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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연 Mar 07. 2021

계산이 사치라고 느껴지면 진짜다

by <원데이>

20년간 반복된 7월 15일. 대학 시절 쭉 덱스터를 짝사랑해 온 엠마는 대학 졸업식 날 우연히 그와 친구가 된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엇갈린 운명이 계속되는 그들에게 드디어 사랑이 허락되는 순간, 그들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운명!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사랑은 왜 비극이어야 하는 건지. ‘아직’ 모르는 게 맞나? 죽을 때까지, 죽어서도 모르는 건가 원래?
그런데 참 이상하고 희한한 것은 비극인 사랑이어야 진짜 사랑 같긴 하다는 거다. 괜찮다 내가 꼬였대도. 진리는 때론 모순으로만 설명되는 게 있는 거야.

20번의 똑같은 날, 7월 15일. 설렘으로 시작된 그 긴 시간 동안 그들에게 아픔이, 실망이, 회한이, 아쉬움이, 긴 기다림이 더 컸대도 한결같이 그것들은 사랑으로 꿰어진다. 그 비결은 엠마의 지고지순 덕인가, 엠마의 지고지순에 적당히 기댄 덱스터의 여우짓인가, 식상하게도 끝내 그것은 타이밍인가.

운명인 두 사람이 제 때에 그 운명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사랑은 비극일 리가 없다. 한 사람만의 알아차림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그 비극의 핵심이다. 먼저 알아차린 사람의 지극한 인내와 정성, 그 아픈 운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용기가 없는 한 비극은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엠마는 댁을 사람으로 만들었고, 댁은 엠마를 행복하게 만들어줬죠. 행복에 겨워하게-”

엠마를 사랑했던 남자 이안이 훗날 덱스터에게 일러줬던 내용이다. 그녀에게는 덱스터를 기다리는 인고의 순간마저 행복이었던 거다. 유치한 표현으로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일찍 들킨 사람이 을이라고 하지만 사랑의 기적은 그토록 일방향으로 뻗어도 행복해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들의 이별과 뒤늦게 알아버린 사랑과 못 다한 시간들에도 불구하고.



놓쳐버린 사랑들에 우리는 계산기를 들이대기 바쁘다. 이건 내 탓 저건 네 탓, 그건 시절탓, 다른 그건 조건탓, 그리고 기어이 운명탓.
한 번이라도 솔직했던 적이 있었나. 용기 냈던 적은? 가슴이 난도질을 당해도 그 인연에 감사하고, 존재만으로 충분했던 적은...
그러니 함부로 사랑에 비극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나 같은 사람은 아직 사랑의 ‘사’자도 모르는 게 분명하다.

이런 한심하고도 불쌍한 나에게 문득 이 시의 한 구절이 가만히 내려앉는다. 마치 엠마가 날 위해 준비한 조언처럼.

사랑에는 한사코 진한 냄새가 배어 있어서, 구름에라도 실려오는 실낱같은 향기만으로도 얼마든지 사랑이다. 갈 수 없어도 사랑이다. 魂이라도 그쪽으로 머릴 두려는 그 아픔이 사랑이다.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 정윤천의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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