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겨울 Oct 07. 2021

약간의, 약간의 혼란

스무 살과 서른 살

1

  모니터 불빛만 파랗게 빛나던 새벽이었다.

  동이 트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던 때가 있었다. 모두가 잠든 밤의 시간을 사랑하던 시절이었다. 글을 쓰기도 했 영화를 보기도 했다. 게임에 미쳐 있을 때도 있었다. 무얼 하든 새벽녘 홀로 된 시간은 소중다. 베란다 밖의 하늘색이 변하다가, 모니터의 불빛 이외의 빛이 한 줄기 파고 들어오면 그제야 PC의 종료 버튼을 누르곤 했다. 곧 부모님이 나올 시간이었고, 붉은 눈으로 주저리 이어지는 해명보다는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늦잠의 지속이 나의 새벽에 대한 훨씬 간단한 설명이었다. 밤과 새벽이 오후에야 만나게 되는, 그런 아침 없는 삶의 연속. 나는 그렇게 살고 싶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로, 누구의 강요도 없이 자유롭게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으며 그렇게 아갈 수 있으리라 막연히 기대하던 새벽이었다.


2

  그럼 새벽녘 어김없이 모니터 창 너머 말을 걸던 소녀가 있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무렵까지는 아니었는데... 채팅 앱이 보편화되기 이전이었을까? 그때는 모두들 PC를 켜면 습관처럼 메신저에 접속을 하곤 했었다. 거기에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의 이름을 붙었는지는 아직도 짐작이 되지 않는다. 램프를 어루만지듯 메신저 창을 열어 보고는 또 어느 누가 나처럼 이 시간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 그 이름을 쭉 나열해 보는 것이 새벽 일과의 시작이 되었다.


  그 친구는 줄곧 먼저 쪽지를 보내왔다. 나는 그가 독특하다고 느꼈다. 아니지. 정확하게 말하면 그보다는 그의 질문이 그랬다. 그는 여러 가지를 물어왔고 나는 최선을 다해 대답을 늘어놓았다. 궁금한 것이 많은 친구였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다행히도 대답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짧은 질문에도 나의 타이핑은 끝이 없었다.


 질문은 주로 근원적인 것에 닿아 있었다. 삶에 대해, 오해에 대해, 사람에 대해, 사랑에 대해, 믿음에 대해, 실천에 대해. 그때의 나는 놀랍게도 그 엄청난 것들에 대한 대답을 다 가지고 있었다. 내가 답변을 그는 또 질문을 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말이야, 거기서 믿는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말이야... 어디선가 주워들은 얕은 지식을 탈탈 털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다. 스펀지처럼 주위의 모든 것을 흡수하는데 가지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붙던 시절이었다. 나는 예민했기에 사고의 덫은 지독히도 매력적이었다. 밤마다 키보드를 두들기던 나는 진심으로 그의 이해를 돕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나를 위한 일이 되다.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그렇게 착각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부럽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부끄럽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결코 될 수 없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렵게, 오랜 게으름의 침묵을 깨고 한 씩 글자를 눌러쓰고 있다.


3

  사기업에 취직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욕심을 가지는 것은 저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돈에 대해 논하는 것 자체를 혐오했었다. 순수하고도 순진하던 시절이었다. 두가 나 같지 않다는 것을, 내가 선택한 길이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비교적 늦게 알았다.


  첫 직장이었다. 파리 목숨이었지만 나름대로 인정받고 사랑받던 시절이었다. 나를 꽤 좋아해 주던 상사가 있었다. 한낮의 식사 자리에서 그녀는 정말로 신기하다는 듯, 정말로 이해가 필요하다는 듯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어떻게 역사를 전공할 생각을 했어?


  역사학에 대한 투신은 학문을 하겠다는 확신에 불타던 시절의 결과물이었다. 그에 관한 한 나는 광신도에 가까웠다. 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훈장질을 하기로 했지만 그럼에도 신앙에 대한 사명감은 투철하던 내게, 그 질문은 하나의 파문이 되었다. 작은 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나는 영원히 파문당했다. 그러게요. 그때는 그게 옳다고 믿었었어요. 잘 몰랐었나 봐요. 입 밖으로 나온 대답은 신념과는 다른 것이었다. 신념을 완전히 뒤집은, 그것은 배교 행위였다. 비슷한 시기, 아버지로부터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술을 한 잔 걸치셨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네가 공부를 곧잘 하길래 법관이 될 줄 알았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검사니 변호사니 하는 사람들, 멋있다고 느낀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충분히 선망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길을 가겠다는 생각을, 살면서 단 1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나의 아름다운 청춘을, 재미없고 지루한 벽돌 같은 책을 들여다보며 썩히고 싶지 않았다. 맞아. 나는 지독한 게으름뱅이, 슈퍼 배짱이였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내가 놀란 부분은 그런 거였다. 늘 네가 하고픈 걸 하라고, 선택과 책임을 늘 내게 지우던 아버지에게도, 그런 소망이 있었구나. 전에도 그런 내색을 하셨더라면, 그래도 한 번은 고려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무언가가 달라졌을까.


4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 내가 삶을 선택한 방향이 일반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리고 지금, 어느 정도 내가 선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안정을 찾았다고 믿은 오늘, 나는 흔들린다. 어느 때보다도 더욱 크게 요동치고 있다. 어떤 질문에도 감히 대답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무엇이 옳은가? 삶에 대해, 오해에 대해, 사람에 대해, 사랑에 대해, 믿음에 대해, 실천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지금은 별생각 없겠지. 그런데 나이가 들면 말이야, 승진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니까. 서울에서 집 한 채 구하기 참 쉽지 않지? 나는 그 사람 말하는 방식이 참 좋았어. 어떻게든 세상을 바꿔줄 거 같거든. 욕심이 나쁜 거야? 평생 벽돌 같은 책을 이고 고생 고생해도 공이 몇 개인지 세기 어려운 숫자 앞에서는 딸랑 쟁이가 되고, 당당한 거짓이 크면 클수록 속아 넘어가는 사람 숫자가 배가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인데, 나는 무엇을 가졌다고 그토록 자신이 넘쳤던 것인지. 그저 약간의, 약간의 혼란 가운데 있을 뿐이다.


5

퇴고를 하기에는 지나치게 잠이 쏟아진다. 새벽을 깨우던 나는 열시에는 자야 다음 날 다섯시 반에는 일어날 수 있는

  

매거진의 이전글 <없는 것> 下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