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취업 성공사례
지난 편에서 언급한 스타트업의 입사 제의 이외에도 여러 개발 관련 직군에서 입사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을 때 부족한 프로그래밍 실력, 이미 확고하게 정한 출판사 취업을 목표로 해둔 상태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구직 활동은 출판기획 위주로 진행할 계획이었다. 여름방학 동안에는 이력서 완성과 함께 졸업 작품을 완성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기획자라는 직업에 잔뜩 매료된 상태였던 것 같다. 내 손으로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점,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낸다는 점은 없던 자신감도 채우는 것 같은 기분을 주었다.
드디어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었고 중간고사까지는 무난하게 학교를 다니며 졸업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슬슬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조기 취업에 성공하면서 결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부러움 반, 걱정 반의 감정으로 중간고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틈틈이 관련 출판사 채용 공고가 뜨진 않았는지 확인했다. 출판사 관련 채용 공고는 주로 교정 교열자나 내지 디자인이 많았다. 내가 원하는 자리는 기획자였기 때문에 원하는 항목을 바로 찾기는 어려웠다.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 정도는 지원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중하게 하고 싶었다. 이왕 시작하는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고 싶었다.
중간고사 기간이 막 지날 무렵, 어느 출판사의 채용 공고가 떴다. 내가 원하는 IT 출판사였으며, 심지어 기획자 정규직 채용, 경력 무관에 신입도 가능이었다. 게다가 회사의 위치도 집에서 지하철로 몇 정거장 안 되는 가까운 곳. 바로 이거다! 이력서의 양식도 자유였기 때문에 미리 써둔 내용을 크게 고칠 필요가 없었다. 조금 더 이력서를 다듬은 뒤, 바로 제출했다. 이력서를 제출한 날이 금요일 저녁이었기 때문에 주말 동안 약간의 긴장감을 내내 갖고 있었다. 일단 서류라도 붙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월요일에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화요일에는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갔다. 채용 마감일은 한참 남아 있었고, 나 이외에도 여러 명이 지원한 상태인 것을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붙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전 수업을 듣고 오후 수업을 위해 점심을 사 먹고 오는 길이었다. 자판기 앞에서 음료수를 뽑고 쉬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보통 모르는 번호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이 전화는 꼭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최대한 시끄럽지 않은 곳으로 뛰어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출판사 △입니다. Carraway씨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저희 쪽으로 이력서 넣어주신 것을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이번 주 내로 면접을 보고 싶은데 괜찮으신가요?"
"네! 이번 주 모두 가능합니다!"
세상에!! 서류 합격했다. 그 자리에서 면접 일정을 잡았고 다음 날 오후 2시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다행히 다음날 수업은 담임교수님의 수업이라 교수님께 면접을 보러 간다고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잘 보고 오라며 격려해주셨고, 나는 오후 수업을 마친 뒤에 집으로 곧장 달려갔다. 부모님께 서류 합격해서 다음 날 면접을 보기로 했다고 말씀드리니 정말 기뻐하셨다.
면접 준비를 위해서 내 이력서와 기획서를 다시 훑어봤다. 내가 왜 출판사에 들어가야 하는지, 왜 기획자를 하고 싶은 지에 대한 이유를 다시 복기하며 정리했다. 긴장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오자가 목표였다.
그날은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어두운 색 옷을 입고 교통이 막힐 것을 대비해 조금 일찍, 지하철로 출발했다. 다행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고 워낙 자주 갔던 번화가라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점심시간 이후라 그런지 비가 오는 날임에도 거리에는 직장인이 많았다. 나도 저렇게 바쁘게 쏘다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많은 것이 기대되는 하루였다.
2시보다 조금 더 여유 있게 출판사에 도착했다. 건물의 1층에서 인사담당자에게 도착했다고 연락을 드렸고 바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우선 내가 현재 공부를 하고 있는 컴퓨터공학과 학생인 점, IT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셨다. 그러나 개발자로 가지 않고 IT출판기획자를 지원하게 된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셨다.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워낙 예상하고 있던 질문이었기 때문에 미리 답변을 어느 정도 생각하고 간 것이 도움이 되었다. 전공 공부를 통해 개발을 하다 보니 내 적성은 아닌 것 같다고 느꼈으며, 그럼에도 전공을 살려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다가 출판기획자를 생각하게 되었다. 딱 그렇게 대답했다. 그게 전부이고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내가 프로그래밍을 배우면서 느낀 IT기술서의 특징, 개선하면 좋을 점 등 직접적인 연관에 대해서도 말하게 되었다. 내 나름대로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었다. 면접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답변할 걸!이라는 후회는 없었다. 후련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갔고 안 되면 운명이 아니었나 보다. 그런 가벼운 생각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그로부터 다시 목, 금, 그리고 주말이 지나 월요일이었다. 학교에 가려고 준비를 하는 데 출판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혹시 합격일까?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고 합격 통보가 들렸다. 집에 엄마가 계셔서 엄마한테 달려가 취업했다고 알려드렸다. 그날의 기쁨은 정말 생생했다. 비가 계속 왔던 주를 넘겨 맑은 날씨였으며, 가을이었음에도 따뜻한 날이었다. 출근은 그다음 주부터 하게 되었다. 학교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버스에 타 교수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교수님께서는 컴퓨터공학과에서도 새로운 길을 간 좋은 사례가 되었다고 칭찬해주셨다. 동기들에게 많은 축하를 받았고, 그날 이후로 취업계를 제출하고 교수님들의 서명을 받느라 바쁜 날이 이어졌다. 첫 면접에 바로 합격이라는 좋은 운이 따랐다. 신입이지만, 이제 기획자라는 멋진 명칭이 생긴 것이다. 나를 부르는 다양한 수식어에 기획자가 붙었다.
0채용 관련 어플리케이션을 지우는 기분이 어찌나 후련하던지. 그 어플과 사이트를 들어가는 일은 내가 퇴사하고 다시 취업하기 전까지는 한동안 없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공대에 들어갔던 문과생, 어쩔 수 없이 계속 다녀야만 했던 20대 초반의 공대생은 이제 어엿한 기획자가 되었다. 그토록 원하던 글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