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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아저씨 Jan 23. 2020

2-2 고양이 땅콩사건 꽃님이

반.창.고 - 반갑다창문밖고양이


어렸을 적부터 

고양이 꽃님이는 

용감이와 거의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용감이도 꽃님이가

안 보이면 

보일 때까지

계속 울었다.


꽃님이와 용감이는

조금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황급히 뛰어오면서 

외쳤다.


"꽃님이 남자야! 꽃님이가 남자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꽃님이와 같이 생활한 게

몇 년인데....


더구나 

고환이 없는 걸

같이 확인하고

이름도 꽃님이라고 붙여주곤

갑자기 남자라니.


"남자라면 땅콩이 있어야 해.

 꽃님이는 그게 없잖아."


나는 아내를 바라봤다.


"그랬었지. 그런데 지금은 그게 있다니까,

 땅콩이 있다고."


"엥?!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농담하는 거지?"


"나도 믿기지 않아서 몇 번이나 확인했다니까.

 못 믿겠으면 가서 직접 확인해봐."


아내를 뒤로 하고

느긋하게 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열었다.


용감이 곁에 누워있는 

꽃님이를 품에 들어 올리는 순간,

꽃님이 뒷 다리 사이에 달려있는 

도톰한 음낭 주머니가 보였다.



아내의 말대로 땅콩이 열려 있었다.


원인은 '잠복 고환'이었다.


어렸을 땐

고환이 신장 위쪽으로 

감춰져 있다가,

몸집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열린 공간으로

중력의 힘에 의해

밑으로 내려와

땅콩이 열리는 게

되는 것.




녀석의 모습이 

그제서야 달라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과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었다.


녀석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눈에 익은 모습으로만

판단해 버리는 

어리석음의 댓가.


갑자기 다가온 사실을

마주하며 겪는

혼란이 시작되었다.


당장 이름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수컷 고양이인데 

꽃님이?


몇 년 동안

꽃님이로 불러왔는데...


아내가 말했다.


"꽃님이에게 물어보자."


나는 눈을 몇번 깜박이다가

아내의 말을 따랐다.


"꽃님아 다른 이름을 갖고 싶어?"


"......"


"그럼 꽃님이라는 이름이 좋아?"


"냐아옹."


꽃님이의 선명한 울음소리. 


"꽃님아?"


"냐아옹."


"꽃님아!"


"냐아옹."



녀석의 대답을 따라

꽃님이는 그대로 꽃님이가 되었다.


...


다행히도

땅콩 사건은

그 녀석을 바라보는 내 마음까지 

뒤 흔들어 놓지는 못했다.


단순히

내가

잘못 보고 있었던 것일 뿐,


그 녀석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그 모습이었을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내가 마음에 품은 건

그냥 우리 꽃님이니까 말이다. 



...



꽃님이는 

노년에 꽃님이 할아버지라는 애칭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쁨을 받으며 가족으로 13년을 살다가,

편안히 마지막 숨을 내쉬며

무지개다리를 건너 용감이를 만나러 갔다.




다음 이야기는 덩치큰 개 폴리 이야기에요.

https://brunch.co.kr/@banchang-go/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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