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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신 Jul 09. 2024

최소와 최대의 간극

풀죽과 핫도그 먹기

 TV나 유튜브를 보다 보면 가끔 후원단체에서 광고하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깡마르고 위축된 아이의 모습과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이들의 모습은 비참해 보인다. 삶의 모습을 하나로 규정짓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지금 당장 먹을 것이 없다는 그들의 현실이다. 

한 여자 아이가 운다. 자신의 바구니 안의 쪼개진 작은 돌을 사달고 주변 어른들에게 달려가 본다. 그들의 냉담한 반응에 아이는 뜨거운 태양도 돌을 쪼개느라 거칠어진 손도 아닌 자신과 가족의 배고픔의 무서움에 운다. 집에 돌아와 뭐라도 먹어야 하기에 길가에 올라온 풀을 뽑아 죽을 쑨다. 그 초록덩어리를 입에 넣어 보지만 얼굴은 무표정이다. 입으로 씹는 느낌으로 배고픔을 달래려고 하는 듯하다.


 요즘 살이 조금씩 찐다는 느낌이 든다. 잘 먹기도 하지만 이전보다 배출보다는 누적이 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 몸을 많이 움직이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양을 빨리 먹으려고도 한다. 그리고 먹고 즉시 눕는 습관도 나의 위장을 늘리는 주된 범인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꾸준히 걷기와 요가를 하며 나 자신을 돌보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먹는 것이다. 천천히 조금씩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과 미용의 관점에서 음식을 대하는 나의 자세이자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여기저기 보이는 수많은 디저트와 빵, 다양한 식재료로 만들어진 음식들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좋은 것을 포만감 있게 먹는 법에 대한 수많은 레시피도 정보의 마당에서 수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 많음이 어찌 보면 풀죽밖에 선택할 수 없는 아이보다 우리에게는 더 힘들고 만족감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고픔을 해결하고 푼 아이와 배부름으로 고민하는 이들을 모습을.


갑자기 궁금해졌다. 최소의 음식으로 살아가는 이들과 대조되는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은 어떨까 가. 일전에 본 음식 빨리 먹기 대회가 떠올랐다. 핫도그 빨리 먹기 대회 우승자의 기록을 살펴보니 10분에 75개의 핫도그를 먹어치웠다. 100g에 290칼로리인 한 개의 핫도그를 먹어 치우는 평균 속도는 1분당 832g를 먹는 것과 대등했다. 이는 회색곰과 비숫하며 회색 늑대보다는 느린 수치라고 한다. 그렇게 먹기 위해 그는 평소에 5~6일에 한 번씩 폭식을 연습하고 이후 채식으로 속을 달랜다고 한다. 의학적으로 이렇게 폭식과 절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건강에도 좋지 않은 것을 하는 것은 도전이자 인간의 호기심의 시도일 것이다. 또한 그만큼 먹는 것이 풍부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식량의 분배가 평균적으로 고루 분포되지 않은 세상에서 배고픔과 배부름 으름 사이에서 절망과 권태 사이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게 된다.


자신의 접시에서 과한 자신의 욕망을 한 스푼만 덜어낸다면 그리고 그것을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 준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복부에 쌓인 지방의 한 덩어리를 그들에게 나눠줄 방법을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 

내 결핍된 욕구의 모습이 먹는 것으로 해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건강함의 레시피로 나에게 그 음식이 전해진다면 어떻까. 아마도 자 자신에게도 있을 수 있는 풀죽을 먹으며 눈물 흘리는 아이의 결핍은 복부 지방이 아닌 건강함으로 드러날 것이다.


최소와 최대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절리고 두드려 주고 밀어줘야 한다. 더덕의 울퉁불퉁한 모습이 매끈한 더덕구이가 되기 위해서는 더덕을 소금에 절이고 수분을 제거한 후 밀대로 두들기고 밀어준다. 그리고 규격에 맞게 크기를 만든다. 그처럼 나 자신도 때론 시련으로 절여지고 도전하기로 단련시켜야 한다. 내 안의 지방이 덜어지고 그들의 굶주림에 영양이 더해지는 그런 균형이 맞춰지는 삶이 되길 바란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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