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 오브 더 시티 1993
지난 주말 <테일 오브 더 시티>(1993)를 전부 보고, 마지막 에피소드가 끝난 뒤 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MBC드라마, SBS드라마를 보며 막장, 개 막장이라고 욕에 욕을 하지만 사실 이런 식의 스토리텔링은 인간 본성에 흐르는 원초적인 서사라는 점을요.
1993년 드라마니까 올해 나이가 스물일곱 되는 드라마인 셈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1993년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1976년의 이야기를 하니까, 54살 되는 드라마라고 말해도 됩니다. 어쨌든 이렇게 오래 묵은 드라마니까 줄거리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좀 오래된 미국 드라마를 보면 콜걸이나 후커 등 성판매 여성이 어디에나 손쉽게 등장했던 것 같은데, 실은 미국도 성매매 금지 국가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그런 미국 드라마들에도 경찰이 온다고 하면 성판매 여성들이 당황해서 도망가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네요. 그런데 미국의 딱 한 주, 네바다에서만큼은 성매매가 불법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테일 오브 더 시티>(1993) 초반에 나오는 매드리걸과 헬시온의 이 대화는
"네바다에는 가본 적이 없어요."
"왜요, 한 18살때 가보시지 않았나요?"
"(멈칫하다가)저는 좀 늦었죠. 20살 때 갔습니다."
한국식으로 번역하면
"북창동에는 가본 적이 없어요."
"왜요, 군대 가기 전에 가보시지 않았나요?"
"(멈칫하다가)저는 좀 늦었죠. 25살 때 갔습니다."
뭐 이렇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배경 지식을 가지고 다시 줄거리로 돌아가 설명하면요.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바버리 레인 28번지의 작은 하숙집입니다. 하숙집의 주인은 '안나 매드리걸'이라는 56세의 남성. 네바다의 한 성매매 업소에서 포주의 아들로 태어난 매드리걸은 44살 때 가슴 성형술 내지 성기 성형술 같은 것을 받았고, 56살이 된 지금은 여장을 하고 다닙니다. 젊을 때 다른 사람의 마음에 대못을 박고, 반성하는 차원에서 그런 선택을 했다고 하네요. 그게 반성하는 거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리고는 샌프란시스코의 힙스터 마을에 정착하여 서점을 차려 일하다가, 자기가 젊을 때 버리고 온(아마 이게 아까의 그 '대못'인 모양이죠)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모나와 같이 살고자 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는 하숙집을 차린 겁니다. 그리고 딸 주변에 이런저런 장치를 만들어 놓고는 자기네 하숙생으로 받아요. 섬뜩한 설정이죠, 여장한 아버지가 내 하숙집 주인이라니! 라노벨도 울고 갈 설정입니다.
이 비밀 이야기가 드라마의 배경에 깔려 있고, 나머지 이야기는 <섹스 앤 더 시티>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어딘가 미스테리한 구석이 있는데 마음만은 따뜻하다는 설정의(사실 두살배기 애랑 마누라 버리고 도망쳐서 여장하고 성기수술하고 사는 남자가 어떻게 마음이 따뜻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안나 매드리걸을 중심으로 세입자들의 일상의 단편을 그리기도 하고... 뭐 그럽니다. 그 일상의 단편이라는 게 그러니까 유부남 실장님과 갓 들어온 비서와의 불륜, 실장님의 배우자가 집으로 슈퍼마켓 배달보이를 끌어들여 섹스하다가 임신해버리는 이야기 같은 건데... 그리고 저는 '게이 남자 친구'를 상품화한 게 <섹스 앤 더 시티>인 줄 알았는데 <테일 오브 더 시티>가 원조더군요. 하여튼 앞으로 SBS나 MBC의 드라마를 보고 막장이라고 손가락질하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