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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흐름 Mar 18. 2024

배 고프니까 밥 달라고 하지

[성경] 창세기 27장





창세기 27장을 읽는다.


이삭이 나이 들어 눈이 먼다. 

어느 날 이삭이 첫째 아들 에서를 불러 말하기를,

"내가 이제 언제 죽을지 모르니, 네가 나가서 내가 맛있게 먹을거리를 사냥해 오면, 내가 죽기 전에 줄 축복을 주겠다." 

그 말을 이삭의 부인인 레베카가 듣고서 에서의 동생인 둘째 야곱에게 가서 전한다. 그리고는, 

"야곱아, 너는 집에서 키우는 염소 두 마리를 잡아라. 그럼 내가 아빠가 좋아하는 대로 요리해서 네게 줄 터이니 너는 그걸 아빠한테 들고 가서 (형 대신에) 축복을 받거라."

엄마의 말에 야곱이 혹시 아빠에게 들켜서 오히려 저주를 받으면 어떡하냐 두려워하니, 레베카가 저주는 자신이 대신 받겠다고 하고 아들을 변장시켜 남편에게 보낸다. 

에서인 척하는 야곱의 등장에 이삭이 처음에는 잠시 의심을 하는가 싶더니, 결국에는 감촉같이 속아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 축복을 내린다.

"신이 너에게 천국과 땅의 풍요로움을 주겠고, 나라와 백성들이 너를 섬길 것이며, 너는 니 형제들의 왕이 될 것이다.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축복을 받게 되리라."

이렇게 야곱이 아빠의 축복을 받고 물러나자 그제야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와 동생이 자신의 축복울 가로챈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빠에게 당신이 줄 축복이 하나밖에 없느냐 자신에게도 남은 축복을 주라 울부짖어 타낸 것이,

"너는 복 없고 마른땅에 살 것이다. 너는 칼을 믿고 살 것이고, 네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만, 끊임없이 몸부림치다 보면 네 동생의 굴레를 벗어나리라."

이후, 에서가 야곱을 죽이기로 작당한다. 그리고 마침 또 엄마인 레베카가 그 계획을 알고서는 아들 둘을 다 잃을까 싶어 야곱을 야곱의 외삼촌네로 피신시킨다. 아멘.





오늘 성경 내용을 읽으며 이삭이 '눈이 멀었다'는 첫 구절에 초점을 맞춘다. 

이번 장보다 앞선 내용을 읽어보면 이삭은 장자인 에서를 편애했다고 한다. 자신이 사냥맛을 본 사내라서 사냥에 능한 장수인 에서를 좋아한 것이란다. 반면 그런 장수 못 되는 야곱은 관심 밖인 것.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에서에게 줄 축복만을 몰빵으로 남겨두고 있었다. 야곱에게 줄 축복은 한 방울도 없이 말이다.

이삭은 신체의 눈이 멀기도 했고, 자기 자신의 취향이자 자신의 가치에 눈이 먼 것이다. 

성경의 신이 경고하는 우상 중 하나는 바로 '자기애'이다. 처음부터는 아니었지만 이삭은 세월이 지나며 '점점' 그리 쇠하게 되었다.      


앞선 내용과 이번 내용에서는 '음식을 달라'라고 하는 내용들이 들어가 있다.

창세기 25장에서, 첫째 에서가 배가 고파서 동생 야곱에게 죽을 달라고 한 적이 있고, 죽 한 그릇에 자신의 장자권을 동생에게 팔아넘긴다. 이 때는 정말 그냥 배가 허기져 고픈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내용에 아빠 이삭이 에서에게 사냥한 음식을 구해오라는 부분이 있다. 그는 가축을 많이 가진 사람이었기에 원하면 얼마든지 집안에서 진수성찬을 차려내 올 수 있었다. 다만, 와일드 게임, 즉 사냥이 그리워서 사냥한 음식을 달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배부른 배고픔이다. 

그리고 숨은 배고픔이 있다. 야곱의 배고픔. 아비의 인정과 사랑에 목마른 한 자식의 굶주림이다. 얼마나 그에 갈급했으면 형의 장자권을 달라고 하고, 형이 받을 축복을 받겠다고 저주를 감수하겠는가. 그게 자기 보기에는 아빠가 형에게 주는 사랑과 인정의 형태인 것. 아빠가 자기에게는 직접적으로 주지 않고 자기가 아무리 해도 그의 기준에는 형만 못한 아우일 테니. 한 자식은 한 사람의 기준의 희생양 아니었겠는가.  


에서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자신을 편애해 준 아빠 이삭은 융통성이라고는 없어 보인다. 축복을 한 명에게 몰아줄 예정이었던 지라 자기가 생각해 둔 축복이 고갈되자 아이디어라고 낸 것이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네 동생 모시고는 안 살아도 될 거야.' 으이그. 행복과 무병장수라도 한마디 더 보태주던가. 

융통성이 없다는 것이 시킨 하기에는 좋은 자질이지만 창의적으로 더 무언가를 발굴하고 취하며 전개해 가기에는 반대되는 자질이기도 하다. 한계 지어져서 고여버릴 수 있기에. 

어쨌든 이제부터 성경의 역사는 융통성과 창의성을 겸비야곱이 신이 그 집안에 내린 축복을 바통터치받아 펼쳐가게 된다. 신의 민족을 더 넓게 퍼뜨리고 가는 데에는 이삭이 가진 자질을 보완하는 야곱의 자질이 보태지게 된 것이다.  


어디 보자. 

앞으로 어떻게 야곱이 살아가게 될는지. 그의 자질이 무슨 일을 벌이고 어떻게 빛을 발하게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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