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유학 가고 싶지 않은 아들 그리고 D-day
인천 송도에서 2년간 살아온 큰 애는 콩알만큼도 농촌에 가고 싶지 않아서 학교 선생님을 비롯해 주위 어른에게 가기 싫은 이유를 늘여놓았다.
초등학교 입학 후 어렵게 만든 친구관계를 다시 쌓아갔던 터라 다시 친구를 사귀는 게 자신이 없다고 하면서 피자 도우에 토핑을 얹듯, 평일에는 아빠와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 싫다면서 살며시 속내를 드러냈다.
"순창에 가면 엄마는 매일 게임을 안 시켜줄 거예요. 아빠는 제가 공부 다하면 게임을 시켜주거든요. 그래서 아빠랑 떨어지기 싫어요."
이 말을 들은 학원 선생님이 내게 넌지시 알려주며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농촌 유학 가서 교우관계는 온전히 아이의 몫이었기에 부모가 대신해 줄 수 없지만, 타지에서 적응해야 할 아들의 위해 닌텐도 한 대와 팩 몇 개를 사줬다. 내 아이의 느림에 감사하게도 소유에 의미를 두기에 매일 게임하지 말고 주말에만 하도록 약속했다.
순창에 가면 학교 생활이 편해지는지를 말했다. 소규모 학급의 담임 선생님이 아들에게 꼼꼼히 알려줘서 따로 학원 갈 필요가 없고 스스로를 가장 공부 못하는 아이라는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알려줬다. 공부 악순환에서 벗어나 농촌에 가면 하교 후 대자연 속에서 곤충채집을 할 수 있으며, 다른 아이들과 놀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다고 하자 아들의 표정이 조금은 풀어졌다. 마지막으로 엄마 아빠는 너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서 가야 한다고 말해줬을 때 큰 애의 눈에서 결정을 번복하기 어렵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짧은 한숨을 내쉈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먼 곳까지 전학 가게 했으니 후회남지 않는 시간을 보내겠다 결심했다.
찬 바람이 서서히 온기를 찾아가던 어느 2월 말, 1500cc 소형차에 부엌살림이며 이부자리, 아이 학용품 그리고 공간을 덜 차지하는 앉은뱅이책상까지 테트리스 하고 나니 5인승 좌석에 겨우 3명이 앉을자리가 생겼다. 장시간 운전할 운전석만 충분한 공간을 마련해 두고, 뒤에 탈 두 좌석은 발을 뻗을 공간조차 없었다(뒷좌석 바닥에는 청소기와 길쭉하고 조잡스러운 살림살이가 가득했다). 이뿐이랴, 임신 5개월 차인 내 무릎에는 10kg에 달하는 반려견을 올려둔 채 장장 4시간 동안 차 안에서 꼼짝달싹 하지 못했다. 장시간 운전하면서 남편은 졸음쉼터에 3번 차를 멈췄지만, 꼭꼭 잠긴 양쪽 문에 잠든 아들과 짐 한가득이 막고 있어서 접은 다리를 쭉 뻗을 겨를조차 없던 터에, 부풀어 오르는 배가 무리가지 않도록 강아지의 위치를 이리저리 옮겼다. 뒤에서 앉은 우리보다 멀리까지 운전하는 남편이 더 힘들기에 힘들다는 투정은 사치였다. 정오를 지나 학교에서 마련해 준 숙소를 도착해서야 난 차에서 벗어나 굽어있던 척추뼈를 쭉 펼 수 있었다.
2023년의 12월을 보내고 언제 농촌유학 가려나 했는데 어느덧 우리 네 가족은 순창에 도착하고 도시에서 맡아보지 못한 청량한 공기를 폐 한가득 채웠다.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시골 생활에 기대가 되면서 우리 가족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한껏 기대됐다.
"엄마, 나 위층 애들이랑 놀래."
숙소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또래 아이를 보고 아들은 헐레벌떡 달려갔다.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 걱정했던 아들이 바로 친밀감 100% 모드로 전환해서 다른 농촌 유학 친구에게 달려갔다. 숙소에 아들 또래 친구가 있어서 안도감과 함께 우리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102호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