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축축한신발 Jun 28. 2022

우리는 모두 비밀을 담은 상자를 지니고 있다

영화 실종(가타야마 신조, 2021) 리뷰

추천/ 미스터리, 강렬함, 사실적

비추/ '시계태엽 오렌지' 부류 거북함 있음


응축된 에너지가 뿜어내는 힘으로 상영 내내 끌려다녔다. 끝날 때 방전한다.


장르적 재미도 좋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이 떠오른다. 차이점은 삑사리다. 게이고의 소설은 엘리트가 이끌고, 정교한 퍼즐이다. 이 이야기는 그렇지 않은 인물들이 이끌고 어긋나는 지점에서 파생되는 이야기가 돋보인다.


+ 행복목욕탕 아이가 자라 이런 연기를 보여주다니, 격세가 지감이다.


---이하 스포(매우 높음)---

영화는 세 단계다. 현재 카에데, 3개월 전 야마우치, 13개월 전 하다라.


첫 번째는 카에데가 연쇄 살인마 야마우치를 쫓아 아빠를 찾는 이야기다. <<화차>>가 떠오른다. 두 번째는 야마우치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 그는 허무주의와 인간혐오에 빠져있다. 삶의 의욕을 느끼는 순간은 사람을 죽이고 그를 보며 수음할 때다. 세 번째 하다라가 말도 없이 사라진 이유는 트릭 때문이다. 당하는 처지로 보이던 그는 야마우치를 죽이고 거금을 벌 계획을 세운다. 같은 시간, 다른 시간, 같은 장소, 다른 장소에서 세 사람이 쫓아다니는 이유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카에데는 아빠를 찾는다. 야마우치는 죽일 사람을 찾는다. 하다라는 돈을 찾는다. 즉, 세 사람은 '사는 이유'를 위해 움직인다.


섬에서 오렌지를 건넨 할아버지는 방문을 열어 가득한 음란물을 자랑한다. 그가 욕구, 탐욕을 보여준다. 감독은 이런, 인물이 물건을 당겨 안을 보이는 씬을 통해 상징적으로 이유를 보인다.


야마우치는 토막 낸 시체를 아이스박스에 담는다. 맥주를 시원하게 보관하는 원 목적대로 쓰기도 하는데, 그는 술을 마시는 것만큼 살인이 대수롭지 않다.


하다라는 야마우치가 보낸 상자를 급하게 뜯어 돈을 확인한다. 적은 돈에 실망한다. 그가 아주 작은 관심조차 주지 않은 과자는 카에데가 먹는다.


루게릭병인 엄마를 떠나보낸 카에데에게 아빠가 없으면 고아가 된다. 버림받은 존재가 된다.

야마우치는 일상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생일파티조차 흥겹지 않다. 무료하다. 그래서 죽인다. 죽고 싶다는 사람은 소셜미디어에서 찾아 은밀한 장소로 부른다. 효율적이다.


하다라가 사는 이유는 아내였다. 그리고 사별했다. 이 죽음은 본인이 의뢰한 살인이다. 동시에 아내가 원한 죽음이다. 연애 3년, 결혼생활 14년 동안 자신에게 전부였던 존재는 자신의 결정으로 죽었다.


하다라는 살 의지가 별로 없다. 단지 남은 딸아이와 유언을 들어주기 위해 탁구장을 다시 여는 것. 간호 과정에 쌓인 빚이 있다. 그에게는 돈이 필요했다.

카에데는 부모로 인한 결핍을 제외하고는 평범한 여중생이다. 타이밍은 안 좋았지만 고백도 받고, 공부는 싫지만 적당히 진학은 하려는 평범한 일상을 산다.


야마우치의 삶은 게임이다. 일종의 콘텐츠를 즐기고, 제공한다. 한국 돈으로 200만원. 사람을 목 졸라 죽이고, 토막 내 처리하는 일로는 많지 않은 돈이다. 죽인 사람 발에 흰색 크루넥 양말은 신기고 수음할 때, 그는 사는 이유를 느낀다.


그러던 중 하다라를 만났다. 그의 아내를 죽였다. 대화를 해보니, 꼬리가 밟힐 때쯤, 이 어리숙한 사람에게 혐의를 씌우고 숨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걸려도 죽으면 그만이다.


야마우치의 첫 기억은 차에서 부친을 기다리며 먹던 막대 아이스크림에 '하나 더'가 걸린 순간이다. 리트라이다.


이들과 달리 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은 한 명 나온다. 트위터에서 '찌르레기'라는 닉네임으로 살인을 요청했다.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이유다.


처음 의뢰했을 때는 만났지만 살인 없이 헤어졌다. 영화에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불평불만으로 볼 때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걸 수 있다. 투신자살이 실패한 걸로 볼 때, 야무우치가 그날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찌르레기는 시끄럽게 울며 신경을 긁는다. 일본에서는 도심 소음 공해로 여긴다. 자신을 그런 새와 동일시하고, 실제로 불평불만이 몹시 많다. 정이 안 가는 인물이지만, 그조차 죽는 순간 예쁜 옷을 입기를 원한다.


하다라의 아내도 죽기를 원했다. 남편의 도움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무력감과 죄책감. 거동이 거의 불가능한 몸으로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죽기를 원했다.


그랬을까. 알 수 없다.


병시중에도 변함없이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이 있었으니까 삶에 미련이 남지는 않았을까. 알 수 없다.


야마우치는 찌르레기에게 진심으로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야마우치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 순간 거짓을 말할 이유는 없다.


야마우치는 조력자가 돼 줄 것을 거절하는 하라 에게 아내는 죽을 때 미소를 보였다고 말한다. 살인이 아니라 구원이었다는 거다.


하다라는 이 말에 반박할 수 없다. 구원이라고 믿어야만 하니까. 아닐 수도 있다. 구원이 사실 거짓이라는 건 탁구공을 생각 없이 밟을 때 이미 알았다. 그는 선하지 않은, 쓰레기 같은 인간이다. 단지 돈이 필요했을 뿐이다.


야마우치는 구원에 실패했고, 하다라는 성공했다.


보조 역할만 하던 하더라는 직접적인 살해 요구에 당황한다. 거부하던 그는 순간 미소로 보이는 찌르레기의 표정을 보고 죽은 아내의 얼굴이 겹친다. 과거에 그는 아내를 직접 손으로 교살하는 데 실패했다. 결심한 그는 야마우치가 했던 방식으로, 벨트로 목을 졸라 죽이는 데 성공한다.


미소를 본 순간이 처음으로 아내를 떠올린 때는 아니다. 하다라는 찌르레기가 예쁜 옷으로 갈아입는 걸 도와주며 단추를 채울 때, 아내 기억에 반사적으로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에 찌르레기는 당황한다. 문득 하다라의 정수리 냄새를 맡고, 자신의 아빠 냄새와 같다며 같이 운다. 찌르레기는 탁란한다. 버림받은, 외부인에게 키워지는 존재다.


하다라가 없어지자, 카에데는 선생님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잠을 잔다. 일시적인 기거일 뿐이고, 이마저 불편해 자다 깬 카에데는 집으로 돌아가 아빠 방에서 잔다.


하다라가 영영 사라지면 카에데는 보육원으로 가게 된다. 낯선 외부인의 둥지다. 찌르레기는 가능한 미래태 중 하나다.


운 좋게 하다라의 트릭은 먹혔고, 무명씨 현상금 300만엔을 얻는다. 신문에 실리고, 표창받는다. 운 나쁘게 찌르레기는 빈털터리였고 의뢰 비용 300만엔은 얻지 못했다. 반절의 성공이지만, 탁구장은 열 수 있었다.


그가 다시 죽고 싶은 사람을 찾아 소셜 미디어에 로그인한 건 반절의 실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손님이 없는 탁구장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서였을까. 혹시 구원을 진심으로 믿게 된 걸까. 세 이유가 적절한 비율로 섞였을 수도 있다.


답을 알 수 없는 의문이지만, 그 답은 그가 사는 이유, 새로운 이유다.


카에데는 당기고 버려진 부산물인 과자를 먹었다. 마찬가지로 의도한 건 아니지만, 야마우치의 바지를 당겨 그 안에서 아빠의 휴대폰을 꺼냈다.


카에데는 답을 원했고, 알게 됐다. 아빠 것이라는 걸 보면 살인범과 아빠는 관련 있다. 그리고 화면을 열고 안에 들어가 자기 생각보다 더 많이 연루돼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카에데가 답을 찾아 나선 과정은 아빠의 실종이 처음이 아니다. 엄마는 밧줄에 목매달려 죽었다. 어떻게? 불행히도 답을 찾았다. 삶은 계속된다, 공 없이도 울리는 탁구 소리처럼.


메멘토 모리. 신이 아닌 인간이 죽음을 관재할 수 있는가. 타인이 원한다는 이유로 죽음에 이르게 해도 괜찮다는 생각에는 오만함이 껴있다.


근데 존엄사는?


+ 떠오르는 영화가 많다. 수많은 삑사리는 전반적으로 봉준호 영화, 망치는 올드보이(박찬욱), 시간 구성은 박하사탕(이창동)과 메멘토(놀란)가 생각났다. 변태 할아버지와 오렌지 먹는 장면은 아가씨(박찬욱), 탁구 씬은 시(이창동) 등



사진 출처 다음영화 ⓒ2021. (주)엔케이컨텐츠 all rights reserved.

작가의 이전글 이해할 수 없지만 벌어진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