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고 지치다가 좋다가 또 지치다가 또 좋다가. 나 왜 이러지?
작고 소중한 우리 찌니가 세상의 빛을 본 지 한 달 하고도 열흘가량이 지났다. 한 달이 넘어가면서 부족했던 살이 차오르고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내가 원하는 미쉐린 타이어 마스코트의 팔과 다리로 살이 부쩍 오르고 있다. 황달 증세로 인해서 태어나고 열흘이 채 안되었을 때 아기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마친 후, 기저귀만 입힌 상태에서 검사 결과와 의사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아기를 보면서 느꼈던 그 가슴 아픔을 더는 느끼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
몸무게도 최근에는 재어보지 않았지만 분명 부쩍 늘었으리라. 맘마를 먹인 후, 트림을 시키기 위해 안아 올릴 때 느껴지는 몸무게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기에 확신할 수 있다. 늘 오른쪽 어깨로 올리고 트림을 시키기에 왼쪽 허리 쪽에 느껴지는 통증과 팔목의 통증은 훈장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우리 찌니가 성장해 감에 따라 우리의 삶도 점점 변해가고 있다. 정말이지 아이와 함께 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몇 주간의 완전 초짜 엄빠의 시기를 지나 이제는 그래도 제법 초짜를 벗어난 초보 엄빠의 시기이지 않을까? 여전히 모르는 게 많아 아이에게 미안한 게 많은 엄빠지만 점점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아 신기하기도 하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제법 루틴이 생겨 종잡을 수 없이 깨어나던 것도 2회 정도로 일정해져서 2시간 이상 잠을 이어 자지 못하던 시기를 지나 타이밍이 정말 잘 맞는다면 4시간도 잘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2시간, 3시간이라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아이가 배고파하면 수유를 하면 되기에 가능해진 정말 큰 변화다. 이것만으로도 인생의 질이 확 높아진 느낌이다.
하지만 명과 암은 함께 존재하는 법. 아이가 커가면서 편해지는 게 있지만 성장과 함께 찾아오는 가장 큰 불청객. 바로 "성장통"이 있었다. 그렇다. 그 성장통이라는 녀석은 종잡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강력하다는 특징을 가진다. 한번 울기 시작하면 1시간은 거뜬하다. 우리 아이의 목청이 이렇게나 큰지 새삼 실감하는 한 주였다. 그렇게 세상이 떠나가라 울다가 갑자기 뚝 그치는 아이를 볼 때마다 현타가 오기도 하고, 안도감이 들기도 하면서, 또 언제 이렇게 울려나 싶은 불안함이 공존하는 시기였다. 지금도 성장통의 시기가 끝이 난 건지, 제대로 시작한 건지 확신할 순 없지만 말이다. (공존하는 시기"였다"라는 과거형으로 끝나기를 바라본다.)
그러면서 나는 (와이프의 마음은 잘 모르겠다) 가끔 꽤나 격렬한 내면의 감정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감정을 밖으로 쉽게 표출하는 타입이 아니지만 분유를 먹이다가 멍하니 초점없는 눈으로 있는 나를 본 와이프가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이니 심각하진 않아도 꽤나 지쳐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정말이지 세상 피곤하고 지쳐있던 시기라 다른 것들을 생각하고 살필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니, 분유를 먹이는 동안 아빠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아이의 눈을 제대로 마주쳐주지 못했던 그 시기들이 너무나 미안해진다. 말도 많이 걸어주고 눈도 많이 맞춰주고, 많이 웃어주고 안아줘야지 다짐을 하면서도, 퇴근을 하고 와서 등을 제대로 뉘어보지도 못하고 4시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지친 몸으로 거울을 바라보면 (덩치가 있는 편이라) 홀쭉해진 않았지만 지친 눈으로, 흐리멍덩한 눈으로 서있는 나를 보게 된다.
이렇게 나의 육아 5주 차는 명과 암.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피곤함이 공존하는 시간이었다. 세상이 떠나가라 우는 아이를 앞에 둔 나의 표정. 그리고 세상 편한 모습으로 잠든 아이를 지켜보는 나의 표정. 그 두 표정의 차이만큼이나 격렬했던 감정의 기복이 있었던 한 주였다. 그래도 그 한주라는 시간 동안 나는 조금 더 아빠로서 성장하지 않았을까? 언제나 부족한 아빠이지만, 아이의 기억 속에서는 슈퍼맨과 같은 아빠의 모습으로, 친구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퇴근을 서둘러본다.
기다려 아가야, 아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