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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신 Jul 06. 2024

자유의지

나에게 선택할 자유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가 카페 안을 누비며 아장아장 걷는다. 

비틀거리면서도 질주하는 자동차처럼 이리저리 뛰는 아이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그것을 지켜보던 나의 시선도 아이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자신의 움직임을 신기하듯 웃는 얼굴이 너무나 사랑스럽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세상이 새롭다. 작은 아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탐험의 대상이자 놀이터이다. 

그 넘치는 에너지로 매일 새롭게 경험하고 배운다. 그러면서 수많은 데이터가 아이에게 쌓이게 된다.


 "어르신들 모두를 숟가락으로 먹여드려야 해서 너무 정신이 없네요"

마지막으로 카트를 끌고 들어오는 요양 보호사의 말에는 7명의 어르신들을 일일이 다 식사케어를 하는 것이 버겁다는 표현이 묻어있었다. 아침 교대 전에 해야 할 일들에 많은데 식사케어가 혼자서 하기에는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럼, 제가 도와 드릴까요?"라는 말에 반신반의하던 모습이 식사시간에 3층으로 올라온 내 모습에 얼굴이 활짝 반색한다. 

반쯤 접힌 침대에 앉아 식사를 스스로 드시는 어르신들도 있었지만 감고 있는 눈처럼 입으로 숟가락을 넣어 들여야만 닫고 있는 입을 벌리시는 분들도 있었다. 잇몸으로 오물오물거리시는 모습에 식사가 어떠신지 알 수 없지만 그냥 조용히 식사하시는 모습은 무덤덤하게 느껴졌다.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하는 모습에는 자신의 의지보다는 정해진 시간에서 움직이게 하는 보호사의 손길에 자신을 그냥 맡겨 버린 듯했다. 그렇게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을 먹여 드리고 입을 닦아 드렸다. 

"잘 드시네요. 반찬도 드셔보세요"라고 아이 대하는 나의 말이 싫지는 않으신지 한입 한입 입을 벌리시고 받아 드신다. "배 불러"라는 말에 식판을 정리하고 나왔다. 그러다 낯익은 얼굴을 보게 되었다. 혼자 식사도 잘하시고 잘 움직이시는 젊은 분을 보고 요양원에 오기에는 젊으신데라는 생각을 했었던 분이었다. 그런데 몇 달 만에 보게 된 모습은 그전보다 많이 변해 있었다. 빛바랜 사진처럼 젊은 나이에도 노인의 모습이 보이며 많이 늙어 있었다. 


 시간 속에서 육체는 늘 변한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는 과정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때론 나이에 비해 무척 젊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것을 단순히 유전자의 선척적 문제나 환경적으로 좋은 것을 선택한 것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할 때가 있다. 잘 먹고 선천적으로 건강해도 느껴지는 에너지가 부족해 보이는 이들이 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떠오른다.

 '자신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무엇이 있는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때는 즐겁다. 재미가 있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그 선택을 하며 사는 삶에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잘하고자 하는 책임감도 따른다. 

자신이 주인이 된다. 

음식을 하는 것도 스스로 먹을 만큼의 쌀을 씻고 밥솥에 전원 버튼을 누른다. 

먹을 만큼 밥을 푸고 먹고 싶은 반찬을 꺼내 먹고 설거지를 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요양원에서는 그것은 누군가에게 맡겨지는 일이다. 

자신은 숟가락만 들게 된다. 모든 과정에서 생략된 동작은 자신의 삶을 좁은 공간으로 한정 짓는다. 

선택의 자유가 제한된다. 자신의 욕구도 한정적이다. 

결국 돌봐지고 보호는 받지만 그만큼 생존 능력이 줄어든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아이는 무한한 에너지와 성장의 잠재력이 있다. 

이제 막 올라오는 이빨로 영양가 있는 이유식을 먹는다. 

그 움직임에는 쉼이 없다. 늘 눈과 귀를 열어 두며 열심히 몸을 움직인다.

 매일매일이 새롭게 자라는 일상이 되고 눈에 보이게 커가는 것이 보인다. 


 생명력은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하면서 커진다. 자신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그에 맞는 책임 있는 행동을 하면서 인간은 성장한다. 스스로 선택하는 삶에는 자신의 의지가 더해진다. 때론 자신의 욕구에 대한 욕심이 더해져 실수나 실패의 순간에 주저하거나 좌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가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늘 반전의 드라마는 스스로 쓰게 되는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일상이 무료하거나 재미가 없다고 느꼈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찾았지만 인생은 늘 새로운 것만을 쫓아갈 수는 없다. 

다만 같은 길을 가더라도 놓치게 된 것을 발견하는 새로운 것은 수없이 많다. 

그것을 찾을 수 있는 자유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원하는 미래의 모습을 위해 지금 당장 별거 아닌 시도를 해본다면 어떨까

해보기 전에는 알 수없기에 끝까지 해보는 연습을 한다면 인생의 끝자락을 잡고 가는 것이 아닌 스스로 개척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똑같이 오물 거는 입이지만 그것으로 어떤 에너지를 만들어 살지는 모른다. 

시간이 흘러 늙는 것이 당연한 삶이 아닌 호기심과 부여된 자유의지로 책임 있는 선택을 한다면 

인생은 또 새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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