 넘어지면 일어서는 게 아니라 넘어진 채로 있고 싶었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있지만 내 마음속을 차지했던 텅 빈 우울은 어디에서 오는 건가 비로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니 제일 처음 떠오르는 위의 일화, 그리고 내가 생각한 대로 살지 못한다는 괴로움. 아이들에게 부끄러움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처음으로 생각해보았는데, 나는 현실 겁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싸우면 큰 소리가 나니 그냥 참고 가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도 그냥 듣고 말고, 항의나 민원은 생각해 본 적 없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입이 열리지 않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 그것은 겁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림책> 속의 사람처럼 같이 가자고 친구들에게 물었는데 아무도 갈 사람이 없다면, "눈도 많이 오고, 할 일도 있고, 춥기도 하고, 다음엔 꼭 같이 가지고 말을 한다면......" 나는 아마 가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길을 나선다고 해도 나는 중간에 돌아왔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내 모습으로 만들어지까지, 지금도 인간의 형상을 갖춰가는 중이지만 많은 도움이 있었다. 한 번도 거리에 나가 본 적이 없는 나를 함께 가지고 손 잡아 준 사람들이 있다. 혼자 서 있는 나에게 어깨를 보듬어 주고, 이름을 불러준 이들이 있다.
그래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창 밖을 말없이 쳐다보는 사람의 모습은 몇 페이지나 이어진다. 그러고 나서는 남자. 그는 어디로 가는 걸까. 그리고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세상은 늘 똑같고, 희망은 너무 멀다. 우리가 믿었던 이들은 배신하고, 나조차도 나를 버린다. 아직 나는 큰소리 내는 것을 싫어하고, 소리 게 깜짝 놀라고 누군가와 다투는 것이 두렵다. 세상이 비관적이라고 자칫 말을 할까 두렵다. 이런 세상 살아서는 뭐하냐고 속내를 드러낼까 겁난다.
하지만 다시 추스려본다.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있다고 말이다. 그가 꺼내 든 것이 초였고, 불을 붙인다.
'오길 잘했어. 그렇지?"
그래 내 마음속에는...... 의 말줄임표 사이에 많은 시간들이 있다. 글을 쓰다 보니, 뒤죽박죽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