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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an Sep 02. 2022

유학생의 담담한 고백문

나의 생각들



오늘 출국 전 어머니께서 사 주신 반스 신발을 처음으로 신었다.

그때 어머니께서 묶어 주신 신발끈을 풀고, 내 손으로 내가 다시 고쳐 매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유학길에 오를 때, 너무나도 두려웠다.

군대도 다녀왔고, 이미 부모님과 떨어져서 지내본 경험이 있는 나였지만 처음으로 먼 타지로, 이번엔 정말 나 혼자서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을 많이도 괴롭혔다.

유학길에 오르는 것이 옳은 선택일지, 한국에서 계속 남아 대학을 다녀야 할지.

아마 친구들 귀에 딱지가 앉았을 것이다.

그들에겐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한 친구는 내게 말했다.

미국 땅을 밟는 그 순간부터 뭔가 배우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출입국심사부터 짐을 찾고 터미널에서 친구를 만나기 까지, 어떤 것이라도 실수를 하면 그건 온전히 내 책임이었다.


처음 두 달은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 않기로 약속했다.

내가 모아둔 돈으로만 하겠다고 약속을 드렸다.

내가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였다.

돈을 들고 이케아, 샘스 클럽, 타겟, 그리고 내가 다닐 짐을 등록하러 나섰다.

그렇게 첫날, 집세까지 내고 나니 내 수중에 떨어진 돈은 500불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느끼지 못했던 소비할 때의 책임감을 이곳 미국에서 나는 느꼈다.

철없던 과거의 나 자신의 소비 습관을 많이도 반성했다.

여태 감사한 줄 모르고 부모님이 주신 용돈, 내 월급 등 참으로도 방탕하게 썼었다.


오기 전에도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참 많이도 드렸다.

부모님의 아들로 낳아줘서 감사,

내 꿈을 지원해주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이다.

부모님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지금도 참 막막하다.

이 일로도 친구들에게 고민 상담을 많이 했다.


카투사로 복무하던 시절, 정말 친하게 지낸 형 같은 미군 대위가 있다.

그분은 이미 자녀가 있는 부모다.

지금 내가 서있는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늘 친구의 입장에서 나에게 말을 해주었지만, 이번만큼은 부모의 입장에서 나에게 말을 해주겠다고 했다.


본인은 본인이 18살로 돌아간다면, 웨스트포인트를 진학하지 않고 자신이 가고 싶었던 대학들을 갔을 거라고 한다.

웨스트포인트에 가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부모님께 민폐를 최대한 덜 끼친 건 좋은 일이었지만, 진정 이게 나를 위한 선택이었을까 하는 의문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드는 의문이라고 한다.

내가 행복한 것을 하는 것, 우리 아들이 행복한 것을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망설임을 멈추고 지금의 위치에서 어떻게 최선을 다 할 수 있을지, 그것에 대해 집중하고 목표하는 학교로 가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동안의 고민들이 한 번에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동년배들의 의견은 많이 들었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듣는 것은 정말 달랐다.


중국 삼국시대 말, 서진의 초의 관료 이밀은, 진무제의 부름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했다.

그러면서 글을 한 편 써서 올리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진정표’이다.

옛 중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아니한 자는 충신이 아니요, 진정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자는 효자가 아니다.”


그 글에서 이밀의 인생사가 마음을 참 아프게 하는데,

할머니께서 그를 거두어 길렀으며, 몸이 병약하여 아홉 살까지 걸을 수 없었고, 재산, 형제 또한 없어 몹시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그가 나이가 들어서는 어릴 적 그를 거두어 준 할머니를 간병하며 사는 것이 그의 인생이었다.


진정표를 읽고, 지금의 나를 보면 참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저런 어려운 환경이 아닌, 순탄하게 자라와서 고작 유학길에 나서는 것을 겁내고 있는 내 모습이, 참 부끄러웠다.


단지, 정말 단지 나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인데,

지레 겁먹고 포기할 생각부터 한 나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이런 과거의 나 자신의 모습을 오늘 글로 남기는 이유는, 내 의지가 혹여나 흔들릴 때, 그것을 굳건히 하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 이런 담담한 고백문을 써서,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올려본다.


그리고,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나를 응원해준 모든 이들에게 정말 고맙다.

그대들을 위해서 매일 아침 일어나 운동을 가고, 공부를 한다.

그리고 부모님께,

정말 감사하다.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나를 위해 희생한 당신들의 청춘을, 그 보답을 내가 꼭 하겠다.


pic by Seungmin Jo, Pasadena, 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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