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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타 Apr 27. 2021

보다 더 많이 욕망에 대해서 이야기해야할 필요성





우리는 보다 더 많이 욕망에 대해서 이야기해야하는 건 아닌지 오늘 엄마와 이야기 나누었다. 내게는 이런 욕망이 한없이 바다처럼 한계를 느끼지 못하고 들끓는데 어째서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욕망들을 감추고 내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의 것처럼 이야기를 해야하는지 나는 그걸 도통 모르겠어 엄마. 그럼 내가 내가 아니라는 거고 내가 내 욕망들을 감추고 살아야 하니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거잖아. 이게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한달을 보내고 1년을 보내고 10년을 보내다가 또 어느 순간 환갑이 되고 일흔이 되고 여든이 되어서 앗차차 하면 거기에 쌓이는 게 대체 뭐가 있을지 그것들을 과연 내 인생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내 새끼한테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 내 새끼한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엄마. 이 한심한 것아 라는 눈빛으로 잠깐 바라보던 엄마는 건너편 광화문 교보빌딩을 응시하다가 욕망이라 그럼 어디 한번? 하고 말을 이었다. 일흔이 되어서도 일흔이 넘어서도 하고싶은 일 투성이고 사고싶은 것도 많고 갖고싶은 것도 많고 다니고싶은 곳도 많아, 나이가 들어 욕망이 저절로 불꽃 사그라지듯 사라질거라 알았지. 근데 아가 엄마가 일흔이 넘고보니 그 욕망이라는 건 티끌 한점 만큼 사그라들지 않더라. 나이가 들어서도 욕망 운운하면 사람들은 주책이지, 노망난 할머니구만, 말할지도 모르지. 세상이라는 게 나 혼자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나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지만 몸이 고장나다보면 조절하고 자제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탓할 때 있지만 너도 스스럼 없이 네 욕망을 이야기하니 일흔이 넘은 이 어미의 욕망도 좀 이야기해볼까. 우리가 가진 이 보헤미안들을 맨날 죽여야 한다고 그것이 정상적인 거라고 그 길밖에 없다고 그 길을 벗어나면 죽음과도 같은 으스스한 어둠만이 남을 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정말 그곳에 죽음의 동굴 같은 으스스한 어둠만 한그득일지 어떻게 알지? 가보지도 않고서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걔네들은 대체 어떻게 아는 거지? 가고싶은 길은 가보는 게 좋을 거 같아. 가봤더니 불행해지면? 설령 불행을 겪는다고 치자, 하지만 그 불행도 온전하게 네 몫으로 떠안을 수 있다면 그래도 네가 마냥 불행한 거라고 할 수 있겠니. 나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백번 떠들어봤자 나이가 실로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걸 직접 깨닫지 못하면 도루묵이야. 들끓는 걸 일부러 잠재울 필요는 없지. 부러 잠재운다고 해서 잠들 것도 아니고. 그 정도로 잠든다면 그걸 어디 들끓는 거에 비유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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