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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티베이터 Jun 22. 2024

꾸물거림, 너와는 이제 헤어져야겠어

나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는데, 한동안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계속 꾸물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자료 수집이 부족해. 책이나 자료를 좀 더 읽어봐야지. 하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도대체 어떻게 생각을 정리하고 이를 콘텐츠로 만들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작 해야 할 일은 미뤄두고 계속 딴짓을 했다. 딴짓은 딴짓을 불러왔고, 이러한 습관은 쉽게 제어가 안 됐다. 


그러던 갑자기 야구 경기 결과가 궁금하다. 지금 이 순간 그게 가장 중요한 일처럼 느껴졌다. 네이버 스포츠 서비스로 결과를 확인했다. 나는 한화팬이기에 잠시 본 결과로는 안심할 수가 없다. 이기고 있어도 결코 안심하지 못한다. 실시간으로 결과를 체크해야 한다. 9초에 이르렀고, 점수차는 4점이다. 이 정도면 안심할만하다. 그런데 이제는 정치 현안이 궁금하다. 유튜브로 정치 평론이나 뉴스를 검색해 듣는다. 사회 곳곳에 부조리가 있는 것 같아 분노하고, 갑자기 나라 걱정을 한다. 애국자 모드로 돌변하여 뉴스에서 전달한 정보를 집요하게 서치 해 본다. 


이런 방식으로 나의 꾸물거림은 시작된다. 꾸물거림이 발동하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멀어진다. 잠시 마음을 다잡고 글을 써보지만 허접하게 느껴지는 문장이 버겁고,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하는 답답함이 나를 짓누른다. 뇌가 파업에 돌입한 것만 같다. 파업을 설득할 방법 찾기는 오리무중이다. 


돌아보니 나는 불안한 상황을 피하면서 도파민을 얻었다. 사실 그냥 일을 미루고 회피한 일인데, 뇌는 안전한 곳에 인도해 줘서 고맙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지금 당장 불안하지 않은 것만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미루면 미룰수록 불안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불안이 커지니 자기 의심이 자라났다. 능력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이 일을 할만한 능력이 있는 걸까?' '나는 자격이 되는 사람인가?' 나의 주의력은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여겨지는 정보에만 집중했다. 






최근 꾸물거리는 습관과 작별을 고했다. 내가 접근한 방식은 회피동기를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내가 꾸물거리는 이유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서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피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생각해 보니, 꾸물거림이 더 큰 불안과 불편함을 생산하고 있었다. 잠시 불편한 감정을 피하려고 불안과 불편함을 점점 키우고 있었다. 꾸물거리며 짓눌렸던 고통을 돌아봤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일단 뭔가를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수준 안에서 할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 너무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수행에 대한 불안을 높였고, 그 불안이 꾸물거림을 불러왔다. 


나를 얼어붙게 만드는 완벽주의를 내려놓으니까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렇게 일을 처리하다 보니,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다. 계획한 일을 시간 내에 끝마칠 수 있었다.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나니, 그동안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불안과 부담감을 느끼던 일을 결국 해냈을 때의 감정은 새삼 짜릿했다. 나의 능력을 다시 확인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꾸물거림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에 달라붙는다. 교묘하게 숨어있다가 중요한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그 모습을 드러내어 정신을 산만하게 만든다. 꾸물거림을 떨쳐내려면, 꾸물거림이 어떻게 나를 괴롭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내가 꾸물거림이 싫어지게 된 계기는 꾸물거림이 나 자신을 무겁게 만드는 일이었다. 꾸물거리는 동안 내 몸엔 하나둘씩 무거운 짐들이 쌓이기 시작해 도저히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불안과 불편함을 피하려던 나의 꾸물거림에 대가가 뒤따랐다. 


이젠, 오랜 시간 동거하던 꾸물거림과 작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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