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창.고 - 반갑다창문밖고양이
매섭게 가을비가 오는 날이었다.
오후 느즈막 전화가 울렸다.
"매형! 여기 골목에 고양이 한 마리가 계속 비를 맞고 있어요."
"어려 보여?"
"네."
"그럼. 만지지 말고 그냥 둬. 어미가 있을 테니까."
"그게...... 이틀째예요. 어제도 이 자리에서 혼자 있었어요."
"그냥 골목에서?"
"네. 이대로 뒀다간 잘못될 것 같아요. 어떡하죠?"
"그래? 그럼 일단 데려와!"
그렇게
우리 부부에게 온 고양이는
흠뻑 젖은 채
몸을 계속 떨었고,
눈에 띌 정도로
배가 홀쭉했다.
일단 털을 말리고
먹을 것을 주었다.
고양이는
하얀 털에 중간중간 검은 꽃잎이
놓인 것처럼
예쁘고 단아한 모습이었다.
엉덩이 쪽을 들어
땅콩이 없는 걸 확인한 후
꽃님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꽃님이는
첫째 고양이 용감이 뒤를 이어
두 번째 고양이가 되었다.
꽃님이는 식탐이 많았다.
길 생활에선
먹을 것이 있을 때
많이 먹어두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빨리
터득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지나가던 말로 물었다
.
"용감이가
요즘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아.
어디 아픈 걸까?"
나는 무심결에 대답했다.
"아니야. 꽃님이가 밥을 다 먹어서
용감이가 잘 못 먹는 것 같아."
그리고 얼마가 흘렀을까,
아버지가
꽃님이를 쓰다듬다가
걱정스러운 듯 이야기하셨다.
"얘가 점점 말라서 걱정이다."
우리 부부는 손사래를 쳤다.
"무슨 소리예요.
꽃님이가 밥을 얼마나 많이 먹는데."
그리고, 꽃님이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 보이며
"이것 보세요. 꽃님이가 얼마나......."
이상했다.
꽃님이는 처음 올 때처럼 말라 있었다.
혹시
어디가 아픈 가 싶어
병원에도 데려가 보았지만,
체중이 적을 뿐 다른 이상은 없다고 했다.
문득 그날의 대화가 떠올랐다.
"꽃님이가 밥을 다 먹어서,
용감이가 밥을 잘 못 먹어."
......
따지고 보면
꽃님이 입양을 결정할 때,
용감이 입양할 때처럼 마음으로 품어야지 하는
간절함이나 결심이 없었다.
용감이 혼자 심심하니까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으로...
아버지에게는 곁을 잘 주지 않는
용감이와 다르게
꽃님이는
적적해하시는 아버지에게 애교를 잘 부리니까...
그래도
처남이 구조한 아이인데
못 본 척할 수 없으니까...
.... 정작, 꽃님이를 위한 마음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눈치가 많아진 모양이었다.
사실
꽃님이가
장난치거나
실수하더라도
소리치거나 혼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님이는
본능적으로
이곳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몇 달 후
셋째 토비가 들어오자
꽃님이는 더욱더 예민해졌다.
혹시라도
자신의 거취가 어떻게 될까 봐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마른 몸 때문에
나이가 한참 어린,
셋째 토비에게도
쫓겨 다녔다.
꽃님이는
그런데도 밥을 더 안 먹었다.
그것이
계속 이 집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이라 여기는 듯했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눈치보는 삶.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날, 아내와 나는
꽃님이 앞에 앉아서 미안하다 했다.
고양이 눈인사를 하면서
그동안 미안하다고 했다.
앞으로 함께 행복하게 지내자고,
밥도 많이 먹으라고,
너 어디 안 보내니까,
눈치 보지 말고 살라고 했다.
너는 우리 식구니까
죽을 때까지 함께 할 거라고 했다.
불안한 눈으로
우릴 바라보던 꽃님이는
바로 앉더니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그 날 이후,
꽃님이는
토비보다 밥을 많이 먹었다.
집에 가면
가장 먼저 마중하고,
이리저리 잘 뛰어다녔다.
셋째 토비도
꽃님이에게 도전하지 않았다.
비로소
꽃님이는 우리 집 둘째가 되었다.
꽃님이 할아버지 다음 편 이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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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용감이 이야기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