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늘 긴장하고 힘이 잔뜩 들어간 모습이다. 어색한 표정을 짓고,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곤 했다. 그런 모습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그리고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땐 하루가 참 피곤했다. 쉽게 지쳤다.
늘 긴장했던 이유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항상 인정에 목말랐다. 사람들이 날 알아줬으면, 인정했줬으면, 보다 높게 평가해줬음 했다. 바람은 초조함으로 바뀌고, 초조함에 늘 전전긍긍했다. 인정을 갈구하며 긴장하고, 채워지지 않으면 좌절했다.
인정에 목말라 있으면, 쉽게 긴장한다. 사람들이 봐주길 원하는 내 모습이 있는데, 다르게 생각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런 두려움이 생기면 상상력이 발달한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찾는 상상이다. 확인할 수 없는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비치는 나는 어떤 모습인지를 찾으려 한다.
상상이 커지면 타인의 시선에 갇힌다. 내 생각, 감정에 집중하기보다는 상대가 날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에 갇힌 사람은 쉽게 긴장하고, 불필요한 힘을 준다. 쓸데없이 힘을 주면 어색함이 생기고 자연스러움이 사라진다.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고, 슬쩍슬쩍 상대의 눈치를 살핀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긴장을 풀지 못했던 이유는 안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날 알아주고 인정해주기 전까지는 맘을 놓지 못했다. 기어코 상대의 인정을 얻어야 했던 건, 내가 나를 인정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를 수용해주고, 알아주고, 인정해주지 못했기에 다른 누군가의 말과 행동을 통해 인정을 얻고 싶었다. 타인의 인정을 확인해야만 잠시 안심할 수 있었다. 그때서야 내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고, 일시적으로 자아가 팽창했다.
하지만 이내 나의 자아는 다시 위축됐다.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면, 자기 의심이 자란다. 자신을 믿어주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자아가 성장한다. 자기 의심을 품은 자아는 늘 도망칠 준비를 한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 많아서다. 자존감이 공격받을 상황, 부족한 모습이 드러날 상황, 진짜 나와 마주해야 할 상황을 피하려 한다. 피하고 싶은 상황이 많아지면, 맘 편히 있을 공간이 준다. 안심하고 편히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기에 늘 지쳐있다.
다행히도 이젠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사람들의 인정에 목마르지 않다. 스스로 인정해 주는 법, 누군가의 피드백이 없이도 나를 알아주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비현실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나를 비난하길 멈췄고, 부족한 모습이 보여도 그대로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나를 인정해 주기 시작하니, 인정을 향한 갈증이 줄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추측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멈췄고, 상대의 판단에 크게 괘념치 않게 됐다.
인정을 얻으려는 갈증이 줄자, 쓸데없이 힘을 주지 않았다. 힘을 빼니 여유가 생겼고, 여유를 가지니 현재를 살아낼 수 있었다. 여유를 갖고서야 알았다. 소통을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했음을. 여유가 있어야 상대가 편히 다가올 공간이 생기는데, 난 그게 부족했다.
자연스러움이 아름다운 건, 어색함이 없기 때문이다. 예술작품도, 언어도, 행동에도, 불필요한 힘이 들어갈 때 어색함이 생긴다. 과잉 의식이 생길 때 힘이 들어간다. 자기 자신, 타인 모두 지나친 의식은 몸과 마음을 긴장케 한다. 내 행동이 어색했던 건 늘 힘을 주고 긴장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젠 누군가의 인정에 매달려 하루를 살지 않는다. 더 이상 인정에 과거만큼 관심을 쏟지 않는다. 인정 받고 싶은 욕구를 내려놓자, 이젠 꽤 자연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