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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an Sep 14. 2020

말콤 글래드웰의 시선에서 -2-

David and Goliath을 읽고

오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말콤 글래드웰의 저작에 대해서 짧은 글을 몇 자 적어볼까 한다. 어떤 이들은 말콤의 책을 읽으면서, 되게 뻔한 이야기들을 장황한 사례와 함께 나열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 이야기들이 아무리 진부하더라도,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기란 정말 어려운 교훈들이 담겨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 얘기할 이 작품은 사실 출판된지는 시간이 좀 지난 작품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제서 얘기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얼마 전, 친구들과 함께 서점을 방문했는데, 표지 디자인을 리커버 해서 다시금 출판한 것이 나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원서로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번역서를 읽을 때의 감정을 느끼면서 정말 재미있게 다시 읽었던 것 같다. (1에서 썼던 글을 그대로 베껴왔다!)


2에서 다루는 책은 바로, 다윗과 골리앗이다. 아주 익숙한 이야기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성경을 한 번도 안 펼쳐본 사람이라도 이 얘기는 모두 알 것이다. 이스라엘의 작은 소년 다윗이 돌팔매를 던져서 블레셋의 거인인 골리앗을 한 방에 쓰러트리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렇게 오래된 이야기가 아닌 우리 주변의, 우리랑 시대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없을까? 말콤은 우리랑 시대적으로 굉장히 가까운 사례들과 우리에게 친숙한 사례를 들고 와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책의 시작은 바로 '강점이 약점이 되는 순간'에 대해서 말하면서 시작된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보면, 골리앗은 키가 2미터가 넘는 어마어마한 거인이다. 한데, 다윗과 골리앗이 대치할 때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보면 골리앗의 눈과 귀가 정상인보다 조금 성능이 떨어진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다윗이 엘라 산 골짜기를 내려오면서 돌팔매를 휘두르는 것을 골리앗은 뚜렷이 보지 못했고, 다윗이 돌팔매를 던지는 그 순간에도 반응을 느리게 할 수밖에 없었다. 골리앗의 큰 덩치가 제 발목을 잡게 된 것이다. 

친숙한 예시 중 하나로 '큰 연못에는 큰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가 있다. 내 친구 중에 일반고를 졸업하고 인 서울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나보다 똑똑한 애들이 널렸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 친구는 우리 학교에서는 큰 물고기였다. 하지만, 그 큰 물고기가 큰 연못으로 가자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아진 것이다. 만약 친구가 지방대를 진학했다면, 친구는 여전히 큰 물고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로 진학했고 이후에 친구의 자신감이 그런 것에 영향을 받을지는 미지수이다. 


다음은 처음을 뒤집어 '약점이 강점이 되는 순간'들에 대해서 다룬다. 이 목차는 난독증 환자들의 인터뷰로 진행되는데, 이 난독증 환자들은 난독증이 있었기에 청각을 통한 기억이나 순간을 기억하는 능력이 몹시 향상돼서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인 변호사나 CEO가 된 이들이다. 이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자신들의 자녀가 같은 난독증을 겪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본인의 이런 발전에서 난독증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또 다른 이야기는 바로 어릴 적 부모를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어릴 적 부모를 잃음으로써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고, 그런 성격이 그들이 직업인 의사 등으로써의 성공을 불러왔다고 말해주고 있다.

사실 이 목차에서 보면 난독증이나 어린 시절 부모를 잃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하지만, 이런 고통 속에서 좌절하거나 낙담해서 쳐져있지 말고, 이것이 어떻게 본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이 이야기들 속에 숨겨진 메시지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강자는 결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면서 말콤은 책을 끝마친다. 조선시대를 생각해볼까. 많은 농민 봉기들이 일어났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조정에서 군대를 동원해서 민중의 불만을 잠재우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세계적으로 정말 많다. 북아일랜드에서 일어났던 민족주의적 분쟁이 대표적인 예시라고 볼 수 있다. 강자는 약자를 권력과 무력으로 짓누르면 그들이 순종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는다. 권력과 무력을 동원한 압제는 혁명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살라자르 역시 포르투갈에서 독재를 하다가 민중에 의해 축출되었다. 중동에서 일어난 '아랍의 봄'은 또 어떠한가? 강자는 약자의 심리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들이 실패하는 주요한 원인이다.

이 목차에서 다른 이야기도 나온다. 책에서 레이놀즈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중년의 남성이다. 이 남자는 자신의 딸이 무장강도에게 살해당하자, 죄인들의 형량이 너무나 가벼워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 뜻을 합쳐, 어떤 범죄를 저지르던 세 번의 범죄를 저질렀을 시, 25년에 달하는 최고 종신형을 선고받는 법의 입헌을 요청했고, 이가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 법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25년의 종신형을 선고받는 범죄자 중에는 해변가에서 아이들의 피자 한 조각을 훔쳐먹은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형량을 늘리는 것이 무조건적인 정답은 아니다. 티핑포인트에서 살펴봤듯이 우리는 사람이 놓이는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이 사건의 반대 예시로 캐나다에 사는 부모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 역시 딸이 귀갓길에 살해를 당했고, 뒤늦게 범인이 이상 성욕 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이들이 어떻게 해야 될까? 이상성욕자들을 감시하자는 법의 입헌을 요청해야 하나? 사건이 있고 얼마 지난 뒤, 이 부부의 교회 친구 중 한 명이 이들에게 본인도 이성 성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백했다. 여기서 이 부부는 친구에게도 혐오감을 표출하고 친구를 잃어야 하나? 아니다. 이들은 그 친구를 이해했다. 그리고 그 범죄자까지도 용서했다. 친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였다. 


상황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채, 본인이 이성적이라 생각하고 진행시키는 일들이 때론 뒤돌아보면 엉망진창의 결과를 불러오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 목차에서 말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라 생각한다. 강자는 약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피해자가 가해자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너무나 가혹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나아가 사람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리커버 된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다시금 느낀 바는 바로 이것이다. 


말콤의 책 '다윗과 골리앗'. 내가 언급한 내용들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면, 이 책을 읽고 내용을 곱씹어보면서 정리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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