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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신 Jul 04. 2024

섭산적을 아시나요

내 안의 마음들을 살펴보네요

 한식조리사 시험 과제로 섭산적과 두부젓국찌개가 나왔다.

앞에 놓인 재료만으로도 크게 손질할 것이 없어 마음이 놓였지만 고기를 얼마나 잘 다질 수 있는지가 문제였다. 그리고 곧 그 문제는  고기를 썰기 시작하면서 느낌이 왔다. 시험 전 칼을 갈고 오지 않은 나의 안일함에 한탄을 하며 칼질에 힘을 실기 시작했다.


 몇달 전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준비하고자 학원에 등록했다. 실기 시험처럼 매일 2가지의 메뉴를 일정한 시간 안에 조리해 보는데 먼저 선생님의 시범을 보고 익히는 것이 시험과는 달랐다. 선생님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친근해 마음이 따뜻해지고 정갈하게 요리하는 모습에는 군더더기가 안 보여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나름 요리를 하고 있다는 마음에 자신감도 있었지만 규격과 정량에 대한 압박감이 나를 허둥되게 했다. 대충에 맞춰진 나의 삶의 방식이 내가 내 느낌과 틀대로 하곤 했었는데 그것이 먹히지 않는 조리과정이 나에게는 맛을 내는 것보다 더 기본이 되는 듯했다. 그렇게 5cm와 6cm의 길이를 구분하고 0.8cm와 0.3cm의 폭을 가늠하며 눈으로 보고 해 보는 시간들이 생소했지만 해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정해진 50분의 시간 타이머가 남겨진 시간을 알린다. 30분

두부의 수분을 제거하고 으깬 후 대충 다져진 고기와 1:3 비율로 섞었다. 다진 파 마늘과 양념을 더한 후 손으로 치대기 시작했다. 서로 잘 섞이게 한 동안 내 손이 번질 해질 정도로 치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반죽을 도마에 올려놓고 정사각형 모양을 잡는다. 고기가 잘 익게 칼질도 하며 정성을 다 한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준비한다면 그 음식을 먹는 이는 잘 대접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 문득 잘 다지고 섞고 모양을 만드는 과정이 인관관계에서도 똑같은 원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특징을 알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 맞추고 어울리는 과정이 이 요리과정처럼 다져지고 치대고 섞어지는 모양처럼 이뤄진다면 어떻까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섭산적은 석쇠 위에서 고기를 익힌다. 고기가 덜 익어도 타지도 않아야 하기에 중불에서 주먹크기만큼 올라온 상태에서 석쇠를 돌리며 고기를 익힌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풍기는 육즙의 냄새를 맡으면서 인내심 있게 바라보며 고기를 익힌다. 천천히 고기를 익히는 과정에 간이 고기에 베고 고기에 윤기가 올라온다.


완성된 고기전을 도마에 올려놓았다. 뜨거운 손가락을 피아노 건반을 스타카토 하듯 칼로 썰기 시작했다. 고기가 부서지기 시작한다. 무딘 칼로 고기를 다졌을 때 느꼈던 한탄에 더한 절망감이 올라온다. '아, 어쩌나, ' 그때 멈춰야 했었다. 고기가 식을 때까지 기다기고 나서 썰었서야 했다. 조금씩 부서지는 고기를 작은 9조각으로 만들어 접시에 올려놓으며 주위를 살짝 둘러봤다. 아직 석쇠에 올려놓고 굽지도 않은 이들도 많았다. 내 조바심으로 속도를 내었지만 완성도가 떨어지는 나의 작품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식고 나서 써는 것을 생각 지고 못했다. 다만 무딘 칼로 잘 다져지지 않은 고기 탓만 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섭산적 실패의 원인을 살펴보았다. 준비과정의 안일함과 요리의 조급함이 결과물에 영향을 주었음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재료의 문제가 아니라 요리하는 이에서 찾을 수 있었다. 섭산적이 정확한 모습이 안 나온 이유에는 대충이라는 나의 태도와 연결이 되었다. 어렸을 때 느꼈던 그 대충의 모습이 내 안에 존재함을 보게 되었다. 그 존재를 인식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안타까워하는 나의 모습의 포장지를 걷어낸 듯했다. 내 안의 대충의 모습이 완벽의 모습과 부닥치거나 조급함의 모습과 어우러질 때 어떤 모습이 나오는지 생각해 보았다. 지난 시간 여러 결과로 나왔던 모습에도 그 잔재가 보였다.


'대충아, 너는 어디서 왔니?'

'빨리 해내려고. 왜? 할 일이 너무 많아, 다 내 손을 거쳐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빨리하고 싶어.'

'완벽아, 너는 어떤 애니?'

'나는 잘 해내고 싶어. 내 모습이 엉터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똑순이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조급아, 너는 어때?'

'빨리 결정을 안 하면 그 기회를 놓칠까 봐 두려워. 내가 원하는 것을 놓칠까 봐'


내 안에 조각조각 보이는 그 감정들과 마음과 이야기를 하니 더 이해가 되었다.

대충이와 완벽이와 조급이가 잘 다져지고 치대져 서로 잘 어울려지기를 바란다.

내 무딘 칼을 갈고 다시 시도할 때는 이 마음이 독창이 아닌 잘 어우러진 합창이 되게 하고 싶다. 

아니 랩과 파트가 정해진 BTS 노래처럼. 서로의 힘이 시너지가 되기를 바라며 나 자신을 다독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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