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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승 Mar 06. 2020

잘 받아먹습니다.

일 년 동안 같이 공부하면서 그를 눈여겨본 적은 거의 없었다. 늘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타나 거들먹거리며  교실에 나타나서 출석부에 대충 서명을 하곤 의자에 푹 파묻혀 있다 삼베바지에 방귀 빠지듯 슬그머니 없어졌다.  


한 번은 그와 베트남에 갈 일이 생겼고, 행기에서 그와 나란히 앉게 되었다. 그는 차림새부터 유별났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 젊은 애들이나 입는 찢어진 청바지에 금빛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헐렁한 반팔티를 입고 목과 손에는 양아치들이 하고 다니는 금사슬을 걸고 있었다.  놀러 가는 길이라면  남의 차림새가 어떠하던 입에 올릴 필요가 없겠지만, 명목상이나마 우리는 일을 위해 가는 길이었다.  는 이름을 들으면 알만 한  금융회사 임원이었고, 나는 그와 소속은  달랐지만 업무 내용이 비슷해서 대학에서 운영하는 같은 과정에서 공부했다.


비행기가 이륙한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음료와 기내식을 나눠주고 식사를 마친 사람들의 식기를 거둬들이느라 승무원들이 분주히 오갔다.  "고객 눈 앞에다 쟁반을 들이대고 서빙을 하는 거야!?" 가 언성을 높여 여승무원에게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키가 다른 사람들 보타 크면 허리를 더 숙이고 쟁반을 낮춰서 서빙을 해야지, 어디 그런 서빙이 있어?" 나는 조금 전 식사를 마치고  와인 한 잔을 더 부탁했었다. 그때 승무원이 와인을 따라 건네주는 과정에서 승무원과 나 사이에 있던 그의 눈 앞으로  쟁반이 지난 모양이었다.

    

당황한 여승무원이 어쩔 줄 몰라 죄송하다고 여러 차례 사과를 했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화를 내며 사무장을 데려오라며 고집을 썼다. 사무장이 오자 그는 "좌우지간 조선 것들은 말이야"로 시작해 아까 승무원에게 늘어놓았던 불평을 반복했다. 누가 봐도 생트집이었고, 사과할 일 아니었지만 일단 소란을 마무리해야 하는 승무원은 죄송하다며 조아렸고, 그의 행패는 한동안 이어졌다. 잠시 후 사무장과 여승무원이 함께 사과를 했지만 그는 이제 "그게 사과하는 태도냐"며 고집을 피웠다.  소란이 진정된 후 그는 흡족한 표정으로 면세품을 소개하는 책자를 펼진 후 가장 비싼 면세품이 소개되는 페이지를 펼쳐 뒤적이며 돈 자랑이 하고 싶어 안달을 했다.


베트남에 도착한 후에도 그는 어디 가든지 좌판에 장사를 하는 젊은 여자들에게 다가가 "그 물건 모두 얼마야?"라며 버릇처럼 희롱을 일삼고는 푼돈이라도 쓰지는 못했다. 유람선을 타고 하롱베이를 여행할 때였다. 유람선 안에도 기념품을 파는 젊은 여성이 있었고, 그는 낮술에 얼굴이 벌개 져 그 여성에게 다가가 "이거 모두 얼마야" 하며 행세를 하려 들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 일행은 낯이 뜨거웠다. 결국 그는 아내에게 줄 선물이라며 허접한 진주 목걸이 하나를 샀고, 진주가 눌어붙은 손바닥만 한 조개껍데기 하나를 덤으로 얻어 흡족해했다.    


그는 그 진주 조갑지가 매우 흡족한 모양이었다.  연신 쓰다듬으며 자기 집에 술잔 컬렉션이 있다며, 그 조갑지도 술잔 컬렉션에 넣어야겠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말 이조, 나는 우리 직원들과 술을 마시면 절대 술잔을 안 써요!" "아니 술잔을 안 쓰고 어떻게 술을..?" 내가 물으니 그가 신이 나서 자랑을 했다.

"난 맥주 양주 직원들 손에 직접 따라줍니다. 양손을 오므려 손바닥으로 잔을 만들면 내가 술을 따라주죠. 아주 맛있게 자~알~ 받아먹습니다. 직원들이 나랑 술 한 번 같이 먹으려고 얼마나 난리를 치는지 원~"


내 주먹이 외투 속에서 부들부들 떨며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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